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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례 총리·경제성장 이끈 바지파이 전 인도 총리 별세

입력 : 2018-08-16 23:48:56 수정 : 2018-08-16 23: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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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 경제대국 성장 초석 다져…핵실험 강행 후 파키스탄과 화해 이끌기도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전 인도 총리가 16일 오후(현지시간)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dpa통신과 현지 언론이 전했다. 향년 93세.

전인도의학연구소(AIIMS)는 이날 바지파이 전 총리가 별세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바지파이 전 총리는 지난 두 달간 이 연구소에서 신장 감염 등의 치료를 받아왔다.

3차례에 걸쳐 총리를 지낸 바지파이는 인도 정치계에서 사랑과 존경을 받는 몇 안 되는 인물로 꼽힌다. 부정부패를 멀리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해 정적으로부터 "나쁜 당에 들어 있는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을 정도였다.

언론인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힌두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인도국민당(BJP)을 이끌고 1996년 처음 총리가 됐다. 하지만 내부 불화로 연립정권이 붕괴되는 바람에 13일밖에 총리직에 머물지 못했다.

그러나 1998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다시 총리에 올랐다. 이듬해 1999년 4월 신임투표에서 패배해 정치위기를 맞았으나 9월 총선 압승으로 세 번째로 총리직을 맡아 6년간 인도를 통치했다.

그는 총리 재직 기간에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어냈다. 시장개방, 경제구조 개혁 등을 추진해 오늘날 인도가 신흥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도 받는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바지파이 전 총리 별세 직후 트위터에 "바지파이의 모범적인 리더십이 인도가 21세기에 강하고, 번영하면서 폭넓은 나라가 되는 데에 토대가 됐다"고 썼다.

하지만 그는 1998년 2차 핵실험을 강행, 파키스탄이 핵실험으로 응수하면서 미국 등 서방국가의 경제제재 조치를 자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2004년 1월부터 파키스탄과 평화회복을 위한 다방면 대화에 나섰다. 이로 인해 그는 양국 간 화해의 물꼬를 튼 장본인으로도 인정받는다.

그는 유머가 넘치며 복잡한 문제를 간단하게 표현하는 연설로 청중을 사로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BJP의 우파성향에도 불구하고 항상 개방적인 이미지를 견지했으며 상호비방이 넘치는 인도 정치계에서 수준 높은 정치토론을 이끌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카스트 최상위 계급인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1942년 정계에 입문했다. 1951년 BJP의 전신으로 알려진 BJS를 공동 창당했고 1957년부터 40년 동안 의원을 지냈다.

1975년 인디라 간디 총리가 비상사태를 선포했을 때 투옥된 경력도 있다. 1977∼1979년 외무장관 시절엔 파키스탄인에 대한 비자발급을 완화하고 인도 무슬림의 성지순례를 배려하는 정책을 펴는 등 진보적인 인물로도 알려졌다.

1992년에는 BJP의 지지 속에 자행된 힌두교도들의 이슬람 사원 파괴를 비난하는 등 BJP 내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아 여러 종교인으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다.

다만, 총리 시절인 2002년 구자라트 주(州)에서 반이슬람 폭동이 일어났을 때 무슬림 1천100여명이 학살당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점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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