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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야 한다' 강박감…성형홀릭·닥터 쇼핑에 '美치다' [행복사회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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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12 06:10:00 수정 : 2018-09-11 23: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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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사람들
#1.‘엄청 잘생긴 내 친구랑 얼마나 비교될까.’ 20대 초반 남자 대학생 A씨는 하루 종일 이런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불안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지난해 1년간 휴학하고,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A씨는 ‘박보검, 송중기처럼 얄쌍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얄궂게도 그는 건장한 장군감이었다. 정신의학과를 찾아 약물치료를 하자 불안증은 완화됐다. 하지만 자신이 못생겼고 친구와 비교되고 인기 없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성형수술이 하고 싶어졌다. 담당 의사도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안면윤곽수술을 받았다. 얼굴이 작아졌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좀더 손댈 수 있다면….’ 의사는 ‘모두가 연예인이 될 수는 없다, 연예인을 하고 싶다면 마동석 같은 남성적 배우도 있지 않으냐’고 설득했다. 하지만 그가 간절히 원하는 자신의 모습은 ‘박보검 같은 남자’다.

#2.30대 후반 여성 B씨는 미인이었다. 그럼에도 몇 번에 걸쳐 성형수술을 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외모가 중요한 직업을 가지다 보니 성형에 관심이 쏠렸다. 문제는 그 후였다. 바뀐 얼굴이 어딘지 어색했다. 남들이 보기엔 여전히 미인이었지만 ‘어색하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뒤늦게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이 들었다. 이전 얼굴을 영원히 되찾지 못할 것만 같았다. 성형외과에서 재수술을 받던 그는 결국 심한 우울과 비관 증세에 정신의학 전문의를 찾았다.

외모에 대한 강박이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진 사례들이다.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현상들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규격화된 미’에 대한 집착이 도를 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와 대중매체의 발달로 몸 구석구석 돋보기를 들이대고, 심판대에 올려 우열을 나누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여자는 예쁘면 고시 3관왕’ ‘외모도 재능’이란 표현도 문제의식 없이 회자된다. 불가능한 미적 기준을 향한 열망은 무리한 다이어트·성형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10대도 예외는 아니다. 모두를 옭아매는 ‘외모 감옥’ 속에서 한국 사회의 행복지수는 그만큼 떨어지고 사회적 다양성도 훼손되고 있다.

◆비교 속 외모 획일화… 거대해진 미용·성형 산업

우리 사회 ‘외모 정답지’는 기이하고 극단적이다. 눈·코·팔·다리 어느 하나 기준에 어긋나면 가차 없는 품평이 쏟아진다. 외모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우선하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여의도성모병원 뇌건강센터 나해란 교수는 “‘예쁘다, 잘생겼다’ 기준이 미디어에 의해 굉장히 획일화되는 경향”이라며 “미남 하면 연예인 누구, 미녀 하면 누구 식으로 인식 자체가 표준화됐고 이 기준에 맞지 않으면 미인에서 제외된다”고 지적했다. 10년차 직장인 손모(38)씨는 “네티즌들이 여성 사진을 놓고 ‘골반이 아쉽다, 가슴이 처졌다’ 품평하는 걸 보면 넌더리가 난다”며 “공식이라도 있는 듯 몸 곳곳에 줄자를 대고 조금만 안 맞아도 ‘탈락’이라고 외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성형·미용 산업은 이런 욕구들에 불을 지피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국내 성형 산업 규모는 정확한 통계가 없다. 성형시술 대부분이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라 정부 차원의 통계 집계가 어렵다. 국제미용성형외과학회(ISAPS)에 따르면 국내 성형외과 전문의는 2016년 기준 2330명으로 보고됐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박상현 기획이사는 “2017년 기준 보톡스·필러·성형 등을 포함한 성형 시장 규모는 연간 5조원으로 추산된다”며 “성형외과 전문의는 대학교수를 제외한 개업의가 1800명쯤, 미용 성형을 하는 성형외과 비전문의는 전문의의 10배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외모에 가해지는 ‘사회적 메스’가 점점 정교하고 촘촘해지면서, 성형 세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주로 얼굴에 이뤄진 성형수술이 몸으로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박 이사는 “10년 전쯤에는 가슴확대수술을 하면 보형물 크기가 250㏄ 정도면 무난했으나 요즘에는 몸매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서양에서만 쓰던 300㏄ 이상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며 “최근 4, 5년 사이 엉덩이 성형도 증가했다”고 전했다. 남성들도 예외는 아니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에 대한 동경이 늘면서, 인위적 ‘식스팩’을 만드는 수술도 등장했다.

◆‘아름다워지려다…’ 부작용도 심각

성형 산업의 고도화는 성형중독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박 이사는 “전체 수술건수가 늘어나면 일반적으로 재수술이 늘어나게 된다”며 “수술 결과가 안 좋아 여러 번 하는 경우도 있으나 본인이 원하는 특정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닥터 쇼핑’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관련 분쟁도 늘고 있다. 20대 남성 C씨는 성형외과에서 기증늑연골을 이용해 코 수술을 받기로 했으나 지난해 12월 수술 후에야 인공 보정물(Osteomesh)이 사용됐음을 알고 한국소비자원을 통해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성형 의료분쟁 조정 신청의 경우 2013년 51건에서 지난해 102건으로 두 배나 늘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측은 “성형외과는 평판이 가장 중요하기에, 중재원에 조정 신청이 들어오기보다 환자·병원 간 합의로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10대로 내려온 ‘외모 성적표’

‘외모 강박 사회’는 10대 청소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소속 녹색건강연대가 전국 남녀 초·중·고등학생 47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초등학생의 12.1%, 중학생의 42.9%, 고등학생의 32.3%가 매일 색조화장을 한다고 답했다. 체중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컸다. 2015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공개한 ‘정상체중 중학생의 체형인식이 자아존중감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학생 중 정상체중에 속하는 남학생의 26.6%, 여학생의 42.4%가 자신을 과체중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른 화장이 유행하면서 피부과를 찾는 학생도 늘고 있다. 아름다운나라피부과성형외과 이상준 원장은 “어려서부터 화장을 하다 보니 피부과에 오는 청소년이 5년 전쯤부터 느는 추세”라며 “화장의 무서운 점은 매일 한다는 것인데, 알레르기·독성 요인들이 축적되면 사춘기·성인이 될수록 피부 상태가 돌이킬 수 없어진다”고 경고했다.

기성세대의 왜곡된 가치관에 청소년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7월 한국여성민우회가 ‘성평등한 학교를 위해 달라져야 할 것들’을 주제로 연 10대 여성 집담회에서는 학내 폭력적인 문화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한 학생은 “3학년이 되면 취업에 들어가는데 ‘성적, 얼굴에 자신 없으면 콜센터 가라, 면접 볼 때는 화장하고 뚱뚱한 애들은 다이어트하라’는 얘기도 한다”며 “100㎏이었다가 다이어트 후 취업에 성공한 경험담을 교내 방송에 내보내기도 한다”고 전했다.

◆美의 기준 왜곡… 미디어·의료계 자성해야

‘외모 과몰입 사회’에서 탈출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미디어와 의료계 모두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정부 차원의 정책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일상 속 개인의 변화 역시 필수다.

여의도성모병원 뇌건강센터 나해란 교수는 “외모 집착은 개인의 질병이지만 사회가 조장하는 질병이기도 하다”며 “방송 프로그램만 봐도 이상적 외모가 아니면 열등하다고 비하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는데 공익적·정서적 측면을 생각했을 때 미디어에서 다양한 미적 기준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부터 미인대회 반대운동·‘러브 마이 바디’ 캠페인 등을 벌여온 한국여성민우회 측은 “다른 나라 사례와 국내 청소년 신체 조사 등을 보면 한국의 외모 인식 문제가 심각함에도 사회적 경각심이 떨어지는 것 같다”며 “건강한 몸에 대해 고민을 담은 몸 다양성 보장법 제정 등 정책적으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우회 측은 몸 다양성 보장법에 참고할 만한 내용으로 여성 모델을 과하게 ‘포토숍’한 광고를 심의하는 영국의 광고제한 제도, 거식증 예방을 위해 저체중 모델의 패션쇼 출연을 제한한 스페인 마드리드시의 조치와 프랑스 패션·광고 업계의 ‘건강한 몸’ 권장 협약, 아르헨티나의 ‘옷 사이즈 다양화법’ 등을 들었다. 이들은 “몸 다양성 보장법은 장기적으로 ‘다양한 몸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건강한 사회’라는 가치를 정착시키는 법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성형의료 관광객 유치에 치우친 정부 정책, 성형광고 규제의 부재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우회 측은 “2015년 ‘성형산업 스파이’ 조사 활동 결과 불법 광고성 기사가 하루에도 수십 건씩 발견됐다”며 “성형 광고에 부작용을 병기하고 과장된 수술 전후 사진도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박상현 기획이사 역시 “선진국 대부분에서는 성형외과 광고에 병원·전문의 이름과 전화번호·홈페이지 주소 정도만 명기한다”며 “광고가 정보도 줄 수 있지만 무리한 내용이 실릴 수 있어 저희는 전에는 ‘아예 광고하지 말자’는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서울 신사역 안에 설치된 광고.
각종 제도 변화와 함께 개개인의 인식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 민우회 측은 ‘외모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일주일’을 실천해볼 것을 제안했다. 우리 사회는 ‘자기 오늘 예쁘네, 살쪘네, 머리 좀 해야겠다’처럼 무심코 내뱉는 외모 얘기가 범람하기에, 의식적으로 언급을 삼가보자는 취지다.

박 이사는 “남과 비교하고 동경하기보다 ‘난 이 자체로 괜찮아’하는 자존감이 높아져야 한다”며 “또 성형수술은 암 수술처럼 꼭 해야 할 수술이 아니기에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고, 성형외과의사회에서 제시한 ‘안전한 성형수술을 위한 7가지 수칙’을 숙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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