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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방울뱀이 나타났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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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30 23:22:55 수정 : 2018-08-30 23: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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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 터지면 기구부터 설치 / 초록동색 모여 같은 주장 반복 / 집단사고 위험에 빠질 가능성 커 / 不通 면하려면 타자와 호환해야 “수풀에서 방울뱀이 나타나면 빨리 때려잡는 게 상책입니다. GM에서는 방울뱀대책위원회를 먼저 구성하지요. 그러고는 뱀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들을 초빙해 1년 내내 논쟁을 벌입니다. 결국 동물원을 세우자는 엉뚱한 결정을 하죠.” 세계적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 이사를 지낸 로스 페로의 진단이다. 외부 변화의 적응에 실패한 공룡 GM은 2009년 미국 정부에 파산보호 신청을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GM의 논의 행태는 문재인정부의 의사결정 방식과 흡사하다. 정부의 ‘기구 중독’은 심각한 상태다. 그간 개혁과 국민 참여의 기치를 내걸고 탄생한 위원회와 TF가 부지기수다. 대통령 업무지시 1호로 탄생한 것이 국가일자리위원회다. 고용이 악화되자 연초에 범부처 일자리TF를 또 만들더니 최근엔 청와대에 자영업비서관을 신설했다. 방울뱀을 잡을 생각은 않고 대책기구부터 만드는 식이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뱀에 물린 부상자가 속출하더니 급기야 맹독이 산업 전반으로 퍼지는 중이다. 공룡 GM의 전철을 밟는 꼴이다.
배연국 논설실장

다른 점은 있다. GM이 전문가를 초빙한 것처럼 정부 역시 대학교수나 시민단체 간부들을 영입하긴 했으나 대부분 친정부 인사들로 채웠다는 사실이다. 초록동색인 사람들이 모여 탁상공론을 일삼거나 정부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GM보다 더 악성인 의사결정 구조다.

동질성이 중시되면 집단사고(集團思考)의 함정에 빠질 개연성이 짙다. 조직 수장의 생각과 배치되는 의견은 무시되거나 왕따를 당하기 때문이다. 리더의 권위와 지지율이 높을수록 이런 경향은 심해진다. 토론의 결론은 대개 조직의 수장이 원하는 답으로 귀결된다. 권력자는 ‘나의 생각이 객관적인 검증을 통해 입증됐다’고 철석같이 믿게 된다. 권력이 독선으로 치닫는 수순이다.

작금의 일자리 정책이 딱 그런 경우다. 최악의 고용대란은 최저임금 파격 인상과 같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초래한 ‘정책 참사’다. 대다수 경제전문가의 판단이 그렇다. 이런 분명한 사실을 놓고도 문 대통령은 “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청와대 정책실장과 일자리위원회, 집권여당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페달을 힘차게 밟겠다고 화답한다. 고용 쇼크의 원인을 인구 탓, 전임 정부 탓으로 돌리는 소리도 들린다. 최악 경제 성적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걸 발표한 통계 책임자를 내치는 일까지 벌어진다. 마치 ‘누가 뱀이 나타났다고 소리쳤나?’, ‘방울뱀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냐?’는 식으로 논점이 변질되는 격이다.

유유상종의 집단은 아무리 논의를 거듭해도 합리적인 해법이 도출되기 어렵다. 청와대에서 여러 기관을 거쳐 여당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정책의 강도와 위력은 커진다. 똑같은 의견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내부 에너지가 축적되는 까닭이다. 여름철 한반도를 휩쓰는 태풍의 속성과 닮았다.

태풍은 처음 적도에서 태동할 때에는 허약한 열대성 저기압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내부에서 더운 공기를 주고받으면서 세력이 커져 강한 태풍으로 성장한다. 정부 정책 역시 반대 의견 없이 동질의 주장이 거듭될수록 한층 견고해진다. 여기에 높은 국민 지지율이 합세하면 ‘대통령의 말씀’은 요지부동이 된다. 정책의 과속과 일방통행이 빈발하는 이유다.

박근혜정부를 상징하는 특징은 불통이다. 한마디로 자기들끼리 소통도 되지 않았다. 같은 당 출신의 국회의장이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못하고, 청와대 비서실장이 독대조차 못할 지경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전임 정부의 과오를 뼈저리게 느낀 문재인정부는 국민과의 소통을 매우 중시한다. 하지만 같은 부류와만 소통하고 타자를 배척한다면 ‘반쪽 소통’에 불과하다. 집단사고의 폐해를 부를 위험이 있다. 정책의 속도와 강도가 큰 만큼 그 폐해는 불통 때보다 훨씬 클 것이다.

진정한 소통은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 생각을 호환하는 일이다. 동질의 소통만 반복하는 태풍은 세력을 키워 결국 엄청난 피해를 주고는 소멸한다. 국리민복을 외치는 정부라면 태풍의 운명과는 달라야 한다.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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