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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의창] 조선시대 태풍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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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31 21:03:11 수정 : 2018-08-31 2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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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엔 ‘大風’으로… 700여건 등장/“수백명 익사”… 피해 자세히 적어 1959년 사라, 1987년 셀마, 2002년 루사, 2003년 매미 등 모두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가며 큰 피해를 주었던 태풍으로 아직까지 부정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이름이다. 태풍은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북서태평양에서는 태풍, 북중미에서는 허리케인, 인도양에서는 사이클론이라고 한다. 한반도의 지리적인 특성상 매년 3개 정도의 태풍이 영향을 주고 있으며, 8월, 9월, 7월의 순으로 태풍의 빈도가 높다.

지난주 제주도와 남해안 지역을 강타했던 태풍 ‘솔릭’도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동해안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풍을 ‘대풍’(大風)으로 주로 표현하고 있는데, 대풍이라는 검색어만 700여건 등장하고 당시에도 큰 피해를 주었음이 기록돼 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심한 태풍에 대해서는 회오리바람이 인다는 의미에서 ‘구풍’(?風)으로 표현하고 있음도 주목된다. 신숙주가 세종 때 사신으로 일본에 갔을 때의 상황을 담은 ‘세종실록’의 기록에는 “우리나라로 향할 때 구풍을 만나서 여럿이 모두 얼굴빛이 변하였으나, 신숙주는 신색(神色)이 태연자약하여 말했다”는 기록에서 심각한 태풍을 만났음을 알 수 있다. 신숙주의 일본 사행 경험은 훗날 ‘해동제국기’의 저술로 이어졌다.

1414년(태종 14) 8월 4일에는 “밤에 큰바람이 불어 전라도 조선(漕船) 66척이 패몰(敗沒)하여 익사한 자가 200여명이었고, 침수한 쌀·콩이 5800여석이었다”는 기록, “충청도 홍주 등 여덟 고을에 태풍이 불었다. 곡식이 모두 쓰러져 거의 다 손상되었고 초목이 부러졌으며 지붕의 기와가 다 날아갔다”는 1529년(중종 24) 7월의 기록, “황해도의 평산·토산·우봉에 태풍이 불고 큰비가 내려 냇물이 불어 넘쳐 물가의 전답이 태반이나 침몰되었다. 강원도 철원에 태풍이 불고 큰비가 내려 큰 나무가 뽑혀서 넘어졌다”는 1547년(명종 2) 7월의 기록, “강원도 영동과 영서의 여러 읍에 큰비와 바람이 밤낮을 다하도록 내려서 평지가 바다를 이루고, 밭과 논이 다 모래와 자갈땅이 되었으며, 관청과 정자가 혹은 영원히 기지(基址)가 없어지기도 하였다. 표몰(漂沒)된 인가(人家)가 대략 1500여가구에 달하고 빠져 죽은 인물이 290여명이나 되었으니, 수백년 동안에 있지 않았던 변이었다. 경상도에도 풍우가 강원도와 다름이 없었으니, 사망한 인물이 250여명이고 표몰된 가사(家舍)가 700여가구나 되었다. 안동 일대는 재해를 입은 것이 더욱 심하여 큰물에 성안까지 잠기었다”는 1711년(숙종 37) 7월의 기록 등에서는 태풍의 피해 지역과 강도까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주도는 태풍 피해가 가장 심한 지역이었다. 1653년 대만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던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류한 것도 태풍의 영향 때문이었다.

현종 때인 1671년(현종 12) 9월 현종은 태풍으로 인해 제주에 큰 피해가 발생하자 “생각건대, 저 세 읍은 바다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민중(民衆)이 1만여가구 살고 있으되 지역이 좁은 데다 푸른 파도 너머 천리길인데 배가 근근이 통할 뿐이다. 살아가기가 어렵고 정리가 막히는 것이 천하 백성 중 제일 심할 것이다. (…) 수많은 백성 중 모두가 아픈 백성이지만, 너희 해도(海島)의 백성은 더욱 마음 아픈 자들이다”라는 위로의 글을 보냈다. 이어서 어사를 파견해 한라산에 제사를 지내게 한 다음, 정부 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제주 백성에게 무명 4000필과 보리 종자 2000섬을 내리고, 진상하는 토산물과 신공(身貢) 감면, 유생·무사를 모아 시험을 쳐서 이들을 뽑을 것, 민간에서 효성과 우애, 절행(節行)이 특별히 나타난 자를 정표(旌表)할 것 등인데 재해 난민에 대한 요즘의 정부 지원책과도 유사한 점이 많다.

태풍의 습격은 과거나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번 솔릭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진로나 강도조차 예상을 벗어나기가 십상이다. 태풍과의 한판 승부에서 우리가 확실히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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