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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일간 우주 생활… 그곳에서의 희로애락

입력 : 2018-09-01 03:00:00 수정 : 2018-08-31 19: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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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 체류기록 美 우주인 스콧 켈리 에세이/기본 임무는 우주정거장서 신체변화 관찰/상추?꽃도 길러… 우주식량 재배 사전 연구/
고립된 공간서 의지할 대상은 오직 동료뿐/생일이면 함께 기뻐하고 귀환하면 슬퍼해
“무미건조하고 생기 없는 이곳 우주정거장이지만, 지구의 멋진 조망을 볼 수 있는 창이 있지요.

지구를 내려다보는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남들 모르게 나 혼자서 지구를 친하게 알고 지내는 기분이지요.

ISS(우주정거장)에 대원이 새로 합류할 때마다, 꼭 이곳 ‘쿠폴라’(지구가 내려다보이는 넓은 창으로 된 모듈)에 데려갑니다.

바하마 군도를 보여주기 위해서지요. 바하마를 보고 있으면 늘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에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해안선, 지형, 산맥, 강이 보입니다. 일부 지역, 특히 아시아 쪽은 대기오염이 워낙 짙게 덮여 있어 병든 것처럼 보여요.

여기서 살다 보면 자연이 얼마나 절절히 그리워지는지,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우리 대원들은 모두 자연의 소리 녹음한 것을 즐겨 들어요. 빗소리, 새소리, 나뭇가지에 바람 부는 소리…”

스콧 켈리 지음/홍한결 옮김/클/2만2000원
인듀어런스/스콧 켈리 지음/홍한결 옮김/클/2만2000원



미국 우주인 스콧 켈리(Scott Kelly)의 340일간 우주생활기의 한 대목이다. 몇년 전 샌드라 불럭과 조지 클루니 주연의 영화 ‘그래비티’가 큰 인기를 끌었다. 우주에 대한 경외와 영감을 영화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유명했다. 이 책은 마치 영화 그래비티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켈리는 ISS에서 우주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직후 이 책을 썼다. 우주생활 에세이다. 그는 지금까지 네 차례 우주비행으로 모두 520일을 우주공간에 머물렀다. 그중 마지막 340일간 우주에 살면서 미국인 최장 우주체류 기록을 세웠다.

켈리는 2015년 3월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소유즈 우주선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ISS였다. 세계 각국이 참여하여 만든 거대한 우주생활 비행체다. ISS로 파견된 우주인들의 일과는 분초 단위로 이뤄진다. 기본 임무는 무중력의 공간에서 생기는 신체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이다. 켈리는 특별케이스다. 지구에 있는 쌍둥이 형제와 DNA 변화를 분석하는 실험대상이었다. 우주식량 재배를 위한 사전연구로 상추와 꽃도 길렀다. 우주유영도 한다. 우주유영은 아주 위험하다. 우주생활에서 작은 실수로 생사가 오가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켈리는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우주의 긴박함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저자 스콧 켈리는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340일간 우주에서 생활해 미국 우주인으로는 최장 기록을 갖고 있다. 저자가 지구를 볼 수 있는 모듈 ‘쿠폴라’에서 바하마제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우리 미국 쪽은 자주 러시아 우주인의 소변을 받는다. 그것을 우리가 화학처리해 물로 만든다. 러시아 우주인의 소변은 이곳에서 러시아와 미국 간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물물교환 상품 중 하나다. 러시아는 우리에게 소변을 주고, 우리는 태양전지판에서 생산된 전기를 나눠 준다. 그쪽은 자기들 엔진으로 정거장을 추진해 정상 궤도에 다시 올려놓고, 우리는 그쪽에 물자가 모자랄 때 나눠 준다.” 우주에는 이렇듯 국경이 없다. 주말에는 지구와 비슷한 일상이다. 여유와 함께 누리는 가족들과의 통화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요리가 그립다. 신선한 재료를 써는 느낌이, 채소 썰 때 나는 냄새가 그립다. 씻지 않은 과일 향기가 그립다. 신선한 농산물이 수북이 쌓여 있는 마트 풍경이 그립다. 원색의 진열대, 매끄러운 타일 바닥, 통로를 오가는 낯선 사람들이 그립다. 사람이 그립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친해지는 것이 그립다. 남들이 사는 이야기, 내가 모르는 경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립다.”

무중력 공간에서 운동은 필수다. 운동을 하려면 멜빵을 찬 다음 러닝머신의 로프에 연결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어디로 튕겨 날아갈지 모른다. 우주식으로 포장된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말라붙은 땀 조각을 물티슈로 수습하고 수건으로 물기를 훔치는 것으로 샤워를 대신한다. 소변을 보는 것도 자칫 새면 방울방울 날아다니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한다. 모아둔 소변은 증류하여 식수로 만들어 마신다. 평범하게 누리던 일상도 우주라는 색다른 공간에선 모든 것이 특별해진다.

고립된 우주공간에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오로지 동료 대원뿐이다. 누구의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는 함께 기뻐하고,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는 동료를 보내면 함께 슬퍼한다. 생사를 오가는 긴급상황인데도 지상의 관제센터가 태연할 때는 분노했다.

최고 과학영재만 우주인이 된다는 법은 없다. 만년 열등생 켈리가 베테랑 우주인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 수많은 노력이 쌓였기에 가능했다. 우주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켈리의 이야기는 한줄기 빛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출간 후 23개국에 수출되었고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켈리의 성공적인 우주체류는 2030년 나사에서 준비 중인 유인화성탐사에 희망적인 기대를 갖게 한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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