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신용평가 C등급을 받아 워크아웃 대상으로 분류된 기업은 총 51개로 대기업이 8곳(16%), 중소기업이 43곳(84%)이다. 이 중 중소기업 33곳과 대기업 8곳은 현재 워크아웃이 진행 중이다.
기업구조조정을 담당하는 금융권 전문가들은 기촉법 일몰로 경기 침체 국면에서 기술력과 우수한 해외 거래처들을 확보하고 있지만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는 ‘기술 중소기업’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금융위의 통계에 따르면 은행들의 신용위험평가제도가 도입된 2009년부터 부실징후기업(C, D등급)으로 선정된 기업들은 대부분이 워크아웃을 통해 살아났다. 기촉법에 따른 워크아웃기업은 145곳 중 61곳이 회생해 성공률이 42.1%에 달했지만 도산법 적용 대상인 법정관리기업은 102곳 중 28곳만 회생했다.(성공률 27.5%)
법정관리와 워크아웃이 적용되는 ‘구조조정 졸업’ 요건을 따지면 워크아웃의 실질적 성공률은 더 높아진다. 도산법상 법정관리 졸업 요건은 ‘해당기업이 1년간 채무에 대한 이자를 정상적으로 상환할 수 있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반면 워크아웃 졸업 요건은 ‘2년 연속 경상이익 실현’ ‘재무구조의 개선, 자체자금 조달 능력 강화’가 필수조건이어서 법정관리 졸업 요건보다 훨씬 까다롭다.
워크아웃과 달리 법정관리 절차로 돌입하면 신규자금 투입은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현행 도산법에서 신규자금에 대해서는 우선 변제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아 채권자 입장에서 부실이 심화한 기업에 신규자금을 투입할 유인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D등급 평가를 받은 기업에 신규자금을 지급해도 NPL(부실채권)시장에서는 이 자금이 부실채권으로 거래된다. 이 때문에 파격적인 채무탕감은 가능할 수 있어도 경영정상화를 위한 신규자금 투입은 불가능에 가깝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워크아웃에 돌입한 채권은행은 이에 대한 충당금을 의무로 쌓을 필요가 없지만 법정관리에 돌입하게 되면 해당 기업의 채권을 지닌 금융기관들은 이에 대해 100% 손실처리를 하고 충당금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정관리 대상 기업이 회생절차를 진행시키기 위해 법무법인에 지불해야 하는 추가 예납금도 큰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기업 실사비용과 별개로 변호사 선임 등에 평균 2000만원에서 3000만원가량의 비용이 소요되는데 이 또한 자금난에 빠진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법정관리, 워크아웃 공백 메우기엔 부족
국내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촉진시키는 자본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이 같은 현실도 ‘기촉법’ 재입법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처럼 자본시장이 고도화되어 있지 않은 한국의 경우 기업 구조조정을 시장에만 맡겨 놓을 경우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전문적인 구조조정 플레이어 육성에만 최소 10년을 소요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구조조정 전문 PEF(사모펀드) 관계자는 “자산건전성이 떨어지는 중소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고수익을 창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나설 PEF들이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보통 채무조정 등을 통해 향후 자산건전성이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워크아웃 기업들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단기간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자본시장 플레이어들의 적극적인 투자를 위해서도 워크아웃이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펴낸 ‘국가별 생산성 정책과 파산체제 분석’ 보고서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한 재정 상태를 금융당국이 사전에 파악하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는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영국도 기업부실 예방과 구조조정 능률 향상을 위한 다양한 규정을 두고 있다.
보고서에서는 2009년 남유럽 국가들을 경제위기로 몰아넣은 주요 원인으로 조기경보 시스템의 부재를 꼽았다. 법정관리 위주의 구조조정은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사들에서 비공식적 워크아웃을 통해 구조조정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그 회사들을 값비싼 파산 절차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라윤 기자 ry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