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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핀 채 스러져간 근대 재정개혁 설계자

입력 : 2018-09-08 03:00:00 수정 : 2018-09-07 21: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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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격변 시대의 정치엘리트 / 어윤중의 삶 오롯이 들여다봐 / 조선 재정제도 근대체계로 개혁 / 민생안정·부패척결에 동분서주 / 40대 비명횡사… 안타까운 생 마감 / 이 시대에 새롭게 불러내 재조명
김태웅 지음/아카넷/1만5000원
어윤중과 그의 시대/김태웅 지음/아카넷/1만5000원


격변 시대에 시대를 앞서간 정치엘리트 어윤중(魚允中·1848~1896)의 삶을 들여다본 역사평설이다. 서울대 사대 역사교육과 김태웅 교수는 이 책에서 어윤중의 어이없는 죽임을 애도하면서, 그의 재능이 꽃피지 못하고 사라져갔음을 고증을 통해 밝혀낸다. 어윤중은 아관파천 직후 1896년 경기도 용인에서 고향 보은으로 낙향하는 노상에서 비명횡사했다. 노상에서 몽둥이 폭행으로 숨졌다는 것 외에는 아직 알려진 게 없다. 그의 후손들은 살아온 이력마저 거의 남기지 못했고, 무덤조차 어디 있는지 모른다.

당대 저명인사 윤치호는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 내가 가장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고, 역사가 박은식은 “결단성이 있어 강직한 신하가 되었다가, 죽임을 당하여 많은 사람이 슬퍼하였다”고 했다. 저자는 어윤중이 자신의 행적을 기록한 ‘종정연표’를 토대로,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등의 자료를 보완해 완성했다.

솔직히 한국근대사에서 지조 있는 애국지사와 열정적인 혁명가는 많은데, 왜 유능하고 냉철한 정치가와 관료는 등장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실제 적용 가능한 정책을 수립·집행해 나라를 구하려 한 실질적 인물은 없었을까. 예컨대 근대화의 선각자로 불리는 김옥균은 조급하게 개혁하려다 결과적으로 일본 침략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후대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영웅으로 부각되곤 했다. 변혁을 꿈꾼 청년들의 우상이었던 전봉준은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기에는 정치적, 사회적 기반이 열악했다. 

구한말 시대를 기술한 지금 역사 교과서에서도 어윤중은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지 않았다. 온건 개화파라든가 심지어 친청파라는 달갑잖은 별칭도 붙었다. 어윤중 등 온건개화파는 민씨정권에 대항하지 못하고 청의 보호에 안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사 교과서 등에서 김옥균 등 급진개혁파는 높이 치켜세우는 반면에 어윤중, 김윤식, 김홍집에 대한 인식은 낮게 평가되었다. 
저자는 “격동의 구한말 시대 실천 가능한 정책으로 정부를 개혁하려 한 진정한 개혁각료로서 어윤중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이런 현실은 학계 주류의 풍조에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이분법적 역사해석이 그 하나라는 것. 역사학계 주류는 사대-독립, 보수-개화라는 이항대립 구도에서 갑신정변-갑오개혁-독립협회-애국계몽운동을 파악하려는 시각이라는 것이다. 폭넓게 당시 시대상을 파악해야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김 교수가 밝혀낸 어윤중의 활약은 컸다. 근대개혁과 주권 수호를 위해 중국과 일본을 드나들며 동분서주했고, 민생 안정과 관료부패 척결을 위해 암행어사와 서북경략사로도 눈에 띄게 활약했다. 1883년 서북경략사 당시 함경도 환곡을 혁파했고, 여기서 얻은 실무 경험으로 조선 중기 재정체계를 근대적 체계로 개혁했다. 당시 간도 땅 국경 획정은 어윤중의 조선사의 쾌거였다. 어윤중은 당시 조선과 청 국경의 실태를 조사하고 문헌 검토를 거친 다음, 두만강 이북의 간도 땅이 조선 영토임을 확정했다. 일본이 서구 세력에 의해 개화되고, 청이 쇠퇴하는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미래의 생존전략을 구상했던 인물이었다.

저자는 “한국근대사의 격랑 속에서 어윤중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이 국가적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며,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기고자 했는가를 서술하고 싶었다”면서 “또한 근대개혁을 추진하다가 난파되었지만 어윤중에 대한 속깊은 기초 작업 없이 성공과 실패, 수구와 개화라는 도식에 사로잡혀 섣부른 평가로 치달은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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