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 카드'로 美 압박 나서는 中… 비핵화·종전선언 변수로

北 9·9절 행사 참석 관측 / 시주석 2012년집권 이후 첫 北 방문설 / 싱가포르 매체 “김정은 초청에 응해” / 中 선발대, 평양서 회담 관련 협의 중 / 北·美·中 모두 셈법 복잡… 이목 집중 / 北, 뒷배 든든… 대미협상 큰소리 낼 듯 / 中, 美에 '中 역할론' 적극적 제기 전망 / 美에 반발 예상… 일각 "방북 가능성 낮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이 가시화하고 있다. 그의 방북이 이뤄지면 북·미 비핵화 협상과 종전선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18일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는 시 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에 따라 오는 9월9일 북한 정권수립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북·중 정상회담 준비 및 세부 일정 확정을 위해 약 30명 규모의 중국 정부 선발대가 먼저 평양에 입성해 북한과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북한 여행사들은 북한 국내 상황 때문에 이달 11일부터 내달 5일까지 어떠한 단체여행도 중단하겠다고 중국여행사들에 통지해 북한이 시 주석의 방북을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을 낳게 했다.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찾는 것은 시 주석의 전임자이던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2005년 방북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시 주석은 2012년 집권한 이후 한 차례도 북한을 방문한 적이 없다.

시 주석의 방북설은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싸고 한국과 북한, 미국, 중국 등 네 나라가 복잡한 셈법을 거듭하는 가운데 나와 관심을 집중시킨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이, 6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졌지만, 이후 비핵화 협상은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우선하여 요구하는 미국과 종전선언에 먼저 응하라는 북한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리면서 비핵화 협상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 주석의 방북이 전격적으로 이뤄질 경우 비핵화 협상에는 어떤 형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시 주석의 방북은 북한에 비핵화 협상에서의 최대 우군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에 이어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에 연달아 나서며 비핵화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북한이 막상 협상이 시작된 후 강경한 태도로 미국에 맞설 수 있던 가장 큰 배경은 바로 중국이었다. 시 주석이 직접 북한을 방문할 경우 북한의 ‘뒷배’는 더욱 든든해지게 되고 종전선언 등을 강력하게 제기하며 향후 협상에서 미국에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중국으로서는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에 맞서 ‘중국 역할론’을 강력하게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지난 4월 판문점 선언 당시 종전선언의 당사자로 남북한과 미국만 언급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중국은 최근 들어 중국을 포함시킨 ‘4자 종전선언’을 먼저 제안하고 있다. 올해 들어 김 위원장을 중국으로 수차례 불러들여 북한의 ‘후원자’임을 과시했고, 이번 방북으로 북한과의 ‘혈맹관계’를 강조하며 비핵화 협상에 적극 참여하려는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미국은 시 주석의 방북을 떨떠름하게 여길 수 있다. 북한은 중국을 믿고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는 미국에 더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시 주석이 방북하면 북한의 ‘배짱’만 키워 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도 중국이 북한 비핵화 대화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중국 배후론’을 수차례 거론하기도 했다. 따라서 미국이 시 주석 방북에 반발하면 향후 협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각에선 시 주석의 9월 방북 가능성을 낮게 보는 관측도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고, 미국이 북·중 밀착 행보를 경계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의미가 큰 9·9절 행사에 시 주석이 굳이 참석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미국 심기를 건드려 전체적인 미·중 구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중국도 바라지 않는다는 논리다.

한 외교 소식통은 “시 주석의 방북을 놓고 여러 가지 설들이 많지만, 방북 준비 사실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며 “9·9절 행사에 중국 고위 인사가 누구든 참석을 할 것으로 보이지만 시 주석 본인이 갈지는 알 수가 없다”고 전했다. 이어 “9·9절 행사 참석 카드는 중국이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