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대 후반 여성 B씨는 미인이었다. 그럼에도 몇 번에 걸쳐 성형수술을 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외모가 중요한 직업을 가지다 보니 성형에 관심이 쏠렸다. 문제는 그 후였다. 바뀐 얼굴이 어딘지 어색했다. 남들이 보기엔 여전히 미인이었지만 ‘어색하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뒤늦게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이 들었다. 이전 얼굴을 영원히 되찾지 못할 것만 같았다. 성형외과에서 재수술을 받던 그는 결국 심한 우울과 비관 증세에 정신의학 전문의를 찾았다.
외모에 대한 강박이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진 사례들이다.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현상들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규격화된 미’에 대한 집착이 도를 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와 대중매체의 발달로 몸 구석구석 돋보기를 들이대고, 심판대에 올려 우열을 나누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여자는 예쁘면 고시 3관왕’ ‘외모도 재능’이란 표현도 문제의식 없이 회자된다. 불가능한 미적 기준을 향한 열망은 무리한 다이어트·성형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10대도 예외는 아니다. 모두를 옭아매는 ‘외모 감옥’ 속에서 한국 사회의 행복지수는 그만큼 떨어지고 사회적 다양성도 훼손되고 있다.
우리 사회 ‘외모 정답지’는 기이하고 극단적이다. 눈·코·팔·다리 어느 하나 기준에 어긋나면 가차 없는 품평이 쏟아진다. 외모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우선하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여의도성모병원 뇌건강센터 나해란 교수는 “‘예쁘다, 잘생겼다’ 기준이 미디어에 의해 굉장히 획일화되는 경향”이라며 “미남 하면 연예인 누구, 미녀 하면 누구 식으로 인식 자체가 표준화됐고 이 기준에 맞지 않으면 미인에서 제외된다”고 지적했다. 10년차 직장인 손모(38)씨는 “네티즌들이 여성 사진을 놓고 ‘골반이 아쉽다, 가슴이 처졌다’ 품평하는 걸 보면 넌더리가 난다”며 “공식이라도 있는 듯 몸 곳곳에 줄자를 대고 조금만 안 맞아도 ‘탈락’이라고 외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성형·미용 산업은 이런 욕구들에 불을 지피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국내 성형 산업 규모는 정확한 통계가 없다. 성형시술 대부분이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라 정부 차원의 통계 집계가 어렵다. 국제미용성형외과학회(ISAPS)에 따르면 국내 성형외과 전문의는 2016년 기준 2330명으로 보고됐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박상현 기획이사는 “2017년 기준 보톡스·필러·성형 등을 포함한 성형 시장 규모는 연간 5조원으로 추산된다”며 “성형외과 전문의는 대학교수를 제외한 개업의가 1800명쯤, 미용 성형을 하는 성형외과 비전문의는 전문의의 10배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외모에 가해지는 ‘사회적 메스’가 점점 정교하고 촘촘해지면서, 성형 세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주로 얼굴에 이뤄진 성형수술이 몸으로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박 이사는 “10년 전쯤에는 가슴확대수술을 하면 보형물 크기가 250㏄ 정도면 무난했으나 요즘에는 몸매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서양에서만 쓰던 300㏄ 이상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며 “최근 4, 5년 사이 엉덩이 성형도 증가했다”고 전했다. 남성들도 예외는 아니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에 대한 동경이 늘면서, 인위적 ‘식스팩’을 만드는 수술도 등장했다.
성형 산업의 고도화는 성형중독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박 이사는 “전체 수술건수가 늘어나면 일반적으로 재수술이 늘어나게 된다”며 “수술 결과가 안 좋아 여러 번 하는 경우도 있으나 본인이 원하는 특정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닥터 쇼핑’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관련 분쟁도 늘고 있다. 20대 남성 C씨는 성형외과에서 기증늑연골을 이용해 코 수술을 받기로 했으나 지난해 12월 수술 후에야 인공 보정물(Osteomesh)이 사용됐음을 알고 한국소비자원을 통해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10대로 내려온 ‘외모 성적표’
‘외모 강박 사회’는 10대 청소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소속 녹색건강연대가 전국 남녀 초·중·고등학생 47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초등학생의 12.1%, 중학생의 42.9%, 고등학생의 32.3%가 매일 색조화장을 한다고 답했다. 체중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컸다. 2015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공개한 ‘정상체중 중학생의 체형인식이 자아존중감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학생 중 정상체중에 속하는 남학생의 26.6%, 여학생의 42.4%가 자신을 과체중으로 여기고 있었다.
기성세대의 왜곡된 가치관에 청소년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7월 한국여성민우회가 ‘성평등한 학교를 위해 달라져야 할 것들’을 주제로 연 10대 여성 집담회에서는 학내 폭력적인 문화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한 학생은 “3학년이 되면 취업에 들어가는데 ‘성적, 얼굴에 자신 없으면 콜센터 가라, 면접 볼 때는 화장하고 뚱뚱한 애들은 다이어트하라’는 얘기도 한다”며 “100㎏이었다가 다이어트 후 취업에 성공한 경험담을 교내 방송에 내보내기도 한다”고 전했다.
‘외모 과몰입 사회’에서 탈출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미디어와 의료계 모두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정부 차원의 정책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일상 속 개인의 변화 역시 필수다.
여의도성모병원 뇌건강센터 나해란 교수는 “외모 집착은 개인의 질병이지만 사회가 조장하는 질병이기도 하다”며 “방송 프로그램만 봐도 이상적 외모가 아니면 열등하다고 비하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는데 공익적·정서적 측면을 생각했을 때 미디어에서 다양한 미적 기준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부터 미인대회 반대운동·‘러브 마이 바디’ 캠페인 등을 벌여온 한국여성민우회 측은 “다른 나라 사례와 국내 청소년 신체 조사 등을 보면 한국의 외모 인식 문제가 심각함에도 사회적 경각심이 떨어지는 것 같다”며 “건강한 몸에 대해 고민을 담은 몸 다양성 보장법 제정 등 정책적으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 성형의료 관광객 유치에 치우친 정부 정책, 성형광고 규제의 부재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우회 측은 “2015년 ‘성형산업 스파이’ 조사 활동 결과 불법 광고성 기사가 하루에도 수십 건씩 발견됐다”며 “성형 광고에 부작용을 병기하고 과장된 수술 전후 사진도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박상현 기획이사 역시 “선진국 대부분에서는 성형외과 광고에 병원·전문의 이름과 전화번호·홈페이지 주소 정도만 명기한다”며 “광고가 정보도 줄 수 있지만 무리한 내용이 실릴 수 있어 저희는 전에는 ‘아예 광고하지 말자’는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서울 신사역 안에 설치된 광고. |
박 이사는 “남과 비교하고 동경하기보다 ‘난 이 자체로 괜찮아’하는 자존감이 높아져야 한다”며 “또 성형수술은 암 수술처럼 꼭 해야 할 수술이 아니기에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고, 성형외과의사회에서 제시한 ‘안전한 성형수술을 위한 7가지 수칙’을 숙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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