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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국민·헌법 지키기 위한 계엄 / 실제는 정권 유지·독재 악용 허다 / 기무사 계엄 계획, 軍·국회 무력화 / 책임자 철저한 수사·처벌 불가피 지난해 탄핵 정국의 종막이 됐을 뻔한 계엄(戒嚴)의 기원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던 로마공화국은 중대한 위기에 처했다고 원로원이 확신했을 때 독재권력자를 지명해 신성한 절대권을 부여했다. 이것이 계엄 등 국가긴급권의 기원이라는 게 공법학계 의견이다.

‘짐이 곧 국가’로 왕이 통치하던 시절엔 따로 필요 없었을 계엄은 근대 프랑스에서 다시 등장했다. 1789년 시민혁명 이후 등장한 프랑스공화국은 극심한 혼란을 겪으면서 비상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긴급권 제도를 법률로 만들었다.
박성준 정치부 차장

우리나라 계엄은 이를 받아들인 일제에 뿌리를 둔다. 메이지유신 시절 프랑스 국가긴급권 제도를 받아들인 일본이 식민지에서도 자국법을 적용한 게 광복 후에도 그대로 살아남았다.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 제64조에서 “대통령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한다”고 정식으로 규정했다. 1년 후 만들어진 계엄법 역시 일본 계엄령을 그대로 베낀 수준이다. ‘계엄’이란 표현도 일본이 중국 명나라 때 책 정자통(正字通)의 “적이 바야흐로 쳐들어옴에 방비를 굳게함을 일컬어 계엄이라 한다(敵將至設備曰戒嚴)”는 구절에서 따왔다.

한국 현대사에서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은 계엄 없이는 성립은 물론 유지도 불가능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선 총 10회 계엄령이 선포됐는데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때가 마지막이다.

가까운 중국에선 1989년 천안문 6·4 항쟁 때 발동된 계엄이 민주화의 싹을 자르고 시민을 학살했다. 4월부터 천안문 광장에서 벌어진 중국 인민의 민주화 요구에 중국 지도부는 5월 20일 계엄령 발효를 선포했다. 마침 평양을 방문하느라 베이징을 비워야 했던 온건파 자오쯔양 당 총서기는 19일 새벽 천안문 광장에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제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 상황이 아주 안 좋습니다. 제발 광장을 떠나주십시오”라고 눈물로 호소했으나 소용없었다.

하지만 6월 4일 새벽 천안문 광장 시위대는 변방에서 동원된 후 외부소식이 차단된 채 대기했던 인민해방군 제38집단군 등에 의해 유혈진압당했다. 당시 덩샤오핑 중국 국가주석은 리펑 총리에게 무력 진압 명령을 내리면서 “피해는 최소화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의 피는 반드시 봐라”고 지시했다는 게 리펑 총리 자서전 기록이다.

기무사 계엄 준비 계획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비슷한 참극이 벌어질 뻔했다. 탄핵 정국에서 극심한 소요 발생을 명분으로 군이 계엄을 실시해 서울 광화문, 여의도 등 주요 거점을 탱크와 장갑차로 장악하고, 야당 의원 체포로 국회를 가동 불능상태로 만든다는 게 기무사 계엄 계획의 골자다.

일부에선 아직도 “비상사태에 대비한 군의 매뉴얼일 뿐”이라고 기무사를 옹호하나 설득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애초 군은 합동참모본부에 계엄과를 두고 있다. 1980년 마지막 계엄 이후 계획만 세우고 고쳐왔을 계엄과 서류 캐비닛엔 상상 가능한 각종 비상사태에 대비한 계획이 가득찼을 법하다. 실제 기무사의 67페이지짜리 계엄 세부계획을 공개하는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는 두께가 전화번호부만 한 합참 계엄과의 계엄실무편람도 함께 등장했다.

이처럼 존재 자체가 수상쩍은 기무사 계엄 계획이 합참 본연의 계획과 가장 다른 점은 누가 계엄사령관을 맡느냐다. 계엄사령관은 입법·사법·행정에 걸쳐 국가 전권을 장악하게 된다. 기무사는 전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을 제치고 서열 2위인 육군참모총장이 이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계엄 즉각 해제를 의결할 수 있는 국회를 당시 여당은 당정협의, 야당은 대대적 체포로 무력화하겠다는 흉계를 당당히 밝히고 있다.

엄중한 군 지휘체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불능 상태로 만들려 한 기무사의 이번 계엄 계획은 결국 내란 모의 혐의를 모면하기 어렵다. 기무사가 누구 지시로 이 같은 일을 벌인지는 아직 흑막에 쌓여 있다. 그야말로 공화국의 적인 만큼 철저한 수사 및 처벌이 불가피하다.

박성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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