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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동상에 목사가 불 지르고/지도층이 김정은 찬양하는 현실/썩어가는 ‘안보 대들보’ 방치하면/전쟁의 재앙 피할 수 없을 것 맥아더 장군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자유의 은인인가, 분단의 원흉인가? 이런 의문을 던지는 사건이 인천 자유공원에서 일어났다. 일주일 전 정전협정 65주년을 맞아 맥아더 동상 앞에 초로의 두 목사가 나타났다. 이들은 사다리를 타고 동상의 받침대에 올라가 불을 질렀다. 그러고는 “나는 대한민국의 목사로서 민족 분단의 비극을 안겨준 전쟁 사기꾼 맥아더 우상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고 소리쳤다.

그들이 간과한 진실이 있다. 동상에 올라가 반미 구호를 외칠 수 있는 자유를 준 이는 바로 맥아더 장군이라는 사실이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자유 대한민국은 세계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목사들은 자유의 나라에서, 자유라는 이름의 공원에서 ‘자유의 은인’을 공격했다.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목사들은 그날 ‘대한민국의 목사’라고 외쳤지만 북녘에는 신앙의 자유도, 목사라는 직업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 아버지를 대신한 ‘수령님 아버지’만 있을 뿐이다. 수령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행위는 반역이다. 지금도 북한에는 하느님을 믿다 수용소에 갇혀 신음하는 사람이 10만에 육박한다.

배연국 논설실장
우려스럽게도 목사의 행위를 반미단체의 일탈로만 여길 수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얼마 전엔 독재자 김정은을 찬양하는 수필이 시민단체 공모전에서 우수상으로 뽑혔다. 케냐를 방문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동포간담회에서 “백성의 생활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가 마침내 출현했다”고 칭찬했다. 시사평론가 유시민은 “우리나라에서 큰 기업의 2·3세 경영자들 가운데 김정은 만한 사람이 있느냐”고 했다. 장관을 지낸 유력인사의 안보 의식이 이런 수준이다.

김씨 찬송가가 국내에서 울려퍼진 그날, 지구촌 남쪽에선 정반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호주의 한 인권단체는 북한에 260만명의 현대판 노예가 살고 있다고 폭로했다. 열 명 중 한 명이 노예로 생활하는 최악의 ‘노예국가’라는 것이다. 자기 고모부마저 고사포로 쏴 죽인 김정은에게 인민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나 진배없다. 그런 독재자가 핵을 만들어 이제 5000만 남쪽 국민의 생존까지 겁박한다. 이 순간에도 북이 핵물질을 생산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은 그의 거짓 미소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4·27 판문점선언 이후 곳곳에서 안보의 성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국방개혁의 미명 아래 병력 12만명 감축이 추진되고 방어용 미사일 생산마저 제동이 걸렸다. 북한 탱크를 저지하는 시설이 철거되고, 병역의무를 팽개친 인물이 군을 개혁하겠다고 소리치는 묘한 일이 벌어진다.

얼마 전 마린온 헬기사고 당시 정부의 태도는 안보불감증 그 자체였다. 해병대 장병 다섯이 숯덩이로 변했지만 정부 고위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여론의 질책이 있자 문재인 대통령은 엿새가 지나서야 청와대에서 참모들과 함께 묵념을 했다. 작년 12월 영흥도 낚싯배 전복사고 당시 바로 다음날 국무위원들과 함께 추모 묵념을 올린 대통령이다. 나라를 지키다 죽은 사람과 놀러가다 죽은 사람의 경중이 뒤바뀐 꼴이다.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쏟아진다.

10만 양병설을 주창한 율곡 이이는 1582년 목숨을 걸고 왕에게 ‘만언봉사’라는 상소를 올렸다. “나라가 나날이 썩어가는 큰집의 대들보와 같으니 조선은 나라도 아닙니다.” 일본의 침략에 아무 대비도 하지 않으면서 서로 헐뜯고 싸우는 무비유환(無備有患)의 세태를 꾸짖는 대학자의 장탄식이었다. 오늘 대한민국의 안보 실상과 뭐가 다른가. 결국 조선은 10년 후 임진왜란으로 삼천리강토가 유린당했다. 아이는 죽은 어미의 젖을 빨고, 굶주린 어른은 이웃끼리 자식을 바꿔 잡아먹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러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청나라의 말발굽에 짓밟히는 재앙을 맞았다. 외적이 물러가자 왕은 “대군이 몰려오기도 전에 나라는 이미 병들었다. 나라는 반드시 자신이 먼저 해친 뒤에야 남이 해치는 법이다”며 땅을 쳤다.

역사를 망각한 민족은 그 역사를 다시 되풀이한다. 역사를 관통하는 불변의 법칙이다. 예외란 없다.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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