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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줘서 고맙다”… 눈물바다 된 상봉장

입력 : 2018-08-20 18:56:19 수정 : 2018-08-20 20: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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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 연회장 가족 입장에 곳곳 오열 / 이금섬 할머니, 아들 본다는 생각에 휠체어서 일어나 리본 구두 꽃단장 / 최고령인 101세 백성규 할아버지…며느리·손녀 다독이며 ‘행복 미소’ “11개월만 먼저 상봉했어도….”

60여년 만의 만남은 갖가지 안타까운 사연으로 눈물바다를 연출했다. 부녀, 모자, 형제, 자매 할 것 없이 노인이 된 이들은 서로의 눈물을 닦았다. 20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만난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한 이들의 애끓는 가족애는 긴 세월에도 조금도 무뎌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내 딸들아”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한신자(99) 할머니가 북에서 온 딸 김경실(72)씨의 손을 부여잡고 울먹이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이춘애(91) 할머니는 꿈에 그리던 남동생을 끝내 만나지 못했다. 상봉을 고대했던 남동생이 그만 지난해 9월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의 큰아들(65)은 “어머니가 동생이 하필 지난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속이 상해 회담장에 오기 전까지 며칠 동안 밥도 먹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할머니는 21세 때 결혼한 뒤 시댁 어른들을 따라 피난을 가면서 친정 가족들과 헤어지게 됐다. 친정 어머니에게 같이 가자며 졸랐지만 친정 어머니는 ‘나도 시댁 어르신들 모셔야 한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피난은 두 달이면 족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 할머니는 대신 조카딸과 조카며느리를 만났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 이금섬(92) 할머니가 북측 아들 리상철 씨와 만나 오열하고 있다.
아들을 만날 생각에 꽃단장을 했던 이금섬(92)할머니는 상봉장에서 아들을 보자마자 “상철아!”라고 이름을 외치고는 부여잡고 오열했다. 아들의 목이며, 온몸을 꼭 끌어안았다. 어머니를 만난 아들도 이 할머니를 끌어안고는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렸다. 이 할머니는 피난 중 남편을 비롯한 나머지 가족 모두와 생이별했다. 이 할머니는 아들과 며느리를 만난다는 생각에 전날 출발지인 강원도 속초 한화리조트에서 휠체어에서 일어나 리본이 달린 구두를 신고 자원봉사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로비로 들어서 눈길을 끌었다.

곽호완(85) 할아버지는 전시에 납북된 형님의 두 아들과 상봉했다. 그는 충북 제천시에 살던 여름, 인민군 관계자들이 회의를 한다며 동네 사람들을 소집시켰고, 형님이 그 회의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형님과 같이 사라진 사람은 10여명. 곽 할아버지의 형님은 21살이었다. 형님의 친구분이 십여년 전 이산가족 상봉 때 상봉을 하고 그 자녀들에게 형님의 소식을 얘기해 전해듣게 됐다. 형님은 사망했다고 들었다.

“며늘아기”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남측의 최고령 상봉자인 백성규(101) 할아버지가 북에서 온 며느리 김명순(71)씨와 손녀 백영옥(48)씨를 만나 기뻐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이영부(76) 할아버지도 전시 납북 가족이다. 조카들을 만난 이 할아버지는 당시 북에서 많은 사람들이 남으로 피난을 오는 상황이었고, 인력이 부족해진 북한 당국이 남한 사람들을 많이 납치해가던 중 아버지가 1950년 9월 27일 납북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당시는 8만명이 납북되던 시기로 남쪽사람 신상을 파악해서 쓸 만하면 데려가던 때였다고 술회했다. 아버지는 당시 서울 혜화동에서 통장으로 일하던 중이었다. 아버지가 납북될 때 이 할아버지는 10살이었다.

최고령 상봉자 백성규(101) 할아버지는 오히려 자신을 보고 오열하는 며느리와 손녀를 다독이며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백 할아버지의 며느리는 한복을, 손녀는 양장 차림으로 시아버지,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에 마련된 상봉장에는 북측 가족들이 먼저 들어와 각자 테이블에 앉아 남측 가족들이 입장하기를 기다렸다.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가 울려퍼지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끌어올렸지만 분위기는 이내 숙연해졌다. 남측 가족들이 입장하면서 서로를 알아본 가족들의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흥겹게 울려퍼지던 음악 소리도 잦아들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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