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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이 미래다 - 그린 라이프] 업무 벅찬데 “개 구해줘요” 민원까지 … 동물보호감시원들 ‘녹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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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10 06:00:00 수정 : 2018-08-09 19: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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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태부족에 어려움 호소/목줄 미착용·동물학대 적발 등 담당/ 유통·어업 관리 등 6개 분야도 맡아/ 1명당 위반처분 1년에 1.4건꼴 그쳐/ 전문성 요하지만 힘들어 전근 비율↑/ 정부, 학대수사 위해 동물경찰제 도입/ 운영지자체 0곳 … “조직 확충이 먼저" “신분증 제시 안 하는 건 기본이에요. 강아지 안고 도망가는 ‘도망자형’, 죄송하다고 싹싹 비는 ‘읍소형’, 앙심 품고 부당하다고 민원 내는 ‘악성 민원형’ 등 벌금을 피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요.“

지난 1일 서울 관악구 반려동물팀 소속 동물보호감시원과 동물보호명예감시원이 지하철 2호선 신림역 인근 도림천에서 올바른 반려동물 문화 형성을 위한 ‘펫티켓’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관악구 제공
2건. 지난해 서울 관악구 일자리경제과 반려동물팀에서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매긴 실적이다. 직원 4명이 동물보호감시원으로 활동하면서 펫티켓 준수를 독려하고 동물학대 예방과 단속을 하지만 거센 반발과 항의에 직면하기 일쑤다. 지난 1일 서울 관악구 도림천에서 만난 정연중 팀장은 “작년에 행정처분 한 2건 중 1건은 개를 풀어 놓은 주인과 다른 시민이 싸우는 바람에 사건이 경찰에 입건되면서 과태료를 부과했다”며 “가뜩이나 여름에는 반려동물 소음 민원과 유기견 포획 등으로 업무도 많은데 ‘왜 나만 붙잡냐’는 견주의 항의와 ‘왜 단속 안 하느냐’는 시민들 항의 속에서 난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소연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개 목줄 미착용·동물학대·동물 미등록 적발 등으로 동물보호감시원(322명)이 위반처분을 한 실적은 441건이었다. 동물보호감시원 1명당 1년에 1.4건의 위반처분을 내린 셈이다. 세종시와 울산시, 제주도는 위반처분 실적이 한 건도 없었다. 동물 미등록(190건)과 동물관리 미이행(189건)이 위반처분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동물학대 처분은 10건에 불과했다. 동물보호감시원들은 인력 부족에 과중한 업무 부담과 민원 때문에 동물보호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동물 업무에 방역·축산은 기본, 농축산물 유통과 어업까지… 동물보호감시원은 슈퍼맨?

“다들 도망갈 궁리만 해요. 인력은 적은데 안에서는 업무에 치이고 밖에서는 민원에 시달리니까요.” 광주의 한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동물보호감시원으로 근무하는 A 주무관은 내년 초 정기인사 때 다른 부서 전출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 그가 맡은 업무는 동물보호 외에도 축산·방역·유통과 원산지·내수면 어업 관리 등 6개 분야다. A 주무관은 “명절에는 원산지 단속, 여름에는 수산·축산물 유통관리, 가을부터 봄까지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등 방역 업무로 정신이 없다”며 “그 와중에 ‘유기견 잡아 달라’, ‘하천 제방 틈에 빠진 고양이 구해 달라’ 등 동물 관련 구조 요청과 민원이 쏟아져 업무를 감당하기 벅차다”고 말했다.
세계일보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동물보호감시원 75명 중 61%(46명)는 일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이들 중 2년 이상 일한 감시원 비율은 18%(14명)에 불과했다. 반려동물에 관한 전문성이 필요한데도 과중한 업무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빨리 떠나야 할 업무 1순위로 꼽힌다는 불만도 나온다.

부족한 인력은 빈약한 조직에서 비롯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서울, 경기, 부산시, 대전시 등 4곳에만 동물보호 업무를 전담하는 과(팀)가 있다. 나머지 지자체에서는 농축산 관련 부서에서 1∼2명이 동물보호·복지 업무를 병행한다. 228개 기초지자체 중 동물 보호·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팀을 둔 곳은 7.9%(18곳)에 그쳤다. 충북, 충남, 경북, 경남, 강원도에는 동물보호·복지 업무 전담팀을 둔 지자체가 전무했다.

◆동물보호감시원을 동물수사 전문 경찰로?… 전담 조직 없이는 ‘탁상공론‘

동물보호감시원들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 중인 ‘동물경찰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동물경찰제는 늘어나는 동물학대 사건에 대응하고자 전문성을 갖춘 동물보호감시원에게 동물 관련 사건을 수사할 권한을 주고자 추진됐다. 지난해 동물보호감시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긴 ‘사법경찰관리법‘이 개정되면서 동물보호감시원이 동물학대 사건을 수사하고 영장신청 등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법이 통과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동물보호감시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해 운영 중인 지자체는 한 곳도 없다. 특별사법경찰을 운영해야 할 지자체에서는 인력과 조직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동물보호감시원에게 사법경찰관 업무까지 맡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세계일보 설문조사에 응답한 동물보호감시원 75명 중 53%(40명)는 특별사법경찰관 지정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 찬성은 28%(21명), 모르겠다는 18%(14명)였다. 반대 사유로는 전문성과 인력 부족이 가장 많이 꼽혔다. 부산시 관계자는 “수사권이 없어서 초기 동물학대 증거를 수집·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필요성은 느끼지만 전담 조직과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특사경을 도입하면 업무 과중으로 직원들의 업무 기피만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동물보호경찰과 신설을 추진하는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느는 동물학대 사건에 대응해 전문성을 갖춘 수사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문운경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과장은 “동물학대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도 높고 이를 위한 제도적 기반도 다 갖췄지만 뒷받침할 인력과 조직이 없어서 답답하다”며 “지난해 사법경찰관리법 개정을 계기로 행정안전부에 동물보호경찰과 신설을 요청했지만 직원 2명 증원에 그쳤다”고 말했다. 이어 “가축 전반의 동물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지자체에 동물 업무를 전담할 조직 확충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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