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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갇힌 삶’ 아들아, 너는 내 운명… 사회와 ‘같이 있는 삶’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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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18 17:30:00 수정 : 2018-08-18 17: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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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머나먼 길’ 걷는 사람들
“힘내자” 이진섭씨 부자가 이마를 맞대고 있다.
“발달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습니다. 함께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십시오.” 엄마들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외쳤다. 아지랑이 이는 거리엔 뜨거운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곧 절박한 목소리와 어색한 팔뚝질이 엉켰다. 집회를 기록하는 취재진 하나 없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나둘 앞으로 나와 고통을 증언하고 희망을 말했다.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 청와대 앞.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절규를 반복한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찾아 다시 거리로 나온 것이다. 이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가 그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약속했지만, 희망고문에 지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진섭씨 부자가 잠자리에 누웠다. 두 사람은 종일 함께 있었다.
“내 생애 봄날은 단 하루였다. 1992년 6월 6일, 아들 균도가 태어나던 그날. 나는 만세를 외쳤다. 의사는 균도가 위험하다며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무호흡증의 영향으로 아이에게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 봄날은 끝났다. 그때 내 나이 스물일곱. 지금 딱 균도 나이다.” 이균도(27)씨는 발달장애(자폐증)를 안고 세상에 나왔다. 자연스레 아버지 이진섭(55)씨의 삶은 아들에게 맞춰졌다. “하루는 너무 힘들어 아들 손을 잡고 바다로 갔다. 함께 하늘로 간다면 다른 가족들은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균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아빠 살려주세요.” 그때부터 평범한 아버지의 인생은 달라졌다. 마흔여섯 나이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늦깎이 대학생이 됐고, 발달장애인 인권을 외치는 활동가로 길 위에 섰다. 이씨는 자식보다 단 하루라도 더 살기를 바라는 여느 부모들과 달랐다. 그는 부모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부딪힐 벽을 걱정했고 그 벽이 조금이라도 낮춰지길 바랐다.


해변의 부자 기장군 대변리 해변을 찾은 이진섭씨 부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균도는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었다. 우리는 마냥 걸었다.” 두 사람은 2011년 3월 12일부터 40일 동안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외치며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현실을 알리는 도보 시위를 했다. ‘균도와 세상걷기’라는 이름의 여정은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600㎞로 시작했다. 같은 해 9~11월(부산-광주), 2012년 4~6월(광주-서울), 2012년 10~11월(부산-강원도-서울), 2013년 5~7월(제주)까지 총 다섯 차례, 3000㎞에 걸쳐 이어졌다. 2014년 4월, 마침내 발달장애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긴 투쟁 끝에 봄날이 찾아온 듯했다. 


열창 균도씨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 매주 금요일은 노래방에 가는 날이다.
“균도야 미안하다. 갈 곳이 없다.” 2015년 6월 균도씨는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과잉행동을 이유로 쫓겨났다. 그 사이 직장암 수술을 받은 아버지 이진섭씨에게는 두 차례 급성심근경색이 찾아왔다. 두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가 아침, 저녁으로 복용하는 약은 스무 종이 넘는다. “건강이 나빠져서 자꾸만 조급함이 생긴다.” 이씨는 아들이 ‘아빠, 오늘은 어디에 갑니까’라고 물을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는 이달부터 지역 발달장애인들이 낮에 이용할 수 있는 쉼터를 직접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아직 이용자는 균도씨 한 명뿐이다. 이씨는 “국가가 하지 않으니, 거꾸로 시민이 나서서 모델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중증 발달장애인이 사회 일원으로 참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늘 집에만 있게 된다. 그 사이 가족들의 삶은 질식한다.” 균도씨를 지도했던 한 특수교사의 고백이다. 그가 목격한 학교 밖 사회는 제자들에게 눈높이를 맞춰주지도, 느린 걸음을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그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안함에 귀 막고… 발달장애(자폐성)를 갖고 있는 균도씨는 불안함을 느끼면 귀를 막곤 한다.
발달장애인법은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현재 정부의 재정 지원이 없어 유명무실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하 부모연대)와 매니페스토 협약을 맺어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에 대한 지원확대를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대선공약집에서는 ‘발달장애인’이란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부모연대에 따르면 문재인정부는 2018년 복지부 예산안에 85억원의 성인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을 반영했는데, 이는 전 정권 때 수립했던 예산(90억원)보다 줄어든 규모다. 정부에 법률 시행 의지가 있었다면, 신규 복지서비스에 대한 추진 방향을 마련하는 동시에 지자체와 함께 후속 정책 개발과 예산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는 게 부모연대의 설명이다. 

지난 4월 2일(세계 자폐인의 날)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삭발식을 하고 두 달 이상 천막농성을 했다. 문재인정부가 ‘치매 환자와 가족을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겠다’고 선포했듯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도 국가 책무성을 강화해달라는 외침이었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는 △국가 수준의 발달장애인지원종합계획 수립 △발달장애인 낮 시간 활동 보장을 위한 주간활동서비스 제도화 △발달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증장애인직업재활지원 사업 확대 △장애인 가족지원 체계 구축 등을 골자로 한다. 김기룡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총장은 “청와대로부터 발달장애인을 위한 국가 차원의 종합계획을 수립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 68일간 지속했던 천막농성을 해제했다”며 제도의 시행만큼 ‘발달장애인도 존엄한 사회구성원’이라는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부모들이 내 새끼를 나라에 떠넘기고 편하게 살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다.” 최명진 대전장애인가족지원센터장은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의 본질을 이야기했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최 센터장은 “아이들을 열심히 키울 테니까, 열심히 키운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배제되지 않고, 사회에 나가서 차별받지 않도록 최소한의 시스템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라며 “국가책임제는 그 출발점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들이 어렸을 적 지역 어린이집 70곳으로부터 장애를 이유로 거절당하고, ‘단 한 군데도 아이가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길바닥에 앉아 울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최 센터장은 “약자를 대하는 방식을 보면 그 사회가 품은 희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면서 “여전히 척박한 현실이지만 아이들이 지역사회에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고 말했다.

글·사진 하상윤 기자 jony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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