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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의인문상식] 원칙과 예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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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07 23:54:56 수정 : 2018-09-07 23: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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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원칙 잘 지켜지고 있나 / 예외의 남발은 사람들의 공분 불러 자연 법칙은 우주의 기원과 그 시작을 같이한다. 법칙이 없으면 우주의 생성과 운행은 설명될 수 없다. 인류의 탄생도 자연 법칙의 일부에 해당된다. 반면 사회 규범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흔히 인류가 생겨나자마자 규범이 생겼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세계 문화사를 보면 인류가 동질성을 갖는 동족 단위에서 공동의 기억과 암묵적 합의를 중시하고 인류가 다른 종족과 접촉하고 혼거하면서 성문의 규범을 만들었다. 사람은 자신과 다른 타자를 만나면서 서로를 동등하게 규제할 규범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원칙은 몇몇 중요한 특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이견을 전제한다. 생각과 욕망이 똑같다면 굳이 원칙이 있을 필요가 없다. 사람의 욕망이 다르고 생각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원칙을 통해 판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준의 역할이다. 원칙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또는 타당하고 부당한지 판정하는 잣대로 기능한다. 서로 생각이 달라 하나로 좁혀지지 않는데도 기준이 없으면 각자 옳다고 주장하게 된다. 각자의 주장이 되풀이된다면 사람의 사이가 갈등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어 공평성의 특성이다. 원칙은 특정 사람, 집단, 단체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해서는 안 된다. 특정인이 원칙에 어긋나서 ‘그르다’거나 ‘부당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의도해서 그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다. 또 누군가 한 차례 원칙에 일치해 ‘옳다’거나 ‘타당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해서 영원히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이러한 원칙의 세 가지 특성이 존중되지 않으면 원칙은 원칙으로 기능할 수 없다. 하지만 원칙은 많은 상황을 고려해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안이 생길 수도 있다. 이에 우리는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어떤 규정을 정할 때 “원칙으로 한다”고 해 상황에 따라 예외를 허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예외의 남용으로 인해 공분이 분출되고 있다. 사안에 따라 세계 유일의 분단 상황, 뒤늦은 산업화 등을 고려해 이해할 수 있지만 예외가 특권으로 비쳐지는 경우도 있다. 예외가 터무니없이 남용되면 예외의 대상자는 오히려 과도한 공격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원칙 자체도 무너지게 된다. 이제 지금까지 당연히 여긴 예외의 지속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맞게 재조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예외의 대상자도 영광스러울 수 있고 원칙은 존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은 공정하게 거두는 만큼이나 엄정하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근래 청와대를 시작해 국회와 사법부 등 다양한 기관의 특수활동비가 공분의 대상이 됐다.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필요한 국정 수행 활동에 드는 경비를 말하는데, 바로 이 때문에 영수증 등 근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특수활동비가 분단 상황과 국익 수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서민은 한 달의 소득을 알뜰하게 쪼개서 쓰고 기업에서도 작은 금액도 근거 자료를 남기는 엄연한 현실에 비춰볼 때 특수활동비의 무분별한 사용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국회는 여론의 화살을 수용해 의원의 특수활동비를 없앤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특수활동비의 사용에 대해 포괄적 허용만 있지만 세세한 규정은 없다. 원래의 목적에 맞게 집행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필요하다.

사례는 특수활동비에만 그치지 않고 사법부의 재판 거래의 의혹, 아시안 게임의 병역 면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예외의 남발이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 운용을 뒷받침한다는 이유로 사법부가 과거사 문제에 국가배상 책임을 제한한 판결을 내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정 사안이 엄정하게 판결되지 않으면 사법부의 신뢰를 훼손하게 된다. 예외의 허용은 원칙의 경직된 운용을 피할 수 있는 지혜의 발휘이다. 예외의 남용은 그 지혜를 사익 도모에 활용해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예외가 특권이 되지 않도록 엄격한 예외의 규정이 필요하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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