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맹활약할수록 민주당은 점차 보이지 않는 정당으로 변해갔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낙마 사태는 투명 여당의 부작용을 드러낸 대표 사례다. 김 전 원장은 ‘접대성 해외 출장’, ‘5000만원 셀프 후원’ 등 각종 의혹에 휩싸였다. 하지만 청와대는 김 전 원장 사수 방침을 고수하며 야당 공세에 맞대응했다. 이에 야당은 여당을 ‘패싱’하고 청와대와 정면 충돌했다. 청와대와 야당의 완충 역할을 해야 할 여당이 존재감을 상실한 탓이다.
남상훈 정치부장 |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리더십 교체기를 맞고 있다. 오는 25일 전당대회에서 새 당대표를 뽑는다. 당대표 후보는 세 명으로 압축됐다. 친문(친문재인) 좌장 격인 이해찬 의원, 참여정부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김진표 의원, 인천시장을 지낸 송영길 의원이 폭염 속에서도 당심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번에 선출되는 당대표는 집권 2년차 국정을 적극 뒷받침하고 2020년 총선까지 책임을 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다. 누가 당대표가 되든 투명 여당이란 오명을 벗고 정치력을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다. 민심과 동떨어지지 않고 청와대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여당다운 여당’이 돼야 한다. 세 후보는 일단 ‘당·정·청 관계는 수평적 보완관계’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제는 당대표가 된 이후 그것을 실현하느냐는 점이다.
이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례가 있다. 박근혜정부가 집권 2년차로 들어선 2014년 7월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정·청 간 ‘건강한 관계’를 설정하겠다”고 공언했다.
김 대표는 그해 10월 중국 상하이를 방문해 “정기국회 후 개헌논의의 봇물이 터질 것”이라며 오스트리아식 이원정부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개헌론을 꺼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자신의 발언이 ‘개헌 블랙홀’을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 것으로 비치자 하루 만에 사과했다.
수평적 당·청 관계 확립에 실패한 김 대표는 2016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청와대 압박에 시달렸다. 친박(친박근혜)계는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유승민 의원에 대한 컷오프를 김 대표에게 요구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유 의원은 결국 탈당했다.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인 유 의원의 탈당 이후 김 대표 입지는 흔들렸다. 친박이 노골적으로 공천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공천 잡음으로 민심이 등을 돌리면서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1당을 민주당에 내주며 패배했다. 총선 이후 친박이 장악한 여당은 존재했으나 보이지 않는 정당으로 전락했다. 박근혜정부는 여당의 견제 없이 무한 질주를 하다 국정농단으로 몰락했다.
단언컨대 투명 여당은 정권을 무능하게 만들고 붕괴시키는 공범이다. 청와대의 국정 독주를 견제하는 ‘힘 있는 여당’이 필요한 이유다.
남상훈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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