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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서동요와 익산 대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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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20 00:51:42 수정 : 2018-07-20 01: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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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공주님은/ 남 그으기 얼어 두고/ 맛둥(薯童) 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

양주동 박사가 번역한 신라 향가 ‘서동요’다. 선화공주님이 남몰래 짝을 맺어 두고 서동 방을 밤에 몰래 간다는 뜻이다. 맛둥은 마동이다. ㅅ은 사이시옷. 마 서(薯). ‘서’라고 쓰고 ‘마’로 읽은 이두문자다. 말통(末通)이라고도 했다. ‘말’에서는 ‘마’를 따고, 동과 닮은 발음의 한자 ‘통’을 써 마동을 표기했다고 한다. 단재 신채호의 해석이 그렇다. 마를 캐는 아이, 바로 서동(薯童)이다.

1400년 넘게 이어지는 사랑 이야기다.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제2에 실린 무왕과 서동요.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서라벌로 갔다.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며 동요를 퍼뜨렸다. 백관이 들고 일어났다. “공주를 귀양 보내라”고. 결국 궁에서 쫓겨난 선화공주. 낙심한 공주 앞에 나타난 사람은 서동이었다. 절을 하고 데려갔다고 한다. 서동은 백제 30대 무왕이다. 망국의 한을 품어야 했던 의자왕의 아버지다.

신라 공주를 아내로 삼을 생각은 어찌 했을까. 고구려에 맞선 나제동맹이 배경이다. 선화공주의 아버지 진평왕. 그가 왕위에 오른 뒤 24년 동안 신라·백제 사이에는 전쟁이 없었다. 싸움이 다시 시작된 것은 진평왕 24년, 무왕 3년, 602년이다. 그해 무왕은 신라 아막(阿莫)산성을 공격했다. ‘삼국사기’ 기록, “아막산성은 일명 모산성(母山城)이라고 한다.” 아막은 어머니를 뜻하는 이두문자다. 장인과 사위의 전쟁. 아들이 없던 진평왕. 무왕이 신라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고도 한다.

무왕의 무덤이 확인될 모양이다. 익산 쌍릉의 대왕릉. 조선총독부가 1917년 ‘조선고적조사’ 때 상자에 담아 능에 남겨둔 정강이뼈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했더니 620∼659년 사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왕의 재위는 600∼641년이다. 대왕릉이 왕릉이라면 그때 숨진 왕은 무왕밖에 없다. 쌍릉의 소왕릉을 발굴하면 무덤 주인공을 확정할 수 있다고 한다. 백제사 연구의 새 장을 열 대발견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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