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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다 [TV에 밑줄 긋는 여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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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18 13:39:37 수정 : 2023-12-10 23: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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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작한 tvN 드라마 ‘아는 와이프’.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에서 착안한 듯한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대사와 상황에 보는 내내 눈물과 콧물이 쏟아냈다. 타임슬립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들게 된 남편이 아내의 예전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읊조리는 대사에 밑줄을 그어본다. 

 

핑곗거리 없을 때

그때 멜로 봐요

눈물 줄줄 흘리면서

 

그때 너는 울고 싶었구나

그때 너는 위로받고 싶었구나

그때 너는 사무치게 외로웠구나

 

일에 쫓기며 부대끼며

나는 ‘내가 제일 힘들다’ 생각했다.

내 코가 석자라고

그러니 니 몫은 니가 감당하라고

알아도 모르는 척

너를 외면했다.

 

네가 괴물이 된 게 아니라

내가 널 괴물로 만들었어

 

#드라마 ‘아는 와이프’ 중에서

 

 

극중 청순하고 예쁘고 순진하기만 했던 아내(한지민·바로 아래 사진)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자 ‘괴물’로 변한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그녀에게 하루하루는 전쟁터다. 날마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줘야 하고, 집안일도 도맡아야 하며, 회사에도 다녀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케줄이 하나라도 삐걱대면 그녀는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화를 내는 ‘괴물’로 변신한다.

 

남편(지성)은 자꾸 변해가는 아내가 싫고, 적응이 안 된다. 그 옛날 자신 앞에서 수줍기만 했던 그녀는 어디에 갔는지 문득문득 그리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타임슬립으로 과거 아내의 모습을 만나게 되고, ‘핑곗거리 없이 울고 싶을 때 멜로 영화를 본다‘는 과거 아내의 말을 듣고, 늦은 밤 멜로 영화를 보며 펑펑 우는 현재의 아내 모습이 떠오른다. 아내가 변한 이유는  ‘아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아이를 키우는 부부라면 누구나 공감했을 장면이다. 사회적인 인식이 바뀌어 남편이 육아에 많이 참여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여자들, 엄마의 몫이다.

 

사실 ‘육아’만 하기에도 벅찬 세상이다. 더불어 일과 병행해야만 하는 워킹맘들의 하루하루는 해보지 않은 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드라마 속 남편처럼 승진과 각종 인사제도, 여전히 판치는 학연과 지연, 과중한 업무에 치여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요구받는 시기에 놓여 있다.

남편은 남편대로 힘들고, 아내는 아내대로 더욱 힘들다. 서로 힘드니 상대방의 힘듦이 눈앞에서 보이지만 외면하고 싶다. 남편의 대사처럼 ‘내 코가 석자니’ 힘든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너의 몫’이라고 치부해버린다.

늦은 밤 아무도 없는 캄캄한 거실에서 멜로 영화를 보는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조용히 방문을 닫는 남편이 아니다. 그녀는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고생했다’고 한마디 위로와 응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로와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남편’이었으면 했을 것이다.

아내가 ‘괴물’로 변한 이유는 육아를 도와주지 않고, 아이의 픽업을 잊어버린 남편의 무심한 행동보다 어쩌면 나의 힘듦을 알고도 외면하는 무정한 ‘모르는 척’이 아닐까.

이윤영 방송작가 blog.naver.com/rosa0509, bruch.co.kr/@rosa0509

사진=tvN ‘아는 와이프’ 캡처

*타임슬립(time slip)은 판타지 및 SF(공상과학소설)의 클리셰로, 어떤 사람 또는 집단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을 거스르거나 앞질러 과거 또는 미래에 떨어지는, 사고에 가까운 초상현상(초자연현상). 타임머신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시간을 거스르는 시간여행과는 구분된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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