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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의인문상식] 범죄의 재구성과 사법적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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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10 23:10:19 수정 : 2018-08-10 23: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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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청소년 범죄 위험성 도마위 / 합당하고 엄정하게 책임 물어야 여행지를 선택할 때 밤에 혼자서 거리를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지도 고려한다. 야경은 낮의 관광과 다른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도 밤 활동의 안전도를 여행의 장점으로 꼽는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여행에서 안전도에 만족하는 반면 정작 우리 자신은 이전에 비해 불안감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여성이 공공시설과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 몰카 촬영은 밤낮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초소형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특정 신체 부위를 촬영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인터넷에 올려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또 청소년이 청소년이나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의 잔인성이 날로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지금까지 몰카와 청소년 범죄의 경우 가해자의 책임을 정확하게 묻기보다는 피해자의 원인 제공론이 부각되곤 했다. 가해자도 문제이지만 피해자가 원인 제공을 했기 때문에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문제가 공정하게 처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불안감이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범죄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적으로 전국시대 상앙이 제시했던 엄벌주의가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사소한 범행이라도 엄벌에 처하게 되면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또 잠재적 범죄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친 엄벌주의는 사회의 공포를 조장하는 또 다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우리는 특정 유형의 범죄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사법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지 논의를 전개해봐야 한다. 지금은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재구성, 줄여서 범죄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청소년 범죄의 경우 옛날에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거나 ‘아이들의 싸움을 어른 싸움으로 키워선 안 된다’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청소년이 비행을 저지르더라도 일찍부터 범죄자의 낙인을 찍으면 이후의 활동에 장애가 되므로 어른이 될 때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사고가 생겨났다. 하지만 최근에 일어나는 청소년 범죄는 서로 맞고 때리면서 크는 싸움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신체적 상해와 정신적 고통을 주는 일이 많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더 보호하는 역설적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잔인하고 지속적인 청소년 범죄자를 여전히 보호의 대상으로 설정해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하다.

몰카 범죄의 경우 폭행처럼 피해자에게 명시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고 피해를 주면 영상을 없애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많았다. 이러한 생각은 신체적 피해에 집중돼 몰카가 정신적 고통을 지속적으로 줄 수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또 인터넷 공간의 위력이 초기 상태와 달리 서버를 해외에 두면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도 않고 영상의 색출과 삭제에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 때문에 몰카 범죄는 우리 사회에서 자칫 성 대결로 확전될 수 있는 뜨거운 주제로 부상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사적인 영역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존감을 지키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신체적 피해에 못지않고 정신적 고통을 주는 범죄를 여전히 사소한 범행으로 봐야 할지 논의가 필요하다.

청소년과 몰카 범죄는 과학 기술의 발달과 맞물려 피해자의 고통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한 논의는 정의의 관점에서 재조명돼야 한다. 지금까지 정의를 사회 자원의 공정한 배분에 초점을 두었다면 범죄나 갑질 등의 지속적인 고통을 주는 사회 관행의 재조정에도 초점을 두어야 한다. 고통의 유발에 대한 응분의 책임과 고통의 피해에 대한 엄정한 피해와 회복이 실현돼야 공동체의 삶이 가능해진다. 누군가 나를 범죄의 대상으로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감이 늘어서 이곳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게 된다. 일단 안전한 사회가 돼야 사람은 과도한 불안감을 키우지 않고 자존감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자원의 분배만큼 고통의 해결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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