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황방열 지음/메디치미디어/1만6000원 |
“‘저 두 사람이 손잡고 높이 5㎝, 폭 50㎝의 작은 군사분계선을 치우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상황을, 많은 사람이 상상하면서 눈물이 났을 겁니다. 분단시대, 분단체제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내 생전에는 계속 전쟁공포를 느끼면서 서로 미워하며 살아야 하나’ 싶어서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겠어요. 그게 얼마나 비극입니까? 그런데 앞으로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잘 오셨습니다’라고 하지 않겠어요? 문 대통령이 잘했든 트럼프가 잘했든 누가 잘했든 간에 ‘드디어 우리에게도 이런 세상이 오는구나’라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40년 동안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에 천착해 온 정세현(사진) 전 장관의 소회를 담은 책이다. 정 전 장관은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경력답게 이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풍부한 현장 경험과 균형 잡힌 시각으로 한반도 정세 변화를 짚어낸다. 정 전 장관에 따르면 최근 북한의 주요 문서에서 큰 변화가 감지된다. ‘경제건설을 위해 국제사회와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협력하겠다’고 대대적으로 명시해 놓은 것이다.
“트럼프 시대에 와서 모든 대외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김정은도 거기에 맞춰서 자기 당대에 이루고 싶은 게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때 못 이룬 경제발전을 이루고 싶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 기존 정책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고 본다. 그래서 트럼프와 문재인을 활용해 환골탈태할 결심을 한 것이다.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해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하겠다고 해놓고 핵은 그대로 끌고 가겠다? 그렇게 되면 유엔 대북제재는 그대로 계속되는데, 이게 앞뒤가 안 맞는다. 지금 김정은의 화두는 경제건설이고, 그러면 그전 정책은 전면 수정해야 한다.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6개월 만에 다시 열었는데, 과거를 답습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했겠는가. 정책전환 의지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정 전 장관은 향후 북한 미래와 관련해 “앞으로 경제에 힘쓰겠다, 핵에는 더 이상 돈 안 쓰겠다, 핵은 협상카드로만 쓰겠다, 다만 힘들게 만든 핵을 싸게는 안 팔겠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북한의 변화에 여전히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정 전 장관은 북한 체제는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지적한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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