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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드] '기촉법' 공백에…도산 위기 내몰리는 中企들 'SOS'

입력 : 2018-08-15 20:51:40 수정 : 2018-08-15 22: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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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징후 기업들, 워크아웃 통해 재기 / 기촉법 일몰로 中企 선택의 폭 줄어 / 신규자금은 우선 변제권 인정 안해줘 / 자산건전성 떨어지는 곳에 투자 꺼려 / 채권자들 자율협약조차도 진전 없어 / “금융당국, 기업 재정 사전 파악 해야" 발광다이오드(LED)를 제조하는 중소 수출업체인 K기업은 몇년 전 해외 유수의 거래처에서 130억원대의 수주를 따내고도 도산 위기에 내몰렸다. 몇 달 후면 대금을 회수해 채무를 갚고 영업이익도 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당장 공장을 가동하고 인건비를 지불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K업체는 채권은행에 곧바로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다행히 채권단의 동의를 얻어 채무상환기간 연장과 함께 긴급자금을 수혈받을 수 있었다. K업체는 워크아웃 돌입 후 6개월 만에 채무를 상환하고 경영정상화에 성공했다. K업체의 회생을 도운 워크아웃 근거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었다.

기촉법은 부실징후 기업에 대해 채권금융기관들이 채무조정과 신규 자금공여 등을 통해 해당 기업의 구조조정과 정상화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이다. 2001년 8월 제정된 기촉법은 일몰(日沒)로 자동소멸된 이후에도 재입법, 일몰 기한 연장을 반복하다가 지난 6월 말 일몰됐다. 기촉법 일몰에 따른 법적 공백 상태에서 유동성 위기에 놓인 중소기업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등을 통해 기촉법의 대체 입법을 호소하고 있다.

15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신용평가 C등급을 받아 워크아웃 대상으로 분류된 기업은 총 51개로 대기업이 8곳(16%), 중소기업이 43곳(84%)이다. 이 중 중소기업 33곳과 대기업 8곳은 현재 워크아웃이 진행 중이다.
◆워크아웃, 단기 자금난 빠진 기업엔 구명줄

기업구조조정을 담당하는 금융권 전문가들은 기촉법 일몰로 경기 침체 국면에서 기술력과 우수한 해외 거래처들을 확보하고 있지만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는 ‘기술 중소기업’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금융위의 통계에 따르면 은행들의 신용위험평가제도가 도입된 2009년부터 부실징후기업(C, D등급)으로 선정된 기업들은 대부분이 워크아웃을 통해 살아났다. 기촉법에 따른 워크아웃기업은 145곳 중 61곳이 회생해 성공률이 42.1%에 달했지만 도산법 적용 대상인 법정관리기업은 102곳 중 28곳만 회생했다.(성공률 27.5%)

법정관리와 워크아웃이 적용되는 ‘구조조정 졸업’ 요건을 따지면 워크아웃의 실질적 성공률은 더 높아진다. 도산법상 법정관리 졸업 요건은 ‘해당기업이 1년간 채무에 대한 이자를 정상적으로 상환할 수 있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반면 워크아웃 졸업 요건은 ‘2년 연속 경상이익 실현’ ‘재무구조의 개선, 자체자금 조달 능력 강화’가 필수조건이어서 법정관리 졸업 요건보다 훨씬 까다롭다.

구조조정업계 관계자는 “1년간 이자를 상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정관리를 졸업시켰지만 이후에 곧바로 파산하거나 구조조정 절차에 돌입하는 경우들이 대다수”라며 “워크아웃이 없으면 사실상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구조조정 대안이 자율협약이나 법정관리로 줄어드는 셈인데 선택지를 굳이 줄여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워크아웃과 달리 법정관리 절차로 돌입하면 신규자금 투입은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현행 도산법에서 신규자금에 대해서는 우선 변제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아 채권자 입장에서 부실이 심화한 기업에 신규자금을 투입할 유인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D등급 평가를 받은 기업에 신규자금을 지급해도 NPL(부실채권)시장에서는 이 자금이 부실채권으로 거래된다. 이 때문에 파격적인 채무탕감은 가능할 수 있어도 경영정상화를 위한 신규자금 투입은 불가능에 가깝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워크아웃에 돌입한 채권은행은 이에 대한 충당금을 의무로 쌓을 필요가 없지만 법정관리에 돌입하게 되면 해당 기업의 채권을 지닌 금융기관들은 이에 대해 100% 손실처리를 하고 충당금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정관리 대상 기업이 회생절차를 진행시키기 위해 법무법인에 지불해야 하는 추가 예납금도 큰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기업 실사비용과 별개로 변호사 선임 등에 평균 2000만원에서 3000만원가량의 비용이 소요되는데 이 또한 자금난에 빠진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법정관리, 워크아웃 공백 메우기엔 부족

국내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촉진시키는 자본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이 같은 현실도 ‘기촉법’ 재입법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처럼 자본시장이 고도화되어 있지 않은 한국의 경우 기업 구조조정을 시장에만 맡겨 놓을 경우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전문적인 구조조정 플레이어 육성에만 최소 10년을 소요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구조조정 전문 PEF(사모펀드) 관계자는 “자산건전성이 떨어지는 중소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고수익을 창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나설 PEF들이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보통 채무조정 등을 통해 향후 자산건전성이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워크아웃 기업들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단기간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자본시장 플레이어들의 적극적인 투자를 위해서도 워크아웃이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촉법이라는 법적 근거가 있을 때는 채권자들이 워크아웃 전에 자율협약을 통해 서로 합의를 하고 부담을 나눠 지려고 하는 유인이 있었는데 기촉법 일몰 이후에는 이런 자율협약조차 진전되고 있지 않다”며 “기존 기촉법을 보완해서 시급히 재입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기촉법이 일몰됐던 2005∼2006년에도 현대LCD, 현대아이티 등 6개 대기업이 자율협약을 추진했지만 팬택, 팬택엔큐리텔 2개사만 성공했다. 기촉법 공백기였던 2011년에도 삼부토건, 동양건설을 비롯한 건설업체들의 자율협약이 줄줄이 무산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펴낸 ‘국가별 생산성 정책과 파산체제 분석’ 보고서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한 재정 상태를 금융당국이 사전에 파악하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는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영국도 기업부실 예방과 구조조정 능률 향상을 위한 다양한 규정을 두고 있다.

보고서에서는 2009년 남유럽 국가들을 경제위기로 몰아넣은 주요 원인으로 조기경보 시스템의 부재를 꼽았다. 법정관리 위주의 구조조정은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사들에서 비공식적 워크아웃을 통해 구조조정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그 회사들을 값비싼 파산 절차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라윤 기자 ry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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