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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역사 - 9월10∼16일] 석유의 새 주인이 된 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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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09 21:31:27 수정 : 2018-09-09 21: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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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9월14일 5개 산유국이 결성한 오펙(OPEC·석유수출국기구)은 별 볼일 없는 모임 같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이란 , 베네수엘라 등 회원국의 면면은 당시만 해도 하나같이 허약한 후진국의 인상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세계 석유의 주인처럼 행세하던 강대국의 7대 석유회사에게 도무지 말발이 설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나마 오펙이 눈길을 끈 것은 냉전이 한창인 시점이어서 동서 양 진영이 서로 제3세계에 추파를 던지던 분위기 덕택이었다.

아프리카에서도 해방의 북소리가 요란했고 이에 소련이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다. 그러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나자 오펙은 갑자기 공룡 같은 존재로 변모해 전 세계를 오일쇼크로 뒤흔들었다.

중동전에서 아랍 측이 이스라엘에 패하자 아랍 국가가 주축을 이뤘던 오펙은 원유 값을 17%나 올리기로 한 것이다.

오펙은 뒤이어 이스라엘이 아랍 점령지역에서 철수하는 등의 요구 조건이 이루어질 때까지 매월 5%씩 감산한다고도 선언했다. 그래서 오펙은 갑자기 ‘석유’를 넘어, 그리고 ‘경제’를 넘어 국제정치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회원국도 늘어나 이제 14개국 ‘석유 부자’들이 가담한 막강한 조직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오펙 결성 당시만 해도 어딘지 사막의 모래나 뒤집어쓰듯 초라한 이미지의 중동 국가가 이제는 ‘기름기’가 흐르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물론 오펙의 전도가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석유 수입으로 배가 불러서 일까. 오펙 결성 당시만 해도 잠잠했던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 노골화돼 예멘에서는 오펙 회원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쟁이 한창이다.

지난날 한목소리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던 전열이 흐트러진 것도 역사에서 낯익은 일이다.

양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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