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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1초 만에 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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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12 20:54:52 수정 : 2018-08-12 2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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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를 아시는지. 굴지의 음반회사 얘기가 아니다. 미국 음악학자 데이비드 코프가 7년 고생 끝에 만든 작곡 프로그램이다. 고전음악의 알파고로 보면 된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던 노벨평화상 수상자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바흐는 종착역이다. 그로부터 시작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이 오직 그에게 이른다”고 했다. 슈바이처가 말한 바흐는 바로크의 대명사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다. EMI의 특기가 바로 바흐 모방이다. 인간 관점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EMI의 생산성이다. EMI는 바흐 작법에 숙달한 뒤 하루 5000곡의 바흐 풍 합창곡을 쏟아냈다.

음반도 출시돼 불티나게 팔렸다. 당연히 역풍도 불었다. 미국 작곡가 스티브 라슨이 던진 도전장이 대표적이다. 라슨은 전문 연주자에게 바흐와 EMI,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게 하고 청중에게 작곡가를 가려내게 하자고 제안했다. 인공지능(AI) 음악의 허상을 단박에 깰 시도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청중은 EMI의 곡을 바흐의 작품으로, 바흐 원곡을 라슨의 작품으로 봤다. 라슨의 곡은? AI 음악으로 판정됐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자 앞으로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뭐가 남을지 다들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예술을 꼽는 이들이 적잖다. 낙관은 쉽지 않다. 음악만인가. 문학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KT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1억원 상금을 내걸고 국내 처음 개최한 ‘AI 소설 공모전’ 결과만 봐도 어쩐지 찜찜하다.

공모전은 최근 5개 팀의 수상자를 냈다. 모두 알파고의 딥러닝(심층학습) 방식으로 소설 창작을 가르쳤다고 한다. 작품 수준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속도를 보자. ‘로맨틱 스펙터클’이란 수상작을 낸 AI는 3600자 소설 완성에 단 1초를 썼다.

이 AI가 코프의 EMI처럼 7년 수련을 거친다면 어떤 작품을 낼지 가늠할 길이 없다. AI의 정복 대상이 딥러닝이란 필살기를 장착한 뒤 전방위로 넓혀지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언젠가 “AI가 종착역”이란 단언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아무쪼록 “인간 직업, 다 사라진다”는 일각의 경고음이 기우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이승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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