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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영혼 없는 '수능 30%'…이도 저도 아닌 어쩡쩡한 개편

입력 : 2018-08-17 18:58:58 수정 : 2018-08-17 21: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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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안정 택한 어정쩡한 개편…멀어진 고교혁신 / 주요내용·문제점 뭔가 / 수능 위주의 전형 30% 이상 확대키로 / ‘과정중심의 평가’라는 개혁 취지 무색 /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공약 없던 일로 / 기존 2과목외 제2외국어·한문만 추가 / EBS 연계율도 70%→50%로 축소돼 / 고교학점·성취평가제는 다음 정부로 / 교육·학부모단체들"공약포기…퇴행적 / 文정부 교육철학 뭔지 모르겠다" 반발
‘대입개편은 길을 잃었고, 고교혁신은 멀어졌다.’

교육부가 1년이란 긴 시간에 걸쳐 내놓은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안’에 대한 교육계 안팎의 대체적인 기류다. 대입제도 개편은 지난 3일과 7일 시민참여단의 공론화 조사 결과와 국가교육회의 권고안을 통해 예상됐듯 이도 저도 아닌 모양새가 돼버렸다. 고교혁신 방안은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 임기 후로 이행시점이 미뤄져 제대로 실현될지조차 미지수다.

문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진보성향의 교사·교육단체와 학부모들마저 “문재인정부의 교육철학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최종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영혼 없는 ‘수능 위주의 전형 30%’

17일 교육부는 각 대학에 2022학년도 대입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 전형 비율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왜 하필 30%인지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가교육회의) 공론화 조사에서 1순위 안건이 2순위 안건과 오차범위였고, 응답자 통계의 중간값인 39.6%를 국민의 뜻으로 보기도 힘들었다”며 “그런데 누적통계를 보면 68.5%가 수능전형 비중 30% 이상을 지지해 이렇게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대학들이 수용할 만한 비율도 감안했다고 한다.

1순위 안건은 ‘수능전형 비중 45% 이상 및 수능 상대평가 유지’이고, 2순위 안건은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 및 정시·수시비율 대학 자율’로 성격이 상반된다. 결국 교육부 설명대로라면 오차범위와 누적확률, 중간값 같은 기계적인 판단기준과 대학 눈치를 감안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대입개편을 통해 구현하려 한 문재인정부의 철학은 무엇인지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한 뒤 질문받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대표적인 교육 공약이었던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은 이날 대입개편안에 아예 포함되지도 않았다. 이미 절대평가가 적용된 영어, 한국사 외에 제2외국어와 한문만 추가됐다.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폐지하겠다는 약속도 국가교육회의 권고에 따라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정리됐다.

EBS 연계율을 70%에서 50%로 내린 것도 비판받는 대목이다. 50%라는 비율은 EBS 연계의 문제점(학교수업 파행)을 해결하기도 어렵고, EBS 연계의 장점(취약계층 학생의 수험준비 완화)을 살리지도 못하는 애매한 수치라는 것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EBS 반영비율이 줄면 교재 바깥 부분에 치중할 수밖에 없어 또 다른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연계율이 50%로 내려간다 해도 여전히 문제집은 봐야 하는 만큼 공부 부담이 완화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의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최종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파기했다”며 책임자 징계를 촉구하는 서한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는 것과 입시는 별개?

고교교육 혁신계획은 줄줄이 연기됐다.

정부는 당초 고교학점제와 고교 성취평가제(절대평가)를 2022학년도에 전면 도입하기로 해놓고 이날 3년 유예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후 2년도 훨씬 지난 2025학년도에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고교생이 원하는 강의를 골라 듣도록 하는 제도다. 획일적인 교육시스템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의 흥미와 적성을 고려한다는 취지로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교육 공약 1호로 내걸었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해 11월 고교학점제를 2022년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아홉 달 만에 다시 말을 바꿨다.

고교 성취평가제는 입시 경쟁 완화를 위해 교과목별 성취수준에 따라 A∼E등급으로 내신 성적을 부여하는 것으로 고교학점제 도입에 필수적이다. 교육부는 내년 고1부터 제한적으로 고전읽기, 경제수학, 여행지리 등 ‘진로선택과목’에 한해 성취평가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구상한 고교교육 혁신방향의 핵심인 고교학점제와 성취평가제의 이행 시기가 다음 정부로 넘어가게 되는 셈이다. 차기 정부가 이를 계승한다는 보장도 없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대통령 공약이고 국정과제에 들어있는 사항인데 (2025년도에 하겠다는 것은) 공약 포기”라며 “퇴행적 개편”이라고 지적했다.

제도가 예정대로 실시된다 하더라도 대입제도와의 엇박자가 날 공산이 크다.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가 사실상 물 건너가고, 수능전형은 확대되면서 ‘융합·선택 교육 및 과정 중심의 평가’라는 2015교육과정의 취지도 무색해졌다. 상대평가 위주의 수능전형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성적에 따라 학생을 줄 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과와 이과 통합도 의미를 살릴지 의문이다.

수능 과목에서 통합사회·과학을 제외하고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중 계열별로 1과목씩 택하게 한 기존 방안 대신 계열 구분 없이 2과목을 고를 수 있게 해서다. 이는 인문사회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과학도, 이공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사회도 각각 공부해야 하는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할 가능성이 높다. 기하와 과학II가 수능출제범위로 들어온 것도 논란거리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평가팀장은 “기하와 과학II의 경우 당초 수능출제범위에서 빠졌다가 다시 출제범위에 포함돼 혼란을 가중시켰다”며 “(교육부는) 학생의 선택권 확대를 이유로 댔으나 준비 없이 (정책을) 발표했다가 (수학·과학계의 반발 등) 외부 의견을 수용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서울 소재 대학들, 수능위주 전형 늘릴 듯”

17일 발표된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에 대해 입시전문가들은 대체로 현행 입시제도와 비교해 큰 틀의 변화는 없다고 평가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사실상 모든 것이 이제 대학의 결정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며 “(대학들이 수능 위주) 정시를 30% 이상 늘릴 수도 있고 반대로 수시 학교생활기록부 교과전형을 30% 이상 늘려 정시를 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교적 수시모집 비중이 높은 서울 소재 대학들이 수시에서 학생부 교과전형 선발 비중을 늘리고 학생부 종합전형은 줄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임 대표는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들은 학종과 논술 전형을 줄이면서 수능 위주 전형을 확대할 수 있다”며 “내년 4월 말 발표되는 2021학년도 대학별 입시전형계획안 발표가 정시 확대 정도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도 비슷한 진단을 내놨다. 그는 “수시에서 학생부 교과전형이 없는 서울대·연세대·서강대·성균관대 등은 교과전형을 신설할 가능성이 크고, 교과전형이 있는 대학들은 선발 인원을 다소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논술전형의 단계적 축소와 적성고사 폐지도 교과전형과 수능전형 위주에 힘을 실어주는 재료다.

이처럼 소폭이나마 수능 영향력 확대로 성적 상위권 학생들의 정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외국어고 등 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 강남 학군 등 상위권 일반고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우연철 평가팀장은 “대입제도 개편안이 전체적으론 현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현재 중3 학생들의 경우 선배들처럼 준비한다면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윤지로·이강은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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