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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105일만에 간판 내린 기무사…시작과 끝· 그리고 원죄인 특무(Specia)

입력 : 2018-09-01 07:31:00 수정 : 2018-08-31 20: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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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만 27년 7개월하고도 30일, 1만105일만에 문을 닫았다.

지난 1991년 1월 1일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에서 기무사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군기밀 유출 방지, 방첩 등의 고유임무보다는 사찰에 중점을 뒀다는 비판을 받아 온 끝에 2018년 8월 31일 해체됐다.

정부는 2018년 9월 1일부로 군사안보지원사령부(안보지원사·Military Security Support Command)를 출범시키면서 역대 군 정보 보안기관과 달리 보안·방첩에만 중점을 두도록 했다.

◇ 군 보안 방첩기관 변천사

▲ 특무대→방첩대→보안사→기무사, '특무'라는 원죄

군 보안 방첩기관의 원조는 한국전쟁 초기였던 1950년 10월 탄생한 특무부대. 이전까지 특별조사대, 육군본부 정보국 산하 방첩대로 일종의 조사부서에서 전쟁이라는 특수성에 따라 모든 것을 조사 수사할 권리를 지닌 특무(Special Investigation Service), 즉 특별조사기관이 탄생했다.


이후 육군 방첩부대(1060년 7월· Counter-Intelligence Corp), 육군 보안사령부(1968년 9월·Security Command), 국군보안사령부(1977년 9월), 국군기무사령부(1991년 1월·Defense Security Command)로 개명했다.


군 보안첩보기관이 계속해서 문제가 된 것은 특무, 즉 모든 것을 파헤칠 수 있다는 족보를 버리지 못한 탓이다.

특별하다는 우월의식을 갖고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특별하게 살펴야 한다'며 군내 보안이 아닌 군내 감시 사찰, 민간 사찰, 정치권 사찰까지 촉수를 뻗쳤다.

▲ 안보지원사, 사찰 아닌 보안 방첩 전문기관

안보지원사는 기무사(4200여명)보다 30% 축소(2900명)됐다.

그 결과 처가 3개에서 2개로, 장성과 대령 수도 절반 가량 줄었다. 여기에 기무사 상징인 호랑이 관련 상징물과 부대기, 부대 노래 등도 싹 바뀌었다. 


군은 안보지원사의 영문명인 Military Security Support Command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활동영역을 군(Military)으로 국한한 것, 안보활동을 지원(Support)하는 것이 명확히 했다는 밝혔다. 


보안사까지는 활동영역 표시가 없었다. 기무사도 국방, 방어(Defense)를 부대명으로 명기해 경우에 따라 활동영역이 군을 넘어설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 1만105일만에 폐업한 기무사

▲ 윤석양 이병 폭로로 출발

기무사는 1990년 10월 4일 정국을 강타한 윤석양 이병의 폭로가 계기가 돼 출범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 85학번인 윤석양은 학생운동으로 4학년 2학기에 제적돼 이른바 녹화사업(학생운동 전력자들을 징집, 운동권과 차단시킨 것)에 의해 징집됐다.

윤석양은 1990년 여름 보안사의 압력을 받고 학생운동조직을 파헤치는 사복요원으로 근무하게 됐다. 
1990년 10월 보안사 이병 신분으로 정치인, 민간인 무차별 사찰을 폭로했던 윤석양씨가 27년이 흐른 2017년 10월 방송 인터뷰 하는 모습. 사진=jtbc 캡처  

얼마 뒤 보안사 분석반으로 옮긴 윤석양은 보안사의 감시와 압박이 심해지고 자신의 일에 자괴감을 느끼자 그해 9월 23일 새벽 탈영했다.

이어 10월 4일 탈영 때 들고 나온 동향파악 대상자 색인표 1303장과 노무현, 문동환, 이강철, 박현채 개인신상카드, 개인별 동향파악 내용이 들어있는 컴퓨터 디스켓 30장(447명분)을 공개했다.

또  정계, 노동계, 종교계 등 사회 각계에 있는 40여명의 프락치가 있다고 폭로했다.

보안사 사찰대상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김수환 추기경, 윤공희 천주교 광주 대교구장, 김관석 목사, 박형규 목사 등 광범위했다. 보안사는 사찰대상자 자택의 담장 높이, 비상 탈출구, 예상도주로 및 은신처까지 작성해 놓았다.

윤석양 이병 폭로로 나라가 발칵 뒤집혀졌고 10월 8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이상훈 국방장관과 조남풍 보안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10월 13일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 조폭몰이에 나섰다 .

국민들의 비판과 불만이 이어지자 정권은 그해 12월 보안사의 과거와 완전히 단절한다며 새로운 조직 기무사 탄생을 예고했다.

▲ 역대 사령관 17명 중 대장진급은 2명


현 남영신 중장까지 기무사령관에 오른 인물은 모두 17명.

초대 기무사령관이자 28대 군보안·방첩사령관인 구창회 중장부터 44대 남영신 중장까지 17명 중 비육사 출신은 남영신(학군 23기) 중장과 30대 임재문 중장(학군 3기) 2명 뿐이다.

남영신 중장과 임재문 중장은 역대 44명의 방첩, 보안, 기무사령관 중 단 2명뿐인 비육사 출신이기도 하다.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기무사령관 직급을 소장으로 낮워 김도윤 소장을 임명했다. 이후 1년만에 다시 중장으로 환원했다.

기무사령관은 중장 중 해병대사령관에 이어 서열2위, 장군 중 서열 10위다.

17명의 역대 기무사령관 중 대장으로 진급한 이는 2면 뿐이다. 28대 구창회 대장(육군 3군사령관)과 32대 이남신 대장(3군사령관, 합참의장)이다.

41대 이재수 사령관은 이른바 박지만 동기(육사 37기)로 주목받았으나 1년밖에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최단명은 박근혜 정부 초대 기무사령관이었던 40대 장경욱 사령관으로 2013년 4월24일부터 2013년 10월25일까지 6개월 1일에 불과했다.

최장수는 김영삼 정부 두번째 기무사령관인 31대 임재문 중장으로 1993년 10월부터 1998년 3월까지 4년 5개월여, 김영삼 정권과 운명을 같이했다. 

▲ 기무사 대령이 국방부 장관 치받아, 군정보기관 위력의 끝판왕 

지난 7월24일 국회 국방위에서 당시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기무사 문건이 위중하다는 보고를 송영무 장관에게 분명히 했다"라는 말을 송 장관(왼쪽)이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다. 연합뉴스 

특무대, 보안사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군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벌벌 떨었다.
기무사는 그들만 못했지만 절대권력에 가까웠다. 그 단면이 지난 7월 24일 전국민앞에 여실히 드러났다.

7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선 기무사의 '계엄 문건' 보고와 관련된 의원들의 질의가 이어졌다.
이석구 기무사령관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께 위중한 사안으로 보고했다"고 말했다. 반면  송영무 장관은 "바쁘니까 놓고 가라고 했다"고 위중한 사안이라는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결정타는 국방부를 담당하는 100기무부대장 민병삼 대령. 

국방부를 담당하고 있는 100기무부대장 민병삼 대령이 "송영무 장관이 기무사 문건이 문제될 것 없다는 법조계 자문을 받았다라는 말을 참모회의 때 했다"고 국회 국방위에서 말하자 송 장관은 "그런 사실 없다, 대장을 지낸 장관이 내가 거짓말하겠는가"고 강력 부인했다. 진실여부를 떠나 계급과 군 경력에서 하늘과 땅차이인 장관앞에 대령이 대 놓고 말할 만큼 기무사의 위력과 기무사 요원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는 점을 입증했다. 사진-연합뉴스 TV캡처

민 대령은 "송 장관이 지난 7월 9일 오전 간담회에서 '위수령 문건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내가 법조계에 문의해보니 문제될 것이 없다라는 말씀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송 장관은 "완벽한 거짓말이다, 대장을 지낸 국방부 장관인 내가 거짓말하겠나"고 반박했다.   

이후 민 대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장이라고 거짓말 안 하고 대령이라고 거짓말하라는 법 없없지 않나, 일개 대령이 '장관님이 이런 말씀을 했다'고 꾸며내는 것은 목숨이 10개라도 모자란다"며 진실게임, 하극상 논란에 부채질했다. 

이 여파때문인지 송영무 장관은 자리를 정경두 합참의장에게 내주게 됐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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