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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예술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꿈꾸다

입력 : 2018-07-21 12:00:00 수정 : 2018-07-21 10: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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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이상향 /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훈데르트바서 / 어린시절 상처로 평생 자연에 애착 / 직선대신 곡선으로 짙은 생명력 표현 / ‘색채의 마술사’답게 대담하고 화려 / 조선후기 대표 화가 장승업 ‘미산이곡’ / 실경이지만 강렬·섬세…홍방함 느껴져 / 마음속 간직하고 있는 세계 버무린 듯
# 명작을 만나며 안목을 키우다

건축에 대해 공부를 한다거나 디자인이나 미술에 대해 공부할 때, 안목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안목을 키우려면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을 보는 것이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건축으로 말하자면 오래된 집이나 사찰을 구경하고 석탑이나 불상을 보다보면 어느새 비례에 대한 감각도 생기고 안목도 높아진다.

박물관 역시 안목을 키우는 데 더 없이 좋은 장소이다.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분야의 명작들이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어, 굳이 설명을 보고 계통을 세우지 않더라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와 정신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꼭 그런 의도로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박물관에 많이 갔다. 당시에는 광화문 뒤 옛 조선총독부 청사를 박물관으로 개조해서 쓰고 있었다. 공부를 게을리하느라 시간이 많았던 청소년 시절, 평일에 아무도 오지 않는 박물관의 한적함과 오래된 공간이 주는 감흥이 좋아서 그곳에 자주 갔다. 사실 거기 전시된 전시품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냥 그 안을 걸어 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했는데, 딱 한번 어떤 그림에 무척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건 A4 사이즈 정도 작은 크기의 단원 김홍도 풍속화였다. 그 그림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었지만 교과서에서도 보고 여기저기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익숙한 작품이었다. 당연히 원본은 그날 처음 봤는데 생각보다 작아서 일단 놀랐다. 화면 아래쪽에 부모가 앉아서 열심히 무언가 일을 하고 있고, 아이는 위쪽으로 조금 떨어져 앉아서 책을 보는 그림이었다. 그 작은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자세히 보니 아이의 등에 끌어내리다가 문득 끊긴 붓 자국이 어렴풋이 보였다. 순간 그동안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김홍도의 약점이라도 목격한 듯한 친근함과, 그림이 교과서에서 걸어나와 내게 확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김홍도의 옆에 앉아서 그의 붓질을 보는 듯, 시공간을 뛰어넘는 생생함과 묘한 감동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예술이 주는 감동의 포인트는 개인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사람의 손맛이 느껴진다거나 사람의 호흡이 느껴지는 작업에 감동을 받는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개념이 앞서고 기획되고 실행되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생산품보다는, 어떤 사람의 관점이 보이고 어떤 사람의 손길과 고민이 보일 때 마음이 열리며 감동이 생기는 것이다.

얼마 전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조선이 끝나는 시기에 활발히 작업을 한 화가 오원 장승업의 작품을 볼 기회가 생겼다. 동대문 시장통 한복판에 앉아있는 금속덩어리, 약간은 미래적이고 약간은 몽환적인 세트장 같은 건물에서 장승업의 그림을 보는 것은 형용모순과 같다. 사실 내가 장승업이라는 화가에 대해 아는 것은 약간 주워들은 몇 가지 이야기가 전부이고, 그의 작품도 몰랐다. 기껏해야 오래전에 개봉했던 취화선이라는 영화의 몇 장면만 떠올랐으니 사실 그 전시회에 가는 것이 좀 미안할 정도였다. 영화를 보지 않은 나조차 알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장면, 그가 지붕 용마루에 술병을 들고 앉아있는 모습이 그 영화에서 그리고자 한 장승업이라는 예술가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자유로운 예술혼을 가진 조선시대의 화가…, 뭐 그런 정도의 인상일 것이다.

전시를 보기 전날, 회사에서 성북동 초입 마전터 근처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갑자기 생각이 나서 이 근처에 장승업이 살았다더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저녁에 아는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에서 ‘장승업 전’ 프리오픈이 있는데 올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예상치 못한 우연에 감사하며 당연히 승낙을 하고, 다음 날 오후 택시를 타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사실 택시 안에서 장승업에 대해 간단한 정보라도 조금 읽어보고 갈걸 하고 후회하면서, 한참 길을 헤맨 끝에 찾아갔다. 무척 입체적인 구성과 다양한 매체로 장승업의 그림뿐 아니라 그의 뒤를 이었다고 평가되는 조석진, 안중식으로 이어지는 한국화의 흐름도 보여주는 전시였다.
로그너 바드 블루마우 호텔은 온통 곡선으로 이어지는 건물과 다양한 색채, 2400여개가 넘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창문 등 훈데르트바서의 트레이드 마크가 종합된 건축물이다.

# 장승업, 자신만의 세계를 꿈꾸다

장승업은 1843년에 태어나 1897년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는 화가이다. 출생도 사망도 정확한 기록이 없다. 심지어 그가 없어지고도 십 년이 지난 20세기 초까지, 사람들이 갑자기 불쑥 장승업이 나타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그는 황해도의 아주 한미한 집에서 태어났고 부랑아처럼 떠돌다가 여러 가지 인연으로 이응헌이라는 역관의 집에 기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응헌이라는 사람은 제주도로 귀양 간 추사를 극진히 모셨고, 그에 감동한 추사가 그의 호를 적어 세한도를 그려주었던 역관 이상적의 사위이다. 또한 그 역시 이상적만큼 문화적인 소양이 깊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의 집에는 원나라, 명나라 시대의 뛰어난 그림들과 서적들이 많이 있었는데, 장승업은 그 그림을 어깨너머로 보고 따라 그리곤 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이응헌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고, 도화서 화원 유숙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그리고 민영환의 지원으로 고종 임금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그의 그림은 강렬하면서 섬세하고 짜인 듯하면서도 호방하다. 강렬한 묵법을 구사하면서도 섬세하고 화려한 채색의 대조를 이루는 아주 동적인 그림이다. 그는 실경 대신 이상적인 풍경을 주로 그리는 문인화보다는, 당시 근대의 초입에 들어선 지식인들 혹은 자본가들의 기호에 맞는 정물화, 산수화, 고사인물화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다시 말해 장승업은 주문을 받고 그리는 방식의 예술가였다. 그런 시대의 변화와 화가라는 예술가의 근대적 자아가 장승업에게서 보인다.

장승업을 안견, 김홍도와 더불어 조선 3대 화가라고 이야기한다. 예술가를 3대니 5대니 하며 줄을 세우는 듯해서 영 마뜩지는 않지만, 세 명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의미를 고려하면 아주 이상한 분류는 아니다. 그 세 명의 화가는 각자의 시대를 대변하는 높게 솟은 탑과 같은 인물들이다.

조선 초기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시점의 안견,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하는 정조대에 활약했던 김홍도, 그리고 조선 말기 기울어져가는 나라와 근대적인 자아가 태동하는 무렵의 장승업은 그림의 테크닉 이전에 각자의 시대를 표현하고 있다. 말하자면 장승업은 조선이라는 사회에서 근대와 현대로 가는 길목이었다. 그의 그림은 안중식, 조석진을 거쳐 노수현, 변관식 등으로 이어진다.

굉장히 다양한 매체와 전시 방법을 동원하여 사람들이 다차원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전시장을 천천히 거닐었다. 그러다 내 발길을 붙잡은 그림이 하나 있었다. ‘미산이곡(眉山梨谷)’이라는 긴 그림으로, 죽계라는 사람의 요청으로 장승업이 그린 미산과 이곡의 풍경이다.

미산이 어디이고 죽계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 풍경화는 신선이 놀고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가 감도는 이상적인 산수화가 아닌 실경을 그린 그림이다. 전라도 마이산 봉우리처럼 당나귀 귀와 같은 봉우리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으며 그 아래로 다양하게 자신에게 몰두하는 인간들과 흐드러지는 나무들이 그림을 채우고 있었다. 집 안에서 책을 읽는 남자, 소를 타고 가는 아이, 광주리를 이고 가는 아낙, 배에 앉아있는 남자가 좌우로 점점이 늘어서고, 그 위와 아래로 자연이 펼쳐지는데 뭉글거리며 흐드러지는 양감이 아주 확연하다. 부드럽고 큰 곡선을 이루는 봉우리들과 뾰쪽하면서 불처럼 활활거리며 화면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나무, 그리고 그림의 전체를 감도는 파리한 청색의 대조는 거친 듯 부드럽고 포근한 듯 냉랭한, 무척 다른 두 가지 성질이 한 곳에 펼쳐진 듯해서 위태하면서도 시원했다. 장승업이 실경을 그리는데, 그 풍경을 눈에 담고 마음으로 거르고 손으로 다시 만들어 낸 듯했다. 어딘지 알 수 없으니 검증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복잡한 세상에 대한 시각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이상향이 버무려진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앞에 놓고 한참 들여다보며 같이 간 일행과 “아마 이 그림은 주문 받고 그 동네에 가서 술을 많이 대접받고 그린 것 아닐까”라고 쑥덕거렸다. 그림의 자유롭고 호방함이 실제로 발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거나하게 취한 듯한 자유롭고 해학적인 선을 따라가며, 그 앞에서 넋을 놓고 한참 들여다보자니 그림 속으로 풍덩 빠질 것 같았다.
슈피텔라우 쓰레기소각장. 소각한 쓰레기들에서 나오는 열로 다시 난방을 하는 친환경적인 활용이 가능하다고 해서 설계를 수락한 프로젝트.

# 훈데르트바서, 자유로운 건축으로 자연을 담다

장승업의 그림을 보면서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1928~2000)라는 오스트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의지했던 외가 쪽이 유대인이라 2차 대전 때 친척들은 몰살당하고 게토에 격리되기도 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의 상처 때문인지 그는 평생 자연과 예술에 대한 깊은 애착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고 건축을 하고 환경운동을 이어나갔다. 본명은 프리드리히 슈토바서(Friedrich Stowasser)인데, 스스로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이라는 의미로 개명을 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이던 그는 1950년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하지만 하루 만에 그만둔다. 그는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고, 이젤을 쓰지 않고 포장지나 천, 나무판 등 다양한 천연 재료를 펼쳐놓고 직접 만든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훈데르트바서는 인간은 자연에 잠시 들린 손님이라고 생각했다. 손님이 함부로 남의 집에 해를 끼치지 않듯 인간도 자연에 대해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형태적으로는 직선을 쓰지 않고 곡선, 특히 나선 형태를 통해 짙은 생명력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는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며 대담하고 대비가 강한 다양한 색을 자유롭게 사용했는데, 자칫 유치하거나 부조화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조합이 그의 손을 통해 아름답고 몽환적인 색채로 화려하게 구현되었다.

훈데르트바서의 건축 또한 당시 “장식은 죄악”이라 이르며 합리주의 건축의 이론을 펼친 아돌프 로스의 사상으로부터 이어지는 현대건축이 도시와 인간을 메마르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훈데르트바서의 추상적이고 환상적인 그림은 그대로 건축에 반영되어, 자연과 개인 표현에 대한 그의 신념을 통합해 보여준다. 형태나 조형으로써 자연을 상징하는 것뿐만 아니라 순환하는 화장실을 도입한다거나, 건물의 거주자에게 각자 자신의 취향이나 생활을 반영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각 건물을 설계했다.

특히 그의 건축이 가장 인상적인 이유는 그가 일찌감치 생태 건축(ecological architecture)을 채택하고 자연의 식물로써 건물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방법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슈타이어마르크(Steiermark)주의 바투블루마우에 있는 로그너 바트블루마우(Rogner Bad Blumau) 호텔은 1997년에 지어졌다. 이 호텔은 온통 곡선으로 이어지는 건물과 다양한 색채, 2400여 개가 넘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창문 등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종합된 건축물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누구나 아는 자명한 상식이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우리의 생활은 철저히 자연과 불화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자각을 하게 되면서 막연한 이상향을 꿈꾸고, 그 곳에서는 자연이 우리를 품어주고 우리는 자유롭게 활보한다. 장승업의 그림과 훈데르트바서의 건축에서 만나는 이상향은 그렇게 두려울 것 없고 자연에게 미안할 것도 없는 현실 저 너머의 평화로운 세상이다.

가온건축 공동대표·『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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