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승현칼럼] 남북철도, 과속은 금물이다

관련이슈 이승현 칼럼

입력 : 2018-08-21 00:14:19 수정 : 2018-08-21 00:14:1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공동체’ 제안의 관건은 先비핵화 / 일방 추진은 허망하고 위태롭다 / 文정부는 긴밀히 국민과 소통하며 / 과유불급 자세로 속도 조절해야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인생 말년에 철도를 접했다. 탐탁잖게 봤던 것 같다. 세상을 떠난 1832년엔 “자두 향기는 사라졌다”고 썼다. 여기서 자두는 좁게는 전원 생활, 넓게는 자연이다. 괴테는 철도 때문에 잃어버린 것들을 아쉬워하면서 저 세상으로 간 것이다. 훨씬 공격적으로 나선 이들도 허다했다. 영국 하원의원 코핀 경이 대표적이다. 그는 1840년 의회 철도위원회에서 이렇게 잘라 말했다. “기차는 가장 큰 해악이 될 것이다.”

철도는 반대 물결이 무색하게도 19세기 유럽의 총아가 됐다. 압도적인 편의성 덕분이다. 산업혁명의 수확물을 사방팔방 운송했고 사람도 부지런히 날랐다. ‘세상을 바꾸는 헤라클레스’라고 칭한 백과사전도 있다. 근대 문명의 혜택을 나눠 주는 거인으로 비친 것이다.
이승현 논설고문

철도 문화가 활짝 꽃핀 곳은 영국 아닌 미국이다. 국토는 넓고 자원은 많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1850년대 미국 철도의 총연장은 1만4400㎞였다. 다른 서구 국가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길었다. 이것이 1870년엔 8만4800㎞, 1920년엔 40만㎞ 이상으로 확장됐다. ‘미국 기술의 사회사’를 쓴 과학사가 루스 슈워츠 코완은 “미국 본토는 철도를 통해 물리적으로 통합됐다”고 단언한다. 미국을 일체화한 것은 특유의 건국 이념만이 아닌 것이다.

19세기 문명의 산물인 철도가 21세기에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결정적으로 불을 지폈다.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구축을 제안했다.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철도는 유럽에 산업혁명 가속화를, 미국에 물리적 통합을 선물한 요술쟁이다. 지구촌 전체엔 ‘시간 통일’이란 선물을 줬다. 한반도에서도 그 비슷한 마법을 펼칠 수 있을까. 평화의 비둘기가 될 수 있을까. 적어도 문재인정부는 철석같이 그렇게 믿는 모양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직접 ‘철도 공동체’를 말하고 정부 실무진은 허리가 동강 난 경의선·동해선 철도를 다시 잇는 남북 협력사업에 속도를 내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남북철도의 꿈을 꾼 첫 정부인 것은 아니다. 전임 정부도 유라시아 철도를 주목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의 연장선상에서였다. 이번이 다른 점은 각별한 의욕이다. 문 대통령은 앞서 5월 일본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와 만나서도 서울∼신의주∼중국을 잇는 철도 사업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얼마 전 남북철도 구상과 관련해 미국의 대북제재를 탓해 한·미 양국 간 미묘한 파문이 번지기도 했다. 이번 ‘철도 공동체’는 귓등으로 흘려듣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운 발언이란 뜻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걱정도 생긴다. 단임 정부의 각별한 의욕은 과속으로, 과속은 탈선으로 이어지기 쉽다. 탈선이란 말은 어디서 왔을까. 바로 철도 문화에서 왔다. 기차가 탈선해도 문제지만, 국가의 안보정책이 탈선하면 국가적 재앙이 되게 마련이다. 다행히,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선을 그었다. “완전한 (북한)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야 본격적인 경제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합리적인 선이다. 그 선을 무심결에라도 넘지 않도록 거듭 조심할 일이다.

남북철도 구상의 성패를 가를 관건은 결국 북한의 선(先) 비핵화다. 그것 없는 일방적 추진은 허망하고 위태롭다. 과속은 절대 금물이다. 정부가 대북 사업 성과에 눈독을 들이다 혹여 과속을 하면 5000만 국민이 “자두 향기는 사라졌다”고 한탄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자두는 한·미 동맹과 같은 국가안보의 귀중한 자산들이다.

괴테는 “씨를 뿌리는 일은 거두는 일만큼 어렵지 않다”는 경구를 남겼다. 남북철도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초기 추진은 쉬울지 몰라도 뒷수습은 쉽지 않게 마련이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정부는 괴테의 경구를 음미하면서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남북철도는 곧 안보 문제다. 그것도 동북아 지정학의 위험성이 얽히고설킨…. 남북철도가 재앙의 비둘기로 둔갑하는 불상사는 결단코 없어야 한다. 길을 잘 찾을 일이다. 그 무엇보다, 국민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승현 논설고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
  • 이다희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