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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우리 곁을 떠난] 한국적 모더니즘 김환기, 한글 수호신 주시경

입력 : 2018-07-22 08:00:00 수정 : 2018-07-20 09:2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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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우리 곁을 떠난 별 또는] 한국적 모더니즘을 구현한 김환기, 한글을 지켜낸 주시경

▲ 7월 25일 1974년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 김환기, 제자들 틈에 끼여 공모전에 출품한 열정의 화가 

김환기(1913년 2월 27일 ~ 1974년 7월 25일)는 그의 작품이 가장 높은 가격을 받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조형성과 한국적 시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회화의 정체성을 구현해내는 등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적 시각으로 풀어냈다.

36살 때 서울대 미대 교수, 41살 때 홍익대 미대학장, 42살 때 학술원 회원이 되었지만 44살이던 1956년 이 모든 명예를 벗어 던지고 미술 공부를 위해 파리로 떠나는 등 일생을 통해 배움과 도전을 추구했다.

특히 미국 뉴욕에 거주하던 1970년 6월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한 일은 두고 두고 이야기 거리로 남았다.

30대 때 이미 한국 최고화가 반열에 든 그가 제자들 틈에 끼여 작품을 내 평가를 받은 일은 신선한 충격 이상이었다.

당시 김환기가 낸 작품은 고국을 향한 그리움을 한 점, 한 점으로 그려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사진)'로 대상을 받았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유명한 구절을 캔버스에 녹여낸 작품으로 그의 명성에 따른 평가가 아닌, 작품 그 자체에 대한 평가였으며 이 일로 다시한번 김환기라는 이름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종달새 노래할 때(1935)', '론도(1938)', '항아리와 여인들(1951)', '항아리와 매화(1954)', '영원의 노래(1957)', '달과 산(1960)', '18-VII-65 밤의 소리(1965)', '작품(1968)',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09-05-74(1974)' 등 많은 대표작을 남겼다.

현재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이, 그의 고향인 전남 신안의 '김환기 고택'은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251호로 지정됐다.

▲ 7월 27일 1914년 주시경,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면 겨례의 글로 만든 주인공, 그의 제자들이 목숨걸고 한글 지켜 내

주시경(1876년 11월 7일~ 1914년 7월 27일)은 우리말과 한글 근대화에 앞장선 위대한 선구자이다.

한글 문법을 최초로 정립했으며 우리글 훈민정음을 크고 위대한 말이라는 뜻에서 '한글'이라 이름 지었다.


주시경은 체계적 한글 연구의 선구자라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그가 길러낸 제자들로 인해 더 큰 인물이 됐다.

이윤재, 한징, 이극로, 이인, 최현배, 이희승, 김두봉, 신명균, 권덕규, 이병기, 장지영 등 주시경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한글을 지켜냈다. 스승의 뜻을 받들기 위해 '조선어학회'를 만들어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기초했고 한글 보급에 앞장섰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주시경 제자 대부분이 옥고를 치렀으며 이윤재와 한징은 죽기까지 했다.

일제가 망한 뒤 남과 북으로 갈라졌지만 분단 73년이 되는 지금까지 말과 글이 갈라지지 않은 것은 남쪽의 최현배, 북쪽의 김두봉과 이극로라는 주시경 제자들이 죽기 살기로 스승의 뜻을 받들어 ‘한글 전용’ 등 국어정책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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