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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을 들었다 놨다… 스포츠 외교의 막전막후

입력 : 2018-09-08 03:00:00 수정 : 2018-09-07 21: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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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웅 지음/(주)박영사/2만8000원
스포츠 외교의 신화/정기웅 지음/(주)박영사/2만8000원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은 지금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분기점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스포츠 외교의 중요 성공사례로 기억되고 회자될 것이다. 스포츠외교를 학문적으로 정립한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정기웅(사진) 박사의 해박한 지식이 담긴 책이다.

정 박사는 스포츠 외교의 이론적 검토와 성공, 실패를 풀이하면서, 스포츠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스포츠 외교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은 ‘핑퐁외교’였다. 핑퐁외교는 스포츠 외교가 널리 쓰이게 된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1971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세계탁구 선수권대회에 중국선수단이 참가했다. 대회가 끝난 이후 중국은 그 대회에 참석한 미국 선수단 15명을 베이징으로 초청했다. 이들은 1949년 신중국 이후 중국 대륙을 공식 방문한 첫 미국인들이었다. 이른바 핑퐁외교로 냉전 종식의 물꼬를 텄다. 핑퐁외교는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에 이어 미·중 수교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귀결되었다.

정 교수는 스포츠외교 가운데 올림픽을 으뜸으로 친다. 아직 올림픽은 실패와 성공이라는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는 1960년 도쿄올림픽과 1988년 서울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들 수 있다. 도쿄올림픽은 패전의 멍에를 벗고 다시 우뚝서는 일본을 각인시킨 대회였고, 베이징올림픽은 ‘중화의 부활’이라는 중국공산당의 업적을 전 세계에 자랑한 자리였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는 1972년 뮌헨올핌픽이었다. 개최 도중 이스라엘 선수단이 테러 공격을 당해 수십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빚어졌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은 경제적으로 실패한 사례로 평가된다. 올림픽 개최에 들어간 빚을 갚는 데에만 무려 30년이 걸렸다고 한다. 냉전 속에 치러진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1984년 LA올림픽은 반쪽 올림픽이었다. 올림픽의 몰락을 살려놓은 것은 서울올림픽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민주진영과 공산권 블록이 함께 인정했던 첫 올림픽이 되었다. 특히 서울올림픽을 통해 올림픽이 얼마나 돈이 되는지를 입증할 수 있었다.

정 교수는 “서울올림픽을 통한 스포츠외교는 효율성 논란과 함께 침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올림픽 대회가 국민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IOC 같은 국제스포츠 단체나 세계적 규모의 다국적기업이 돈을 버는 쪽으로 치러지면서 재평가되었다”면서 “다시금 올림픽 무용론 내지 불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저자는 향후 “남북관계에 스포츠가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체계적인 연구를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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