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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러시아의 ‘어글리 코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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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27 21:59:30 수정 : 2018-07-27 22: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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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어느 겨울날, 두 남자는 다 스러져가는 홍등가를 기웃거렸다. 변명하자면 기자는 입대 전 ‘한’을 풀고 싶다는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나선 초행이자 길동무였다. 마음은 개운치 않았지만, 짙게 깔린 밤안개를 뚫고 나온 빨간 불빛을 보자 꿈결을 걷는 듯이 묘한 설렘이 동했다. 미처 채비를 못하고 대학교 잠바를 입고 나온 나를, 여인들은 옷 색깔에 빗대 ‘진달래 오빠’라 부르며 손짓했다. 그러나 이런 동행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마무리됐다. 한 차례 탐색을 끝낸 친구가 조금만 더 돌아보자고 사정을 했다. 마음에 드는 짝이 없었겠거니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2~3차례 동분서주하던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는 “입은 웃고 있는데 표정이 없다. 움직이는 시체를 본 것 같다”며 몸을 떨었다. 그제야 짙은 화장에 가린 우는 얼굴의 실체를 보게 된 우리는 어두운 거리를 빠져나왔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넘쳐나는 ‘시장’도 인간성을 매매하는 행위를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누군가에겐 엄격한 성(性)도덕 잣대를 주입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진달래 오빠’의 고백으로 서두를 뗀 건 최근 러시아 출장에서 목격한 한국인의 부끄러운 초상 때문이다.

안병수 문화체육부 기자
월드컵 기간 보름 넘게 체류한 러시아는 거리상 먼 탓에 동양인의 방문이 드문 곳이었다. 어딜 가나 이목을 끌어 구경거리가 됐지만, 투박한 듯 따뜻했던 러시아인들의 환대에 서러울 새가 없었다. “우리는 한국을 사랑한다”며 서툰 영어로 말을 건네고, 사진 촬영을 부탁하는 이들로부터 전 세계를 아우르는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지하철에서는 새파란 여학생들이 스마트폰으로 한류 아이돌의 영상에 몰입했다. 식료품 가게에서도 한국산 음식 코너가 붐벼 한국을 향한 러시아의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지만, 기자는 분명히 보고 들었다. 월드컵을 맞아 여러 이유로 러시아에 온 한국인 중 일부가 성 관광에 탐닉하는 모습 말이다. 비하할 의도는 없지만, 한국 선수단이 ‘붉은 악마’라면 그들은 ‘철쭉 오빠’쯤 될까. 경기장에서 한국 선수들의 이름을 연호하며 승리를 기원하던 순수한 정신은 오간 데 없었다. 연고 하나 없는 캄캄한 낯선 땅에서 환한 미소로 주위를 밝힌 러시아인들이 떠올랐다. 부끄러움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러시아 출장 직전 “그곳 여자 때문에 안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들었다. 악의는 없었겠지만, 불편했다. 일부러 관련 통계를 잡지 않을 정도로 원정 성매수를 일삼는 ‘어글리 코리안’은 악명이 높다. 몇 년 전에는 1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코피노’(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사회 이슈로 불거져 국내 시민단체가 들고일어난 적이 있다. 2010년 미 국무부의 ‘인신매매 실태보고서’는 한국을 아동 성매매 관광 송출국가로 낙인찍었다. 국제사회에서 경종을 숱하게 울려댔지만 여전히 얼굴을 붉힐 새가 없는 게 한국의 현주소다.

그들은 낯선 곳에서 설렌 마음에 연애를 빙자했을 테다. 중요한 건 러시아인의 따뜻한 마음이 이런 싸구려 감정 탓에 외면받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포장한들 성매매는 고하(高下)가 분명한 위력 행사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인의 박애 정신에 폭력으로 답한 ‘일부’ 탓에 가슴을 아리는 씁쓸함은 오랜 기간 지울 수 없을 듯하다.

안병수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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