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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인생 가장 어려웠던 역할… 초심 되찾게 해줘”

입력 : 2018-08-16 21:01:25 수정 : 2018-08-16 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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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서 리명운 役 맡은 배우 이성민 “처음엔 연기가 생각대로 되지 않아 너무 힘들었습니다. ‘내가 지금껏 이 정도 알량한 재주로 먹고살았단 말인가. 배우를 계속해도 되는 건가….’ 정말 별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연기라면 빠지지 않는 배우 이성민(50)이 한 말이라고 믿어질까. 그것도 영화 ‘공작’에서 치밀하고 냉철한 북한 고위간부 리명운 역을 찰떡처럼 소화해낸 그가 말이다.

지난 8일 개봉한 ‘공작’은 1990년대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대북공작을 수행한 박채서씨의 이야기를 그린다. 액션신 하나 없이 인물들 간 심리전만으로도 긴장을 유지하며 현실감 있는 스파이의 세계를 담아냈다.
영화 ‘공작’에서 리명운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 이성민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남북관계가 이처럼 급변할 줄 상상도 못했다”며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함께 ‘공작’을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개봉 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성민은 리명운에 대해 “연기 인생을 돌아보게 한 난제”였다고 털어놨다.

리명운은 자기 생각과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색안경 너머로 가늘게 뜬 눈은 예리하게 상대를 꿰뚫어 본다. 얼굴 근육은 가끔 미세하게 움직일 뿐이다. 단순하고 명확한 표현이 장점인 이성민에게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돌파 방법은 ‘초심’을 찾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연극 작품을 했을 때처럼 꼼꼼히 설계하고 계산해서 대본 위에 표시했습니다. 숨 쉬는 것, 눈 깜빡이는 것 하나까지도요. 오만하게도 나이가 들고 연기가 편해지면서 대본에 표시를 안 하기 시작했었거든요. 이 작품을 만나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이 나이에 다시 이런 경험을 한 걸 큰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심리전 연기는 흑금성 역의 황정민에게도 큰 어려움이었다. 두 배우는 서로 고충을 토로하며 액션 연기하듯 합을 맞춰 나갔다. 상대 배우를 이렇게까지 의지했던 현장도 드물었다.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될까 봐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혼자 앓다 보니 외롭고 쓸쓸해졌죠. 그런데 알고 보니 정민씨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고, 다른 배우들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던 거예요. 윤종빈 감독까지도요. 그때부터 서로 많이 의지하게 됐습니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우리 배우들 정말 잘했더군요. 물론 저도요.”

그가 ‘공작’의 대본을 받은 때는 2015년이었다. ‘보안에 신경 써달라’는 말과 함께였다. 영화 개봉 시기에 한국 정치 상황과 남북관계가 이처럼 급변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장면을 TV로 지켜봤습니다. 흑금성과 리명운이 함께 걷는 장면이나 김정일이 등장하기 전 군인들이 알코올 솜으로 소독하는 장면 등 우리 영화와 겹치는 모습이 많아 놀랐습니다. 영화에서 빠졌지만 리명운이 흑금성에게 평양냉면을 대접하는 장면도 있었거든요. 정말 신기했죠. 윤 감독이 미래에서 온 게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예요. 그래서 더 나아가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공작’을 함께 관람하면 좋겠다고 생각해봤습니다.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공작은 1990년대 한국 정치권과 남북 사이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한다. 시대 배경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 관객에게는 영화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고교 2학년인 제 딸아이가 ‘재미있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제 영화를 보고 늘 아주 냉정하게 평가하는 아이거든요. 그런데 ‘공작’이 좋았다기에 어렵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모르는 이야기라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어쨌든 재미있다고, 친구들에게 부모님과 함께 보라고 추천했다네요.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성민은 연극으로 배우생활을 시작해 2000년대 들어 영화와 TV 드라마에 얼굴을 비치기 시작했다. 단역, 조연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그는 2012년 드라마 ‘골든타임’에서 첫 주연을 꿰차며 ‘믿고 보는 배우’로 발돋움했다. 이후에도 ‘미생’, ‘기억’ 등 각종 드라마와 영화 ‘변호인’, ‘군도’, ‘검사외전’ 등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올해는 지난 4월 ‘바람 바람 바람’에 이어 ‘공작’, 15일 개봉한 ‘목격자’까지 스케줄이 줄줄 이어져 정신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요즘도 영화 촬영 중입니다. 8월에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어요. 게다가 경쟁 영화(신과 함께:인과 연)가 너무 잘 되고 있다는 소식에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습니다.(웃음) 하지만 우리 영화를 많은 관객이 사랑해주신다면 아무리 바빠도 피곤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잠을 안 자도 될 것 같습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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