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하고 신속하게 이행’ 빛 바랬지만 비핵화 후속 모멘텀 역할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은 센토사 합의에 명시된 4개 합의사항 중 유일하게 가장 구체화된 항목이다. 또 4개 합의사항 중 처음으로 이행되는 약속이기도 하다. 당시 북·미는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 전쟁 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한다’고 명시했다. 또 ‘공동성명에 적시된 사항들을 온전하고 신속하게 이행할 것을 약속한다’는 문구도 적시했다. 합의 직후 송환 절차에 즉각 돌입할 것으로 예상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미 유해 200구가 돌아왔다(have been sent back)”는 말까지 해 한껏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이 말은 과장된 표현이었고,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에서 졌다는 미국 내 비판에 직면했다. 이후 더딘 후속협상 등 우여곡절을 거치며 45일이 지났다.
공은 일단 미국에 넘어갔다는 평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유해 송환’이라는 선물에 미국이 어떤 보상조치를 내놓을지가 관심사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은 “북핵문제 해결 동력 강화를 위해 우리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 역할 수행이 다시 과제로 떠오른 시점”이라며 “비핵화 조속 추진을 위해 북한의 종전선언 발표 요청에 미국이 응하고 북핵 프로그램 동결, 핵자산 리스트 신고, 사찰단 복귀 등을 얻어내는 것이 현명하다고 미국을 설득하는 등 북·미 사이에서 교섭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오산기지 도착 주한미군 장병들이 27일 오전 북한 원산 갈마비행장에서 6·25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를 싣고 경기 평택 소재 오산 미 공군 기지에 도착한 C-17 글로브마스터Ⅲ 수송기를 바라보고 있다. 오산=사진공동취재단 |
6·25 전쟁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군 유해를 찾아 고향에 돌려보내는 일은 북한과 미국 양측에 상당한 정치적 이익을 안겨줄 수 있다.
북한은 유해 송환 협상을 지렛대 삼아 2009년 3월 이후 단절된 유엔군사령부와의 장성급 회담을 9년 만에 재개했다. 폼페이오·김영철, 성김·최선희 외교라인과 더불어 군사라인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종전선언을 실현하려면 군사 분야 대화가 필수다. 유해 송환을 계기로 유엔군사령부와의 장성급 회담 채널을 복원한다면 미국과의 종전선언 논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북한 내 미군 유해 공동발굴작업은 수년에 걸쳐 진행되는 만큼 일시 중지와 재개를 반복하면서 대미 압박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더욱이 북한이 유해 발굴 및 송환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을 미국 정부로부터 받게 된다면 달러까지 챙기며 대화의 판을 유지하는 꽃놀이패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인 27일, 전쟁 당시 북한 지역에서 전사 또는 실종된 미군 유해를 싣고 북한 원산 갈마비행장을 출발한 미군 수송기가 오산 미 공군기지에 도착, 한미 의장대가 운구하고 있다. 오산=사진공동취재단 |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인 27일, 전쟁 당시 북한 지역에서 전사 또는 실종된 미군 유해를 싣고 북한 원산 갈마비행장을 출발한 미군 수송기가 오산 미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오산=사진공동취재단 |
특히 이번 미군 유해 송환은 미국 내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북한 비핵화 협상 회의론을 잠재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예진·박수찬 기자 yejin@segye.com, 오산=외교부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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