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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는 재미, 싼 가격까지…그들은 동묘에서 행복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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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07 09:00:00 수정 : 2018-08-07 13: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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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다시 뜨는 동묘시장①] 구제 패션 대명사로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 바닥에 놓인 구제 옷들.
“사장님 이거 얼마에요?”

한 50대 남성이 옷더미 위에 앉아 이렇듯 소리치자, 사장은 익숙한 듯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리며 외쳤다. “2000원!” 이에 남성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며 애교 섞인 표정을 지었다. 사장이 “1000원에 가져가”라고 말했고, 티셔츠는 1000원에 낙찰됐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에 모인 사람들 손에는 ‘중고 옷’으로 가득했다.

최근 동묘시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나 혼자 산다’ 등 각종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구제시장’ 쇼핑 무대로 자주 다뤄지고 있어서다. 불가리아 출신 유명 디자이너 키코도 동묘시장을 방문해 ‘세계 최고의 거리’라고 극찬하며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구제시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구제 옷을 ‘중고’라기보다 ‘하나밖에 없는 복고풍 패션’이라고 선호하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에서 중고품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
◆“모든 패션이 다 있다” 동묘의 스트릿 패션

‘동묘의 바닥에는 패션의 모든 것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묘시장에는 패션이 다양하다. 옷은 물론 선글라스, 모자, 신발, 심지어 시계, 면도기까지 바닥에서 만나볼 수 있다. 패션 앞에 남들의 시선 따윈 없다. 사람들은 수십분씩 바닥에 앉아 좋은 제품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구제 옷을 팔던 스리랑카 출신 파자르는 ‘어떤 옷이 인기가 많냐’는 질문에 “잘 나가는 옷, 좋은 옷이란 없다”며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이 좋은 물건인데 결국 자기 마음이니 자신도 알 수 없다”고 웃음 지었다. 이어 “주말엔 동묘거리가 사람으로 가득 찬다”며 “젊은 사람들이 와서 한 보따리씩 사간다”고 덧붙였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에서 구제 선글라스를 고르고 있는 행인.
◆탈의실 없어 오히려 로드 패션쇼장으로

길거리 상점인 동묘에 피팅룸(탈의실)은 없었다. 사람들은 옷가지 위에서 직접 옷을 갈아입거나 몸에 대보는 식으로 자신에 맞는 옷을 고른다. 친구들끼리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선호하는 패션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렇게 길거리는 패션쇼장으로 변신한다.

장년의 신사들역시 보라색, 연두색, 파란색 등 형형색색의 화려한 옷을 입고 동묘 길거리를 누볐다. 30년 동안 동묘를 찾았다는 김모(63)씨는 “친구들에게 동묘로 집합이라고 메시지를 보내면 모두 모인다”며 “동묘는 친구들끼리 아지트”라고 치켜세웠다.

유명 디자이너 키코는 지난달 28일 동묘시장의 장년 남성 사진들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공유했다. 배까지 올린 바지와 파란색 스카프, 형형색색의 셔츠들을 입은 동묘의 멋쟁이들은 해외 디자이너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것이다. 해당 게시물은 각국으로 공유되며 3800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다. 이를 본 한국 누리꾼들도 “키코가 인정한 동묘 아재룩”, “이제 동묘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듯하다” 등의 댓글을 남기며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유명 디자이너 키코가 지난달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동묘패션 사진. 출처=인스타그램

◆그들은 왜 동묘를 찾을까...“재미+다양한 패션+정겨움”

동묘를 찾은 젊은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동묘를 찾는 이유에 대해 ‘재미’라고 입을 모았다.

전남 완도에서 동묘 구제 옷을 사러 서울로 원정온 금일고 2학년 김형수(17)군은 이날 큰 쇼핑백에 각종 옷을 가득 담아 길거리를 누볐다. 전날에 이어 이날도 동묘에 온 김군은 6만원어치 옷을 구입했다. TV를 보고 동묘를 찾았다는 김군은 “옷을 잘 알지 못하지만 쓸만한 게 많은 것 같다”며 “가격도 싸고 뽑기 운에 따라 좋은 옷을 살 수 있는 스릴도 있다”고 웃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을 찾은 김형수(17)군. 그는 이날 쇼핑백 한가득 구제 옷을 구매했다.
스트리트, 댄디, 캐주얼 등 다양한 패션을 한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도 동묘의 매력이다. 경기도에서 온 이경(23), 윤청하(23)씨는 “힙합 경연방송이 인기를 얻으며 구제 힙합 옷이 유행”이라며 “예쁘고 저렴한 옷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동묘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통시장의 느낌이 있어 정겨운 느낌도 있다”며 “어렸을 때부터 와보고 싶었는데 행복하다”고 웃음 지었다.

동묘를 찾은 외국인도 눈에 띄었다. 태국에서 온 야니(28)는 “인터넷 사이트를 보고 동묘를 찾아왔다”며 “사고 싶은 옷을 찾는 과정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 바닥에 놓인 구제 신발.

◆동묘 상인들 볼멘소리 “불황에 팔고 싶은데 옷이 없다”

동묘의 구제 상인들은 각 지역 의류수거함이나 폐 의류집하장 등에서 옷을 가져온다. 옷들은 종류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데 티셔츠·난방·바지는 2000원, 점퍼·마이는 3000원, 코트·두꺼운 점퍼는 5000원 수준이다. 사실상 상인마다 가격이 다르고 그때그때 흥정도 가능해 정해진 가격은 없다.

일부 동묘 상인들은 최근 경기가 좋지 않아 구제 옷을 구하기가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구제 상인은 “경기가 안좋아 중고 옷이 나오지 않는다”며 “물건을 많이 들여오고 싶어도 들어올 수가 없다”고 했다. 동묘를 찾는 사람 수는 지난해와 비슷한데 옷 공급은 줄었다는 거다. 그는 “사람들이 백화점에서 새 옷을 사지 않고 이사도 가지 않고 있다”며 “의류슈거함에 옷을 안 버린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구제 상인들이 시장에 외국인 종업원을 두고 옷을 찾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한 구제 상인은 “평일 주인들은 공장, 의류수거함 등 물건을 떼러 돌아다니고 있다”며 “동묘에서 외국인이 물건을 팔곤 하는데 종업원에게 장사를 맡기고 간 것”이라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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