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승현칼럼] 그날 광화문에서 봐야 했던 것

관련이슈 이승현 칼럼

입력 : 2018-09-10 21:36:43 수정 : 2018-09-10 21:36:4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허언을 하고 허깨비 만드는 통계 / 최악은 조작 일삼는 악당이다 / 청장 바꾸는 자충수를 둔 정부는 / 마음속 통계까지 바꿀 수 있나 경제 침체기엔 애들도 힘겹다. 화풀이 대상이 되기 쉬워서다.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미국 전문가들이 아동학대 조사를 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웬걸. 조사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아동보호 기관들은 학대 사건이 줄고 있다고 보고했다. 경제적 타격이 가장 큰 주에서 학대 감소세가 가장 크게 나타나기도 했다.

이 사례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경기가 나빠지면 인성이 좋아진다거나, 가정폭력·아동학대가 줄어든다는 식의 가설 말이다. 물론 통계를 믿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진상 파악을 할 수도 있다. 구글의 데이터 과학자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가 그렇게 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공식 통계와는 정반대다. 당시 구글에선 “아빠가 나를 때려요” 같은 검색어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아동학대 검색률은 지역 실업률과 정비례해 증가했다. 통계 지표는 뜬구름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승현 논설고문

통계도 허언을 하고 허깨비를 만든다. 사람과 똑같다. 때론 통계에 내재한 함정이 한몫한다. 통계학계의 우스갯거리인 ‘윌 로저스 현상’이 대표적이다. 미국 배우이자 풍자가 윌 로저스는 “오클라호마 농부들이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바람에 두 주의 평균 지능지수(IQ)가 높아졌다”고 했다. 이주한 농부의 IQ가 오클라호마 평균보다 낮고 캘리포니아 평균보다 높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다. 두 주의 전체 평균은 그대로지만 개별 평균은 달라지는 것이다. 훨씬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심슨의 패러독스’ 같은 경우도 엄존한다.

미국 아동학대 혼선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윌 로저스 현상 등은 아니다. 다비도위츠는 아주 적은 아동학대 사례만이 보고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왜? 보고선상에 있는 교사, 경찰 등 관계자 대부분이 너무 일이 많았거나 아예 일자리를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통계 자체의 함정도 문제지만 통계 생산 과정의 함정도 만만치 않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통계에 의도적 조작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이다. 독일 통계학자 디터 호흐슈테터는 “통계 자체는 사악하지 않다”면서도 ‘바보’와 ‘악당’을 경계하라고 했다. 바보는 기법에 어두운 탓에 그릇된 통계를 생산하는 부류다. 악당은 자기 이익을 위해 통계를 악용하는 부류다. 악당이 최악이다. 영국의 19세기 정치인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했다. 디즈레일리도 악당이 가장 싫었을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얼마 전 통계청장을 교체했다. 재난에 가까운 고용·소득분배 통계가 줄줄이 나온 끝에 단행된 전격 인사였다. 기상천외의 자충수이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광화문에 모인 상공인들이 통계 때문에 들고 일어났겠나. 시류가 그렇게 흘러가면 정책조합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들여다봐야지 왜 애먼 통계청을 손보나. 교체 카드도 가관이다. 신임 청장은 가계동향조사의 소득 부문 통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청와대에 역설한 인물 아닌가.

공공통계는 정책의 기반이고 국정 신뢰의 토대다. 이번 인사는 그 기반과 토대를 무너뜨린 허물이 크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국민의 전폭적 신뢰를 얻기가 어렵게 됐으니 탈이다. 앞으로 악당으로 비치지만 않아도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내일 8월 고용동향이 공개된다. 전달에 ‘신규 취업자 증가 5000명’ 수치가 나와 정부를 뒤흔든 바로 그 지표다. 구체적 내용은 아직 미지수지만 국민 반응이 어떨지는 뻔하다. 청와대에 유리한 통계가 발표되면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돌릴 테고, 불리한 지표가 나오면 예전보다 더욱 크게 혀를 차기 십상이다.

통계청 서랍에만 통계가 있나. 전국 수백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마음속에도 통계가 있다. 그 통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가게를 접을지 말지 고민하게 하는 각박한 현실이다. 그래서 가족 생계가 걸린 그 생생한 통계에 떠밀려 폭우 쏟아지는 광화문에 나서는 것이다. 청와대가 통계청장을 바꾸고, 신임 청장이 숫자를 어루만져서 그 마음속 통계까지 바꿀 수 있나.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억지를 부리고 생떼를 쓰니 상처만 덧나는 것이다.

이승현 논설고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