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몽룡 만난 춘향… 발꿈치뼈 잘 아물었을까

입력 : 2018-08-18 03:00:00 수정 : 2018-08-17 20:56:3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폴란드 출신 ‘노벨상’ 심보르스카 / 35년간 신문 연재한 서평 모아 / 우리 문학 춘향전 찬사 열거하며 / ‘고문에 으깨어진 발’ 걱정 드러내 / “삼국지, 완독 불가능한 책” 혹평 / 이야기 너머 이야기 보는 눈 유쾌

바 심보르스카 지음/최성은 옮김/봄날의책/2만원
 읽거나 말거나- 심보르스카 서평집/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지음/최성은 옮김/봄날의책/2만원

좋은 책을 알려주는 독서칼럼은 많다. 하지만 어떤 책이 단점 있는 책인지 알려주는 독서칼럼은 드물다. 단점을 알아보는 안목도 소중하다. 이 서평집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

노벨문학상(1996년)을 받은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1923∼2012)의 서평집이 나왔다. 1967년부터 무려 35년간 폴란드 신문에 연재한 서평을 모은 책이다. 독서광으로서 그의 독서 편력은 전방위적이다. 춘향전을 폴란드어로 번역한 ‘열녀 중의 열녀 춘향 이야기’에 관한 서평이 먼저 눈길을 끈다. 한국 고전문학의 하나로 꼽히는 춘향전이 찬사를 받는 여러  이유를 열거하며, 이야기의 단점도 빼놓지 않는다.

“틀림없이 춘향은 잘생긴 배우자 옆에서 절뚝거리며 걷지도 않았을 테고, 첫날밤에 원앙이 수놓인 이불을 덮어 자신의 뒤틀린 두 발을 애써 가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매우 강렬한 해피엔딩을 맞고 있지만, 사실 거기에 춘향의 으깨어진 두 발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다. 변사또의 첩이 되는 걸 거부하다 쇠가 박힌 대나무 몽둥이에 맞아 부서진 작고 여린 그 발, 과연 춘향의 발꿈치뼈는 아무런 흉터도 남기지 않고 잘 붙었을까. 안심해도 좋다. 완벽하게 잘 아물었을 것이다. 동화는 결코 현실의 삶에 완전히 항복하는 법이 없으니까.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이다. 틈만 나면 훨씬 나은 동화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현실을 난처하게 만든다.”

춘향전은 폴란드 1세대 한국학 학자 할리나 오가렉 최가 1970년 폴란드어로 번역했다. 김일성대학에 유학하고 바르샤바대학에 처음 한국학과를 만든 사람이다. 최씨 성은 북한 사람인 남편 성을 따른 것이다. 당시 폴란드에서 한국은 미지의 나라였다. 남한과는 수교 전이었다. 심보르스카가 춘향전을 집어든 건 왜일까. 이 책을 번역한 최성은 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학과 교수의 말이다.
199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춘향의 으깨진 발을 걱정하는 이색적인 서평을 낸 첫 독자이자 마지막 독자일 것이다.

“심보르스카는 여행을 즐기지 않았다. 유럽 몇 나라를 다닌 정도고, 아시아는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대신 책으로 세상을 보고 들었다. 노장 사상 같은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시에 자연 친화, 생명 존중 같은 아시아 정서가 녹아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춘향전도 그런 호기심에서 읽었을 거다.”

심보르스카가 읽은 건 이야기 너머의 이야기다. 그는 춘향의 발을 걱정한 최초이자 마지막 독자가 아닐까.

심보르스카는 1972년 출간된 영문 번역본 ‘삼국지’ 읽기를 포기했다. 300여명의 등장인물 이름과 지명, 전투 장면 묘사의 난해함을 지적하면서 ‘완독이 불가능한 책’이라고 불평한다. “이 책을 끝까지 꼼꼼하게 읽은 사람은 두세 명의 편집자들밖에 없을 듯하다. 1만부나 되는 초판을 찍어 놓고 고작 두세 명이라니….”

찰스 디킨스 전기에 대해선 이렇게 썼다. “내가 그를 행운아라고 이야기하는 건, 인생의 전반기에 겪은 수모와 고통도, 그리고 후반기에 획득한 눈부신 성공도 결코 그를 타락시키거나 망가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편에 서 있었다. 그의 언어는 바로 이런 불행한 사람들을 옹호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양심의 가책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었다.”

그의 서평은 독특하다. 당대 유명한 문학작품, 평전 등에 대한 박식한 해석이 망라되어 있다. 문학, 출판 주류들이 입 모아 추천할 만한 책은 일부러 피했다. 수필에 가깝다. 소박하고 유쾌하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