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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꿈꾸는 삶… 한국에선 불가능했고 여기선 가능했다”

입력 : 2018-08-11 03:00:00 수정 : 2018-08-10 19: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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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영 지음/미래의창/1만4000원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박가영 지음/미래의창/1만4000원


“백화점 주차 도우미를 하면서, 한겨울 추위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건 매일 VIP와 임원들의 차 번호와 이름, 얼굴을 외우고 시험을 봐야 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이 버튼 하나를 눌러 주차권을 발급받는 ‘엄청난 수고’를 하지 않도록, 그 높으신 신분을 알아보고 신속하게 게이트를 열어줘야 했거든….

나는 왜 그들의 이름과 얼굴, 심지어 차종과 번호까지 달달 외워야 하는 걸까. 신분제도로 고통받는 불가촉천민 이야기를 담은, ‘신도 버린 사람들’이라는 책이 자꾸 떠올라 일하는 내내 집중할 수가 없었어.”

“어리다는, 여자라는, 알바생이라는, 잘 웃는다는, 거절을 잘 못한다는, 돈이 필요하다는 내 특징이 약점이 되고, 그 약점으로 누군가에게는 나에 대한 권력이 생긴다는 구조가 나는 진저리칠 만큼 싫고 무서웠어. 나는 그런 권력을 준 적이 없는데, 뒤돌아서 마구 도망치고 싶었어. 구체적으로 이민을 생각했다기보다는 그저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품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발을 디딘 저자 박가영(35)씨가 에세이를 냈다. 한국 청년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하고 싶었서였다. 그녀는 지금 호주에서 한국식 퓨전 음식가게 두 개를 운영 중인 성공한 쪽에 속한다. 번듯한 오너셰프다. 셰프를 하고 싶었던게 아니다. 영주권을 받는 데 필요한 기술로 요리를 택했고 호텔 알바를 하다 셰프가 된 것이다.

“가진 거라곤 알바 경력밖에 없는 흙수저에 고작 전문대 출신, 한국에서 정한 기준에는 절대 미치지 못하는 내가 언젠간 행복해질 수 있을까?”
저자 박가영씨는 현재 호주 멜버른에서 퓨전 한식 레스토랑 두 곳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다.

저자에게 한국은 척박한 곳이었다. 학창 시절, 다들 의사를, 대기업을 꿈꿀 때 꿈이라곤 맥도널드 정규직이 되는 게 전부였다. 머리 터지게 공부하지 않은 자에게는 꿈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꿈꾸기를 포기했다. 돈을 벌러 뛰어든 알바 전선에서는 온갖 굴욕적인 순간을 겪어야 했다. 비디오방에서 일할 때는 성욕에 사로잡힌 남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추근거림을 당했다. 사무 보조로 일할 때는 회식 4차 노래방에서 만취한 차장급 남성으로부터 성추행도 당했다.

그녀는 호주에 온 지 딱 10년이 지나 레스토랑 두 개를 열었다. 대단한 부자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괜찮게 산다. 삶의 질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그럼에도 가끔씩 의문이 든다. 왜 한국 사회에는 내 자리가 없었던 건지, 꽤 치열하게 살았는데도 왜 한국에선 괜찮지 않았는지….

그러나 확실한 건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던 삶을 버리고 나의 삶을 찾았기에 행복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왜 한국에서 그토록 방황했는지, 그리고 호주에서는 어떻게 나다운 삶을 찾아냈는지, 머나먼 멜버른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떠올린 소회를 저자는 이 책에 담아냈다. 그러면서도 이민에 대한 허황된 생각일랑 접으라고 했다.

“돈, 돈, 돈 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어서 이민을 꿈꾸는 거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권해. 내가 그랬거든. 비교당하지 않고, 소박하게 벌 만큼 벌고 아껴 쓰면서 마음만은 여유롭게 살고 싶었어. 그런데 웬걸, 호주도 결국 자본주의 국가이고 현실은 내 마음 같지 않더라. 이민 와서 자리 잡은 후에는 네가 원하는 것처럼 소박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이민하는 과정에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지불해야 하는 돈이 있어. 최대한 현실적으로 고민해보고 왔으면 좋겠어.” 이 책에는 이민에 필요한 지식도 꼼꼼히 챙겨져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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