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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만 봐야 할 뉴스]‘갓물주’의 나라… 임대료에 우는 영세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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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01 06:00:00 수정 : 2018-08-01 10: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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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행복사회로 가는 길]“건물주 ‘갑질’ 손놓고 최저임금 인상… ‘乙·乙 갈등’ 부추겨” / 소형상가 임대료 2년새 13% 올랐지만/자영업자 60% 연소득 4000만원 미만/최저임금 이중고까지… ‘생존 벼랑’ 몰려
계약 갱신 요구기간 5년 연장 등/정쟁·이견에 관련법 25개 계류중
방송인 서장훈(44)씨는 ‘건물주’ 이미지가 강하다. 300억원대의 건물을 소유한 그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건물주라는 이유로 자주 ‘웃음의 소재’가 된다.

그는 ‘착한’ 건물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시청자들은 서씨가 건물주로 희화화되는 데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한 방송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보유한 건물에서 4000만원 정도의 월세를 받고 있는데, 임대료가 주변 건물의 절반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건물주’에 대한 이미지는 서씨가 가진 것과 다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풍자를 넘어 ‘갓(god)물주’라는 말까지 나올 만큼 법과 제도의 허점을 노려 임차인을 울리는 건물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하다.

지난 6월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는 족발집 임대료 때문에 세입자가 건물주를 둔기로 폭행해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6년 상가를 매입한 건물주가 임대료를 4배가량 올려 달라고 요구하면서 시작된 갈등이 극단적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궁중족발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의 피의자 김모(54)씨는 국민참여재판을 받게 됐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해 주지 못하는 불합리한 법과 제도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많은 자영업자는 “죽도록 일하지만 돈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알처럼 모이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임대료 때문이다. 임대료는 특히 자영업자들이 주로 임차하는 소규모 상가에서 상승폭이 크다.

수익형 부동산 전문기업 ‘상가정보연구소’에 따르면 서울 소규모 상가 임대료는 2015년 3분기 15만3700원에서 지난해 3분기 17만3000원으로 2년 새 12.6% 올랐다. 같은 기간 중대형 상가 임대료는 20만300원에서 19만5600원으로 오히려 2.3% 하락했다.


◆“죽도록 일해도 돈은 손가락 사이로 줄줄”

자영업에 뛰어든 10명 중 절반 이상은 종잣돈을 의미하는 사업자금이 2000만원이 되지 않을 정도로 영세하다. 통계청이 지난해 8월 기준 표본 3만2000가구에 속한 비임금근로자 중 최근 2년 이내에 자영업을 시작한 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업자금 500만원 미만이 전체의 28.3%로 가장 비중이 컸다. 500만∼2000만원은 22.0%를 차지했다. 그다음으로 2000만∼5000만원 21.1%, 5000만∼1억원 16.6%, 1억∼3억원 10.9%, 3억원 이상 1.2% 순이었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이 손에 쥐는 소득은 ‘쥐꼬리’만 하다. 금융감독원과 통계청 등의 자료를 보면 2016년 자영업자의 60%가 연평균 소득이 4000만원을 넘지 못했고, 20%는 한해 1000만원도 벌지 못했다. 지난해 하반기 전국 8대 업종 폐업률은 2.5%로 창업률(2.1%)보다 높아 새로 생겨난 업소보다 사라진 업소가 많았다.
지난 6월에 발표된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영업잉여 증가율은 1.0%로 2011년 0.7%를 기록한 이후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영업잉여는 주로 영세 자영업자의 수익을 의미한다. 명칭에 포함된 ‘비영리단체’는 수익사업을 하지 않으므로 실질적으로 ‘가계’, 즉 영세 자영업자의 영업잉여(수익) 수치를 나타낸다.

정부는 올해 초 영세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의 임대료 인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상가 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현행 9%에서 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시행령을 개정한 바 있다. 하지만 상당수 자영업자는 정부 정책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서울 종로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53)씨는 “최저임금이 올라 인건비 부담이 커진 데다 정부 대책 발표하기 전에 이미 임대료를 높일 대로 높여놓은 곳도 많은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고 하소연했다.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임대료 상한율이 개정되기 전인 2016년 3분기 서울 소재 주요상권 상가 임대료는 이전 분기 대비 9.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사진
◆최저임금 인상 놓고 ‘을(乙)들의 갈등’ 조짐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9% 오른 시간당 8350원으로 결정되면서 영세 사업주의 부담은 한층 더 커졌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정부 정책 불신으로 이어지고, 자칫 소상공인과 노동계의 이른바 ‘을들의 갈등’이 심화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서울 용산구의 한 편의점 업주 이모(42)씨는 “이번 정부 들어서 장사가 특별히 잘 되는 것도 아닌데 인건비 부담은 더 커졌다”며 “매출은 오르지 않고 인건비만 오르니 요즘 ‘진짜 장사를 접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태연 한국중소상인 자영업자 총연합회장은 “대기업이 시장에 마구잡이로 들어와 중소 상인 먹을 것을 빼앗고 이윤구조도 가혹해 위기가 턱밑까지 온 상황”이라며 “최저임금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으나 ‘갑질’ 해소 등 더 중요한 부분을 그대로 둔 채 올려 일격이 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최저임금에만 집중하고 대기업과 건물주 등의 갑질 해소 등 다른 재분배 정책에 신경 쓰지 않아 생긴 ‘부작용’이라고 진단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과)는 “최저임금만 올리면 공급이 초과해 업자들과 점주들은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어, 실업률이 높아지게 된다”며 “정부는 올해 최저임금을 올리고서, 노동 수요를 늘리고 이익을 배분할 정책을 써야 했다”고 주문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사람들이 기업 다니다 실직하고 나면 생계형 창업을 하다 보니, 다른 나라 같으면 자본가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본가가 된다”며 “동네 자영업자에게 재벌기업과 똑같이 최저임금 하라고 하면 말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의) 복지가 잘 안 돼 있어 생계형 창업이 많다”며 “근본 경제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실직자가 생겨 서로 착취하는 악순환 구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가 임대차보호법 개정안 2년 넘게 ‘낮잠’

20대 국회에는 임기 시작 첫날부터 발의되기 시작하더니 현재 25개까지 늘어난 ‘약자 임차인’을 위한 법률 개정안들이 계류 중이다. 개정안에 이름을 올린 국회의원 숫자(중복 포함)는 모두 305명이다. 단순 합산 수치로 20대 국회의원 정수인 300명보다 많은 여야 의원이 ‘한마음’으로 손보려는 이 법안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다.

‘을’을 위한 개정안은 그러나 20대 국회 임기 반환점을 돈 현재까지 단 1건도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각 계류 법안에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상가 임차인의 어려움을 감안한 의원들의 세심한 배려가 담겼다. 이런 법률 개정안이 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당의 정쟁과 입장차 때문에 2년 넘게 방치된 것은 심각한 문제다. 특히 최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신음하는 전국의 수많은 자영업자 등이 더는 불합리한 임대차 관련 제도 때문에 고통받지 않도록 조속한 법안 처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3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20대 국회 개원일인 2016년 5월20일 더불어민주당 백재현 의원 등 12명이 상가건물이 ‘유통산업발전법’상 대규모점포 또는 준대규모점포의 일부인 경우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규모점포 중 전통시장은 제외하자는 게 첫 발의였다.

최근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른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 기간을 최초의 임대차기간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기간 10년(기존 5년)으로 하자는 법안도 다수 제출됐다. 이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의원은 민주당 홍익표, 윤호중 의원,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 정의당 고(故) 노회찬 전 의원 등이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경기불황에 따른 임차인의 임대료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려는 개정안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임대료를 현금 또는 신용카드, 직불카드, 선불카드로 납부받을 수 있도록 법률에 명확히 규정하려 한다. 상가의 임대료가 대부분 현금 및 계좌이체로 수수되어 건물 소유주의 소득 탈루가 쉽고, 세입자의 신용거래 기회·편의성 등이 제한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바른미래당 장정숙 의원은 권리금 거래 음성화를 차단하기 위해 상가건물 임대차권리금계약서를 권고사항이 아닌 의무로 하자고 제안했다.

또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은 “현행법이 임대인이 준수해야 하는 권리금 지급 방해행위 금지 기간을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3개월 전부터 종료 시까지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기간이 짧다는 지적이 있다”며 6개월 전부터로 늘리자는 개정안을 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개정안도 눈에 띈다. 민주당 기동민, 박광온, 인재근 의원은 각각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할 목적으로 상가건물을 임대하는 경우에도 법의 적용을 받게 하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임대차보호법 보호를 받으려면 사업자등록을 요건으로 하고 있는데 영리사업을 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회복지시설이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선영 기자, 나기천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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