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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이야기가 많아야 훨씬 재미있는 세상이 되지 않겠어요?”

입력 : 2018-08-20 21:12:55 수정 : 2018-08-20 21:5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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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장편 ‘첫 문장’ 펴낸 소설가 윤성희 / 1996년 등단 이래 다양한 군상 사연 / 지치지 않고 세밀하게 풀어온 스타일 / 평론가 황현산 “천불도 보고 크게 감동 / 그녀의 소설 읽고 그때와 비슷한 느낌” /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과정보다 / 잃은 후 혼자 어떻게 견디느냐를 표현 / 세월호가 직접 영향 미친 건 아니지만 / 소설을 쓰는 태도는 바꾸었을 수 있어” “아파트단지 일천 세대에 불이 켜져 있으면 저 안에 적어도 이삼천 명은 있을 텐데 저들의 이야기는 무얼까 생각해봐요. 와글와글한 사연들을 하나의 주제나 문장으로 압축하지 않으려다 보니 이야기가 필요한 것 아닐까요. 어릴 때부터 쟤는 내성적이다,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하는 게 싫었어요. 인간을 이해하려면 이야기가 필요해요. 요약하지 않고 풀어놓는 이야기가 많아야 세상이 훨씬 유연하고 재미있고 좋아져요. 소설에만 국한된 말은 아닙니다. 이런 세계관을 가지면 정치고 뭐고 좀 더 재미있는 방식으로 풀려나가지 않을까요?”

소설가 윤성희(45)는 1999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20년 가까이 다양한 군상의 사연을 지치지 않고 세밀하게 풀어온 스타일이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의 이야기를 두고 이달 초 작고한 평론가 황현산은 “어린 시절 1000명의 부처를 묘사한 천불도를 보고 무한한 감동을 느꼈는데 훗날 윤성희의 소설을 보고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상찬했다. 그녀가 또 하나의 독특한 인물을 경장편 ‘첫 문장’(현대문학)에 빚어냈다. 

남자의 아버지는 그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밀린 월급을 받으러 갔다가 공장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그는 엄마를 따라 새아버지를 만났고 성장하면서 죽을 고비를 네 번이나 넘겼다. 아홉 살 때 신발 속에 양말을 벗어 옆에 두고 다리에 앉아 있다가 떨어져 피를 흘리며 기절한 그를 두고 사람들은 환경을 비관해 일부러 뛰어내렸다고 믿었다. 일층인 줄 알고 교실 창밖으로 뛰어내렸다가 삼층에서 떨어졌을 때도 왕따를 당했기 때문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그는 굳이 해명하지 않았는데, 딸이 죽었을 때 비로소 자신이 그 오해의 힘으로 사춘기를 버텼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작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자신은 살아있는데 딸은 한순간에 죽었다. 아내마저 곁을 떠났다. 이 남자는 우연히 고속버스를 탔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국 고속버스 터미널을 떠도는 것으로 죽고 싶은 마음을 견디면서 딸이 썼을 자서전의 ‘첫 문장’을 탐색한다. 마지막까지 입안에서 뱅뱅 도는 그 문장은 겨우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 윤성희가 캄보디아에서 귀국하던 날, 수원 그녀의 아파트 앞 카페에서 이야기를 청했다.

“세월호에 영향을 받아 쓴 건 아녜요. 고통을 겪고 죽는 주인공보다는 참혹을 견디고 그 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인 작품들이 전에도 많았어요. ‘그날 이후의 서사’라고 할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과정보다 잃은 후 혼자 어떻게 견디느냐를 쓴 거죠. 우리가 흔히 잘 견딘다는 건 삶의 원 궤도로 돌아온다는 걸 말하는 건데, 그게 과연 상처를 극복하고 잘 견디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남들이 보기에 저 정도면 잘 이겨냈어 하지만 그 사람 내부는 무너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럴 바에는 떠돌면서 무너지는 게 그 사람에게는 치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세월호가 직접 이 서사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소설을 쓰는 태도는 바꾸었을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문장이 비유를 많이 넣는다거나 힘을 주는 편은 아닌데도, 크게 상처를 받은 사람의 내면을 다 아는 듯이 과한 문장을 쓰는 건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추상의 문장이 아닌, 좀 더 삶에 가까운 언어를 많이 구사해야 되는 것 아닌지 소설 쓰는 내내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그녀는 이번 소설 작가의 말에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문장이 아니다. …어떤 문장도 주인공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고 썼거니와 “메모장에 평범하게 쌓인 낙서 같은 문장들만으로도 터미널을 떠도는 남자의 마음이 헤아려지기를 바란 것”이라고 말했다. 윤성희는 2016년 한국일보문학상을 받는 자리에서 ‘이야기들이 궁금해서 소설가가 됐지만 최근에는 인간이란 존재는 어느 정도의 슬픔을 감당할 수 있는지, 작가는 얼마만큼의 슬픔과 희망을 감당할 존재인지로 질문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피력했다.
딸을 잃고 고속버스 터미널을 떠도는 남자 이야기를 ‘첫 문장’에 그려낸 소설가 윤성희. 캄보디아 여행에서 막 돌아온 그녀는 “사람들을 한마디로 요약해버리면 이야기가 사라진다”면서 “이야기가 많아야 훨씬 유연하고 재미있는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주인공과 더 밀착해서 쓰면 감당하기 어려워지는데 사실 사람들 슬픔을 다 감당하지 않아도 소설을 쓸 수는 있거든요. 이제는 인물들 내면에 더 다가서서 감당할 수 있는 문장을 쓰고, 감당할 수 없는 문장은 세련된 방법으로 감추는 변화가 필요해요. 소설이 너무 구구절절해질 것 같은 걱정도 있지만, 저만의 감각과 스타일을 모색해야겠지요.”

윤성희는 어릴 때부터 마냥 이야기가 좋았다고 했다. 책 읽는 것도 물론 좋았지만 여성지 Q&A도 좋아하고, 터미널에서 남들 수다 떠는 이야기도 좋아하고, 저 할머니는 이십대에는 예뻤을 텐데 어쩌다 마귀할멈이 됐을까 궁금하기도 해서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았다. 매사 강한 호기심이 그녀를 소설가로 만들었지만, 정작 성장기에 문학에 뜻을 둔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문예반에도 끼지 못했다. 호기심을 해결하러 청주대 철학과에 들어갔지만 그녀의 호기심은 만물의 근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잡다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철학과 다니는 내내 문예지를 탐독했고 졸업한 후에는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다시 들어갔다. 문창과에 갔더니 주변에 다들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 천지여서 평범한 자신은 무얼 써야 되는지 기가 죽었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은 너무 큰 것이고 그냥 뭔가 글이라는 걸 배워보고 싶었고 쓰는 삶을 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내 안에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소설가는 오히려 천진난만한 백지여야 많은 주인공들을 내 안에 끌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학창생활을 즐겼다고 했다. 다분히 ‘명랑소녀’ 기질인 그녀의 소설들은 ‘딴청 부리기, 에둘러 가기, 조금씩 드러내기, 슬퍼도 슬퍼하지 않기, 그래도 희망은 조금 남겨두기’로 대부분 흐른다.

“저는 소설 쓰는 게 재미있어요. 작은 눈뭉치 하나를 굴리다 큰 동그라미를 만들 듯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나가는 게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라디오에서 새벽 고속도로를 달려 휴게소에서 어묵 하나 먹고 온다는 사연을 듣고, 이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 어땠을까 무엇을 좋아했을까 거꾸로 생각하게 돼요. 그렇게 노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이렇게 지지고 볶아도 어느 삶에는 이런 비밀이, 이런 아름다움이 있는 걸까 생각한다면 저는 좋아요.”

일정한 간격으로 여일하게 소설집을 펴내고 최근에는 올겨울이나 내년 초 다듬어 출간할 두 번째 장편 ‘상냥한 사람’도 창비 블로그에서 연재를 마쳤다. 뜨거운 주목 속에 데뷔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격하게 팔리지도 않은, 1만명 안팎의 꾸준한 독자와 더불어 달려왔다는 대목이 갈수록 황폐해지는 한국문학 독서 환경에서는 오히려 다행인 면도 있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너무 자신의 스타일만 고집하다 한국문학 독자들을 잃게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싶은 반성도 조금 한다고 했다. 오빠 하나 둔 막내로 큰 곡절 없이 성장한 윤성희는 지금도 태어난 수원에서 살고 있다. 9년 전 부모 집 인근 아파트로 독립해 여전히 홀로 사는 그녀는 “풍부한 경험을 위해 일부러 가족을 만드는 건 아닌 것 같다”면서 “이렇게 사는 게 좋은데 어떡하겠느냐”고 명랑한 듯 환하게 웃었다.

글·사진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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