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북한의 비핵화에 시한과 속도 제한은 없다”고 한 발언은 북·미 비핵화 협상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협상 장기화 국면의 초기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미사일 엔진 실험장 파괴 약속은 언제 이행될지 감감무소식이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3차 방북 이후에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빈손’ 방북으로 끝난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이후 미 국무부가 발표한 비핵화 검증 등 핵심 사안을 논의할 워킹그룹 간 실무회담도 언제 재개될지 안갯속이다.
전직 외교·안보 고위관료는 “협상을 최대한 질질 끌어도 불리할 게 없는 김정은이 쳐놓은 시간의 덫에 트럼프가 걸려든 꼴”이라며 “협상이 장기화하는 기간만큼 북한의 핵능력은 커질 것이고, 이미 중국이 (유엔) 제재의 뒷문을 살짝 열어줬으니 북한은 시간을 끌더라도 잃을 게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숙한 대북 협상 능력은 비핵화 협상 장기화의 최대 불안 요소다.
신원식 전 합동참모본부 차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본질적으로 북한과 협상할 능력과 준비, 원칙과 전략도 없다”며 “현재까지 트럼프의 대북 정책은 실망스럽고 북한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지만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고 트럼프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트럼프가 돌변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제레미 헌트 신임 영국 외교장관이 18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제4차 한영 외교장관 전략대화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 협상 장기화 전략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가진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비핵화는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는 흔들림 없는 (한·미) 공동의 목표이자 국제사회의 목표로, 속도와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장관의 이날 발언은 우리 정부도 북·미 간 비핵화 협상 장기화에 동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강 장관이 ‘비핵화는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고 발언한 데 대해 “조금 더 긴 호흡과 안목을 갖고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두 차례 회담을 통해 일거에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고 밝혔다.
김민서·김예진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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