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착오를 수없이 겪고도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을 헛돈으로 쓰는 부실사업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천불이 난다. 치적 쌓기에 급급한 선심 정책·행정도 문제지만 이런 엉터리 사업을 걸러내지 못하는 감시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까닭이다. 일반 가정에서 가계부를 꼼꼼히 쓰는 것은 얼마를 벌어 어디에 어떻게 얼마를 썼는지를 알아야 한 푼도 허투루 안 쓰고 수입과 지출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국민이 낸 세금 씀씀이를 적는 나라 살림 가계부는 말할 것도 없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예산을 알맞게 짰는지, 예산을 계획대로 잘 썼는지 점검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국회와 지방의회다. 그러나 이곳에선 정부의 예산 집행을 감시하는 것보다 정부가 만들어 오는 예산안에 숟가락 하나라도 더 얹어 지역 사업 예산을 따내는 일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예산 심의 때마다 밀실 협상, 쪽지 예산이 난무하는 난장판이 벌어지는 이유다.
김기홍 논설위원 |
지역에서 30년 넘게 예산감시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상석 ‘세금도둑잡아라’ 사무총장은 “예산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권력을 감시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펴낸 책 ‘내가 낸 세금,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예산감시운동의 노하우를 풀어 놓으며 예산감시에 대한 일반 시민의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관심만으로도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치단체나 자치단체장들이 비리라는 콩을 아스팔트에 뿌리고 다니는 거라면 우리가 하는 일은 쇠젓가락으로 그걸 줍는 것이다. 나무젓가락으로는 그나마 콩이 잘 잡히지만 쇠젓가락으로 콩을 잡으려면 집중해야 하고 힘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
쇠젓가락으로 콩을 집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는 시민단체에 비하면 국회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예산 상자’를 열어 볼 수 있는 만능 키를 갖고 있다. 국민이 맡겨놓은 것이다. 문제는 의원들이 그 열쇠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결산 심사 시즌이 돌아왔다. 9월 정기국회 전까지 결산 심의·의결을 마무리해 본회의에 넘겨야 한다. 국회에는 정부가 작성한 ‘2017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가 제출돼 있다. 1396쪽 분량이다. 숫자만 잔뜩 나열한 중앙관서별 세입세출결산 재무제표 내역이 빼곡하다. 성과보고서는 달랑 12쪽뿐이다. 중앙부처 53개 기관 성과목표 달성률이 75.1%에 그쳤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했는지를 알 수 없다. 심의 기간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시간이 빠듯하다. 의원들에게 현미경 심사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올해도 수박 겉핥기 심사가 뻔하다.
결산은 국가 예산이 투명하고, 효율적이고, 적법하게 사용되었는지를 되짚어보고, 낭비 예산은 없는지 두루 살펴 다음 예산 편성에 반영하기 위한 절차다. 그러나 현행 결산 시스템으론 결산 결과를 다음 예산에 반영하기 어렵다. 결산 심사에 따른 국회 지적이 정부에서 무시되기 일쑤고, 국회 일정상 결산 심의가 마무리될 즈음엔 이미 정부의 새해 예산안 편성이 끝난 상태다. 결산제도의 대폭 손질이 시급하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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