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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향 찾아 항해… 시대의 아픔 문학으로 껴안다

입력 : 2018-08-17 03:00:00 수정 : 2018-08-16 21: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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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오디세우스의 항해’ / 소설가 최인훈 타계 4년 전부터 젊은 연구자 24명 문학정신 탐구 / “北서 핍박받다 전쟁통에 부산행 / 南서도 정주 못한 ‘정신적 난민’ / 그의 운명은 오디세우스와 닮아”
지난달 타계한 소설가 최인훈(1936~2018)은 한국 현대사의 불행한 운명을 한국어 문학의 성취로 이끌어낸 거인이었다. 최인훈이 작고하기 4년 전부터 젊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그의 문학정신을 탐구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최인훈 생전에 출간하려고 했던 집단 연구서 ‘최인훈-오디세우스의 항해’(에피파니)가 타계 후에야 출간된 것은 애석하지만 그 성과는 만만치 않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53·사진) 교수가 책임편집자로 나선 이 책에는 정호웅(홍익대 국문과) 교수를 제외하고는 방 교수보다 연배가 아래인 젊은 연구자들을 포함한 24명이 최인훈 문학을 입체적으로 접근하고 새로운 잣대로 해석한 글들이 포진해 있다.

방민호 교수는 최인훈 생전에 그의 경기 일산 자택을 여러 차례 방문해 직접 최인훈 자신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청취했다. 그는 “우리가 살아온 근대는 가짜 근대였다”는 말을 반복하곤 했다고 방 교수는 전한다. 한반도 북쪽 변방 회령에서 태어나 북쪽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핍박받는 계급이 되어 원산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전쟁 국면에서 피난선을 타고 부산으로 내려온 최인훈은 남쪽 땅에서도 정신적으로는 정주하지 못하고 이상향을 찾아 헤매는 정신적 난민이었다. ‘가짜 근대’의 터널을 통과하며 생애 내내 이상향을 찾아 항해한 그의 운명은 율리시스의 오디세우스와 닮았다는 차원에서 이번 책의 부제도 ‘오디세우스의 항해’가 되었다.
최인훈에 대한 연구서를 책임편집한 방민호 교수는 “이데올로기 대립의 운명을 초극하기 위해 한국어로 실험한 최고의 작가”라고 평가했다. 사진은 한국 현대사의 불행한 운명을 한국어 문학의 성취로 이끌어낸 최인훈의 생전 모습.

방 교수는 이 책에 기고한 ‘월남문학의 세 유형’에서 최인훈을 비롯한 황순원 이호철 등의 문학을 ‘월남문학’으로 분류하며 이들 문학은 ‘고향 상실의 문학’이라고 규정한다. 이들은 권력을 추구하는 속성을 보였던 “김동리, 조연현, 서정주 등의 문협 정통파로 대변되는 ‘고향을 가진 자’들의 문학과 대별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월남문학이란 집합적 개념이라기보다 월남한 문인의 개별 이력을 설명하는 용어로만 썼을 뿐이라는 점에서 방 교수의 ‘월남문학’에 대한 고찰은 문학사적 의미를 지니는 셈이다.

전소영(홍익대 강사)은 ‘라울로부터 독고준으로, 최인훈 문학의 한 기원’에서 “기왕의 논의 속에서 한 가지 간과된 사실 중 하나는 최인훈이 지닌 ‘피난민 의식’이 여타 월남작가와 변별되는 특성을 지닌다는 점”이라며 “그는 실향의 문제를 고향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회향(回鄕)의 불가능성’에 역점을 두어 강력하게 피력했는데, 이는 최인훈만이 지닌 인식론적 특징이며 그의 문학세계가 한국 현대 문학사 안에서 유독 이채를 띠게 된 경위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연남경(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은 ‘최인훈 문학의 미학적 정치성’에서 “당대 소박한 리얼리즘론에 경도되어 있던 문학 제도와 불화했던 최인훈은 문학작품뿐 아니라 산문의 메타적 진술을 통해 문학적 전체주의에 저항하며 미학적 정치에 관해 숙고해왔다”고 주장한다. 연 교수는 “4·19와 더불어 주목되었던 최인훈은 당대 참여문학을 주도했던 ‘창작과비평’에 의해 개인주의적, 관념적 작가로 폄하되는데, 미학적 정치 개념에 의하면 ‘패배주의’로 오인됐던 점이 오히려 문학의 정치성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재해석된다”고 기술했다. 문학평론가 백낙청은 “최인훈 문학을 ‘완전히 용해되지 않은’ 서구 문학의 부작용 사례로 언급하며 환상성, 관념적, 내성적 성격이 작가의 근본적 한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기인(동경외국어대 교수)은 “20대의 혁명에서 70대의 배려까지-‘광장’ 서문들의 변화와 최인훈 작가의식의 변모”에서 7개에 이르는 ‘광장’의 개정판 서문들을 분석했다. 정 교수는 “1960년 4·19의 ‘빛나는 공화국’에서 쓰인 ‘광장’은 4·19혁명의 실패에 대한 진혼곡이 필요했던 1973년도 판본으로, 그리고 이명준도 이렇게 한국 사회의 모순들이 미해결로 남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라 날선 비판을 가하는 1989년 판본으로, 그리고 마침내 독자들에게 ‘도움’을 건네는 2010년도 판본으로 변화한다”면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이에 대응하며 함께 설레고 분노하고 마침내 도움을 주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이 바로 ‘광장’이라는 텍스트의 특이성”이라고 분석했다. 최인훈의 ‘광장’을 10년 앞서 유사한 주제로 발표된 홋타 요시에의 ‘광장의 고독’(1951)과 비교 분석한 김진규(서울대 강사)의 글도 이채롭다.

이 연구서에는 이들 외에도 정호웅, 김종욱, 최정아, 허선애, 이경림, 노태훈, 남은혜, 서세림, 정영훈, 이민영, 이행미, 장문석, 홍주영, 공강일, 구재진, 허련화, Barbara Wall, 송아름, 조소연 등이 참여했다. 방민호 교수는 “최인훈은 한반도의 북쪽 끝이라는 변경에서 출생하였으나 한반도와 아시아와 세계 전체를 하나로 엮어 사유하고, 그 존재를 다시 생명과 우주의 궁극 속에서 정위시키고자 한 위대한 거인이었다”면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그 거인의 영혼의 지도를 읽어내고 싶었고, 또한 그를 통하여 이 시대와 현실의 고민의 지형도를 읽어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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