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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사라진 조선소… 폐허로 변한 주변 동네[밀착취재]

끝 모를 불황 터널…"IMF 때 보다 더 어려워"/폐허로 변한 ‘조선업 메카’/통영, 6개 조선사 중 5개 연쇄 폐업/마지막 성동조선해양마저 위기 겪어/거제도 관련 업종 3분의 1 문 닫아/울산·군산, 빙하기 겪으며 얼어붙어/인근 상가·주택들 곳곳이 텅텅 비어/차량도 거의 안보여 스산함만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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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10 21:34:44      수정 : 2018-09-10 22:00:07
10일 낮 12시 경남 통영시 도남동 식당가. 수년 전 같으면 신아SB조선소 직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북적였을 이 거리에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임대’라고 써 붙여 놓은 식당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고 한때 7개의 식당과 당구장, 노래방이 있던 3층짜리 건물은 통째로 비어 있었다. 이곳에서 5년째 식당을 하는 김모(55·여)씨는 “신아조선소가 문을 닫은 뒤 점점 상황이 나빠져 지금은 한 달 임대료도 겨우 맞춰 주는 지경이 됐다”며 “떠날 사람은 모두 갔다. 동네가 폐허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텅 빈 조선소 10일 경남 통영시 신아SB조선소 본관 건물에서 내려다본 전경. 신아조선소는 조선업 불황 등으로 2015년 파산해 텅 비어 있다.
이보람 기자
신아조선소는 조선업 장기불황에 부실경영이 겹쳐 2015년 파산했다. 조선경기가 호황이던 10여년 전에는 5000여명의 근로자가 근무하며 수주잔량 기준 세계 16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조선소 본관 입구는 자물쇠로 굳게 잠겼고, 조선소의 상징이었던 크레인은 흉물이 됐다. 본관 건물 앞 도로마저 지나다니는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적막하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국내 대표적 조선산업 도시인 경남 거제와 통영, 울산 동구, 전북 군산이 조선업 불황의 터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감이 줄면서 조선업체들이 문을 닫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늘어난 탓이다. 특히 조선산업 노동자 중심의 경제활동인구 유출은 실물경제 위기로 이어져 지역경제를 끝없는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

조선산업이 한창이던 2010년 통영의 6개 중형조선소에는 1만8000여명의 근로자가 일했다. 그러나 조선산업 불황으로 5개 업체가 문을 닫고, 마지막 조선소인 성동조선해양마저 위기를 겪으면서 관련 매출과 근로자가 급감했다. 이로 인해 통영 경제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주민들 입에서는 “IMF보다 더하다”는 말이 나온다.

통영 부동산 경기는 직격탄을 맞았다. 신아조선소 인근 10여개의 방이 있는 원룸엔 현재 단 한 명의 세입자만 들어와 있다. 40㎡의 상가건물은 보증금 400만원, 월 30만원에 내놨지만 찾는 사람이 없다. 인근 공인중개업자는 “조선소가 호황이었던 예전에는 월 50만~60만원을 해도 방이 없었는데 지금은 10만~20만원에 내놓아도 세 들어올 사람이 없다”며 “아파트도 미분양이 넘쳐난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있는 거제시에선 3년 만에 4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빠져나갔다. 거제는 전체 인구의 70%가 조선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2015년 12월 말 기준 양대 조선소의 사내·외 협력사를 포함해 375곳에 달했던 지역 조선업체 중 남은 곳은 올해 7월 말 기준 260곳뿐이다.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15곳이 문을 닫았다. 9만2164명이던 종사자는 4만9878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실업급여 신청자는 7월 말 기준 3만3000여명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 늘어난 수치다.

거제 부동산 시장도 얼어붙었다. 지난해 1월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지정됐고, 아파트 매매가격은 최근 1년 사이 20.52%나 급락했다. 원룸 임대업은 붕괴 수준이다.

조선업 노동자들이 빠져나가면서 빈방이 넘쳐난다. ‘임대’가 붙지 않은 원룸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거제시 공인중개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인근 연초면과 삼성중공업 인근 사등면의 경우 텅 빈 원룸건물이 많아 전체 공실률은 60% 이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산업 불황에 울산 인구 32개월째 감소

울산 동구의 사정도 비슷하다. 수주 물량이 없어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가 35년 만에 가동을 중단했다. 정규직 2600여명과 사내협력업체 2000여명 등 해양플랜트사업부 인력 4600여명 중 정규직 600여명만 조선 물량을 소화하거나 해외 설비를 유지·관리하기 위해 남아 있을 뿐이다. 나머지 2000여명의 유휴인력에 대해 회사는 희망퇴직과 무급휴직을, 노조는 유급휴직과 전환배치를 주장하며 갈등을 겪고 있다.

해양산업의 불황으로 울산의 인구는 32개월째 내리막을 걷고 있다. 특히 조선업 불황의 타격을 입고 있는 동구는 2015년 18만1207명에서 올해 7월 말 기준 16만9296명으로 줄어들며 울산 인구 감소를 주도하고 있다. 해양사업부 가동중단으로 인구는 더 줄어들 전망이다.

10일 울산 동구 ‘꽃바위 외국인특화거리’의 한 상가건물에 ‘점포임대’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보람 기자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인근 외국인 선사 직원과 감독관들이 대거 찾던 ‘꽃바위 외국인특화거리’는 ‘외국인 없는 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임대’, ‘FOR RENT’라고 쓰인 현수막이 붙은 건물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곳에서 7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한 업주는 “퇴근시간엔 늘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이제는 매출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식당 앞 3층짜리 원룸도 텅 비어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동구 일대 원룸 임대료는 곤두박질하고 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5만~55만원이던 원룸 임대료는 최근 보증금 100만~200만원에 월세 15만~20만원으로 떨어졌다. 사람이 없다 보니 보증금 30만원에 월세 20만원을 받는 원룸도 있다. 동구청이 집계한 원룸 공실률(빈방 비율)은 2016년과 지난해 각각 10% 수준이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30%까지 치솟았다.

◆군산 지역경제 쌍두마차, 조선·자동차 공장 폐쇄로 ‘빙하기’

전북 군산 지역경제는 빙하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7월 가동을 중단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는 1년이 넘도록 재가동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인근 한국GM 군산공장 역시 지난 5월 경영난 등을 이유로 공장 가동을 멈추고 폐쇄한 지 4개월째 접어들었다. 이들 공장 폐쇄로 군산조선소 협력업체 86개사 중 64개사(74%)가 연쇄부도를 맞았고, 근로자 5250명 중 4859명(93%)이 실업자가 됐다. 한국GM 군산공장 협력업체 149곳 중 적어도 30% 이상이 일감중단과 자금난으로 도산했다.

지역경제를 견인한 쌍두마차였던 두 공장의 잇따른 폐쇄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산단 일대 최대 상권인 오식도동이다. 문 닫은 상가는 아무도 찾는 이가 없어 간판이 떨어져 나가고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일대 원룸에는 ‘방 있음’, ‘세놓음’이라는 문구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부동산업계는 이곳 외식업소 160여곳 중 70%가량이 휴·폐업하고 원룸 521동 평균 공실률이 80% 이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임대아파트는 1500가구 가운데 11% 이상이 공가로 나타났다.

김동수 군산상공회의소 회장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과 지자체 모두 ‘군산경제를 되살리겠다’며 큰소리치지만 시민이 느끼는 경제적 상실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며 “지역경제가 초토화하기 전에 정부 차원의 파격적인 투자지원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업자·자영업 구제책뿐… 조선업 ‘회생 해법’은 빠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긴급자금을 투입하고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찾는 등 조선업 불황으로 타격을 입은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나서고 있다. 그러나 중장기사업이어서 당장 일자리가 끊긴 실직자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데다 중형조선업을 살리기 위한 정책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울산 동구는 지난 5월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됐다. 

정부는 모두 19개 사업에 475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가장 큰 100억원이 편성된 사업은 ‘함양∼울산 고속도로 건설’이다. 이 도로는 2020년 준공이 목표인데, 이미 지난 3월부터 진행 중인 사업이다.

울산대교 전망대 미디어 파사드 등 관광콘텐츠 개발사업도 기존 시설을 보강하는 수준이거나 특색이 없다. 이런 사회간접자본(SOC)과 관광 관련 사업 8개에 전체 예산의 39.4%인 187억2000여만원이 쓰인다. 조선해양기자재 장수명 기술지원센터 구축사업(30억원)과 수소차·수소충전소 보급(45억원)이 미래 먹거리사업으로 추진되지만 모두 내년 말쯤에야 현실화할 수 있는 사업이다.

군산시는 지난 4월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과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됐다. 협력업체 긴급 일자리 창출 지원 등 15개 사업에 6749억원을 투자하는 내용이다.

울산시는 지역경제를 살리는 해법으로 ‘부유식 해상풍력단지 조성’을 내세우고 있다. 국산화 기술을 개발하고 민간이 주도하는 발전단지를 조성한다. 95억원을 들여 2020년까지 울산 앞바다에 5㎿급 부유식 대형 해상풍력 발전시스템 설계기술 개발과 200㎿급 부유식 해상풍력 실증단지 설계기술 개발 과제를 동시에 수행한다. 이와 함께 1GW 규모의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조성해 100~200기의 수요를 창출하기로 했다.

통영시는 LH와 함께 신아조선소 일대를 관광·문화 복합단지로 재개발한다. 조선소 부지와 주변 주거 지역 등 모두 51만㎡를 2026년까지 관광문화단지와 해양수변공원 등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예상 사업비는 민자를 포함해 1조1041억원이다. 이곳에는 국립미술관과 아쿠아리움, 호텔, 쇼핑몰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전북도는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GM 공장 폐쇄로 어려움을 겪는 군산지역 산업구조 개편 대책으로 ‘전기자율주행차’를 해법으로 꺼내들었다.

조선업계에서는 조선산업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이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조선업계의 관계자는 “고용·산업위기지역 지정은 실업자 긴급구제와 지역 자영업자 지원책이지 조선산업을 지원하는 정책이 아니다”며 “수년간 경영 악화로 신용도가 바닥인 중형조선사들에 필요한 건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이나 운영자금 지원방안”이라고 말했다.

조상래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명예교수는 “조선산업과 관련 기자재산업에 도움이 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며 “조선산업은 중소조선소를 바탕으로 대형조선소가 있는 안정적 구조로 바꿔 나가고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연안여객선, 화물선 중고 수입을 막아 우리나라에서 건조하도록 하는 것도 중소조선소와 기자재산업을 살리는 한 방법”이라며 “그동안 호황에 맞춰 부풀려졌던 인건비와 규모 등을 줄여 우리 조선산업이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울산·거제·통영·군산=이보람·김동욱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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