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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만행 전혀 몰랐다 단지 역할 충실했을 뿐” 괴벨스 여비서의 변명

입력 : 2018-08-18 03:00:00 수정 : 2018-08-17 20: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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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 D 한젠 지음/박종대 옮김/열린책들/1만5000원
어느 독일인의 삶/토레 D 한젠 지음/박종대 옮김/열린책들/1만5000원


"특히 제1차 세계대전에 패배한 뒤가 그랬어요. 베를린의 거리 곳곳에 실업자와 거지, 가난한 사람들이 넘쳐 났어요. 하지만 나처럼 베를린 근교 좋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 궁핍과 가난이 판치던 시절에도 그런 특별한 지역이 있었던 거죠. 우린 그런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았고 보지도 않았어요. 그냥 외면해 버렸죠. 한마디로 히틀러는 새로운 사람이었으니까.”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선전 책임자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로 일한 여성 브룬힐데 폼젤의 증언을 정치학자 토레 D 한젠이 정리한 책이다. 이제 106세가 된 노인 폼젤은 여전히 잘못한 게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자신은 당시 나치 만행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 1911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는 엄격한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순종적인 태도를 가지게 됐다고 회상한다.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고 개인의 성공에 대한 욕망이 우선이었으며,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 평범한 인간이었다고 묘사한다.

“물론 어리석었다는 면에서는 책임이 있다. 하지만 원래 어리석게 행동하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저들은 1차 대전 패전 후에 우리에게 새로운 도약을 약속했고, 처음 몇 년 동안은 실제로 그리될 것도 같았다. 도저히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패전 배상 협정에 묶여 있던 낙담한 국민들에게 민족의 부흥을 약속하는데 누가 마음이 동하지 않겠는가?”

전쟁 막바지 그는 러시아군에 체포돼 5년간 특별 수용소에 수감됐다가 풀려났다. 폼젤의 증언을 정리해 책을 쓴 저자 한젠은 폼젤은 나치의 만행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나치 부역자의 변명을 전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해 펴낸 책으로 풀이된다.

옮긴이는 이렇게 평한다. “다행인 점은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유럽이나 미국과는 사뭇 다르다는 데 있다. 각성한 촛불의 힘으로 우리는 그간 잘못된 정치 풍토와 사회 관행을 바로잡아 가고 있고, 패배주의와 비관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개인의 이익에 매몰되어 이성의 눈을 닫는 순간 언제 다시 야만이 우리를 집어삼킬지 모를 일이다. 그런 면에서 브룬힐데 폼젤의 삶은 깨어 있는 시민 의식이 부족할 때 이기주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 주는 역사적 경고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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