판문점선언을 이행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제 비준동의안에 첨부된 비용 추계서에는 남북 도로·철도 사업 등 남북경협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 중 2019년도 예산안 2900억원 정도만 기재됐다고 한다. 부실하기 짝이 없다. 이러니 백지수표를 달라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다. 남북협력은 청와대 혼자 뛰어간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마무리돼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남북경협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뒷받침돼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을 두 차례나 갖고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어도 화려한 수사만 난무했지 실질적이고 의미있는 조치가 이뤄진 것은 없다. 국가적 대사에 조급증은 금물이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국회의장단과 여야 대표가 함께 가는 ‘역사적 동행’을 성사시키려 했으면 그 추진 방식은 최대한 신중했어야 했다. 사전에 일언반구 없이 청와대 비서실장의 브리핑 형식으로 통보하듯 발표한 것은 경솔했다. 문희상 국회의장 측이 “자존심이 상한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다. 정부의 일방통행식 일 처리는 야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을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 정부가 온갖 이벤트는 솜씨있게 기획하면서 유독 국회·야당 관계는 매끄럽게 풀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남북문제는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청와대가 연거푸 무리수를 두는 것을 보면 평양 정상회담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구심조차 든다.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키려면 “국내에서도 초당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려면 국민적 지지는 물론 야당의 전폭적인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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