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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명분과 위선과 질투를 넘어 상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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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04 01:22:56 수정 : 2018-09-04 01: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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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 부패 엘리트, 北의 왕조체제/조선조 위선적 선비 문화 닮아/양측 관계 악의·저주로 점철 땐/불행했던 과거 되돌아갈 수도 인류문명사에서 말이나 이름을 숭상하는 명교주의(名敎主義)는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공자의 정명(正名)사상도 그 대표적인 것이고, 가장 최근의 예로는 마르크스의 공산사회주의사상을 들 수 있다. 명교주의는 근대에 들어 유명론으로 발전하였다. 명교주의와 유명론은 이름(언어)이 사물의 실재를 장악하고 지배한다는 주의를 말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실재를 언어와 도구로 도치시키는 유혹에 빠지는 동물임을 인류역사는 보여주었다.

공자의 정명 사상은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君君臣臣)”에서 볼 수 있듯이 군왕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사회균형론의 입장에서 자신의 위치를 준수하는 예치(禮治)를 주장하는 농업사회의 사상이다. 이에 반해 마르크시즘은 사회갈등론의 입장에서 계급투쟁을 통해 평등을 실현할 것을 선동하는 산업사회의 사상이다. 이 둘은 이상론·명분론이라는 입장에서 공통점이 있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공자의 유교사상을 신 유학체계로 만든 주자(朱子)는 욕망을 억제하는 입장(存天理, ?人慾)을 취했고, 마르크스는 아예 욕망을 무시해버렸다. “능력대로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진다”는 마르크스의 공산공유사상은 결국 생산성의 저하로 소득과 문화의 하향평준화와 함께 가난한 나라를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 지구상에 잘 사는 사회주의국가는 없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의해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한 베네수엘라 난민사태를 보면 탈북민과 1997년 문민정부의 외환위기를 겹쳐 떠올리게 된다.

한 나라의 흥망은 지도층의 청렴성과 민도(民度)가 결정한다고 한다. 책상머리 성리학자와 사회주의자들은 명교주의·명분론에 빠지기 쉽다. 최근 경제의 전반적인 침체와 일자리 위기에도, 소득주도성장론을 고집하는 정부와 경제관계자들의 반(反) 기업정서를 보면 혹시 좌파 성리학의 말의 성찬과 모순에 빠진 것은 아닌가 염려된다. 경제를 어떤 이념의 틀에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선순환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지혜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명분론은 실재를 잡기보다는 실재와 싸우다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산업사회에서 가장 큰 원동력을 가진 자는 기업가이다. 기업가에게 사회적 윤리와 도덕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그것도 기업 할 욕망을 일으킨 연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자본주의의 경쟁의 원칙을 죄악시하는 것은 후퇴를 가져오기 십상이다. 인류사회는 가부장-국가사회와 더불어 이미 오랜 경쟁사회였으며 선의의 경쟁만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다른 생물종과의 생존경쟁에서 이긴 인간은 집단내부의 권력경쟁에 들어간 특이한 생물종이다. 그렇지만 악의적으로 경쟁을 하는 사회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악의적으로 경쟁을 하는 자는 경쟁을 ‘투쟁’이라고 말한다. 현대사회에서 투쟁이라는 말을 즐겨 쓴 대표적 인물은 국가사회주의자인 히틀러이다. 그는 자서전의 이름을 ‘나의 투쟁’이라고 했다. 공산사회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계급투쟁’을 할 것을 제안한 마르크스도 같은 반열에 오른다. 두 인물은 인류에게 파시즘(전체주의)을 선물한 자로 기억될 것이다.

선의의 경쟁은 패배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실력이나 능력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현재 체제경쟁을 하고 있는 남북한의 상황이 선의의 경쟁을 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통일과 평화는 앞으로 각종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과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빈곤국이면서, 단말마적으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한 북한이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북한 핵은 처음부터 악의에서 출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에 비핵화의 딜레마가 있다. 북한의 핵보유는 핵기술의 수출을 통해 세계를 위협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체제보장과 남북체제경쟁의 우위를 점령하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대한민국의 현안이기도 하지만 동아시아 혹은 세계에 핵 도미노현상을 막아줄 세계적 과제이다. 북한이 체제보장용으로 만든 핵과 미사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포기종용이 쉽게 받아들여질 것인가는 의문이다. 여기에 어떤 속임수가 개입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취소도 이와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비핵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의외로 핵을 제외한 모든 방면에서 국가경쟁력이 뒤진 북한정권의 자신감의 결여이다. 실력과 능력이 없으면 상대를 의심하게 되고, 속임수를 쓰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남북한은 공히 조선조의 위선적 선비(양반)문화와 관료주의와 가렴주구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출발하였으나 탁상공론과 당쟁을 일삼았던 까닭에 끝내 중국사대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일제에 나라를 잃고 말았다.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문화를 형성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문난적이었던 조선 선비들의 책상머리 공부는 잔혹한 일제를 스스로 맞아들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잘못된 명분과 위선적 전통이 잔존한 가운데 남의 힘으로 독립과 광복을 했다고 해서 사대-식민-노예근성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왕조 전체주의체제와 남한의 부패한 지식권력재벌 엘리트들은 공히 국민 전체의 살림살이를 도외시하던 조선조 선비들을 닮았다. 남북한의 관계가 악의와 저주로 점철된다면 한민족의 국가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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