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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태평양을 두 번이나 건넌 ‘귀하신’ 돌이 화제가 됐습니다. 경남 거제도 몽돌해변의 명물 ‘몽돌’이 주인공이죠. 흔히 해변 하면 백사장부터 떠올리는데 이곳은 모래 대신 검고 동그란 자갈, 즉 몽돌이 깔려 있습니다. 해안으로 밀려드는 파도가 몽돌과 부딪힐 때 나는 소리는 2000년 환경부가 뽑은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 들었을 만큼 일품이죠.

올여름 ‘아이린’이란 이름의 13살 미국 소녀가 거제도에서 가족과 휴가를 보낸 것이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몽돌해변에 흠뻑 반한 아이린은 추억으로 간직하려고 몽돌 두 개를 주워 집에 가져갔죠. 아무도 몰랐던 이 일은 얼마 전 아이린이 몽돌을 우리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반환하며 비로소 알려졌습니다. 돌과 동봉한 편지에서 아이린은 “몽돌을 가져온 것을 안 엄마가 이 아름다운 돌이 만들어지는 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는지 가르쳐줬어요. 그래서 돌을 제자리로 돌려보냅니다”라고 말했죠.
김태훈 사회부 차장

몽돌해변은 관광객이 너도나도 기념으로 돌을 챙겨 가는 바람에 관리 주체인 거제시와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의 고심이 깊다고 합니다. 아이린의 선행에 감동한 거제시는 답장을 써 보냈죠. “어른들도 실천하지 못한 용기를 보여준 아이린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파도와 함께 부서지며 구르는 몽돌 소리는 스트레스마저 씻겨주죠. 앞으로도 거제도를 꼭 기억해주시고,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오세요.”

이 흐뭇한 사연을 접한 순간 2013년 6월 취재 때문에 간 인천 백령도가 떠올랐습니다. 백령도는 몽돌해변 못지않게 유명한 콩돌해변이 있죠. 콩과 닮은 동글동글한 작은 돌로 이뤄진 호젓한 바닷가입니다. 몽돌해변처럼 콩돌해변도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죠. 파도와 부딪힌 자갈이 떠밀리며 내는 사그락사그락 하는 소리에 바다의 낭만은 두 배가 됩니다.

콩돌해변은 전체가 국가 보호를 받는 천연기념물이죠. 그래서 콩돌을 몰래 들고 가면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변 방문객이 어디 하루 한두 명뿐인 것도 아니고 감시원을 24시간 세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죠. 외지인이 콩돌 몇 개 슬쩍 집어 주머니에 넣은들 일일이 단속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자연히 콩돌해변도 돌 유실 문제로 오래전에 비상이 걸렸죠.

우리 일행을 안내한 섬 주민한테 뭐 뾰족한 대책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오더군요. “작정하고 갖고 가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콩돌을 들고 무사히 섬을 빠져나가도 그 돌을 몸에 지닌 사람은 평생토록 재수가 없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콩돌 보존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콩돌이 불운을 부른다’는 으스스한 전설까지 고안해냈을까요.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유난히 더웠던 8월도 어느덧 끝자락이네요. 혹시 가을이 오기 전 느지막한 휴가를 다녀올 생각인 분이 있다면 몽돌해변이나 콩돌해변 방문을 그야말로 ‘강추’합니다. 물론 돌이 귀엽다고 몰래 챙기거나 하진 마시고요. 대신 바닷물에 휩쓸린 돌들이 중심을 잃고 데굴데굴 구르는 지점 쪽으로 조용히 귀를 갖다 대보세요. 들리나요, 여름이 가는 소리가?

김태훈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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