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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쌍릉 인골, 백제 무왕 가능성 커”

입력 : 2018-07-18 19:56:40 수정 : 2018-07-18 17: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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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에 숨진 키 큰 50대 이상 男/“풍채 훌륭” 삼국사기 내용과 부합/“최고급 금송 목관… 왕릉급 규모”
18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익산 쌍릉 출토 인골 분석결과 설명회’에서 쌍릉에서 나온 뼈와 이를 담았던 나무상자가 나란히 놓여 있다.
뉴시스
지난 4월 전북 익산의 쌍릉(대왕릉+소왕릉·사적 87호)에서 나온 인골이 ‘서동요 설화’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18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쌍릉 대왕릉에서 확인된 뼈들은 7세기에 세상을 떠난 큰 키의 50대 이상 남성의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무왕의 사망 시기 및 당시 나이와 비슷하다. 쌍릉 관련 사료와 최근의 발굴 조사 결과까지 더하면 쌍릉이 무왕의 무덤이라는 건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연구소에 따르면 나무상자에 담긴 채 발견된 102점의 뼈는 최소 50대 이상, 60∼70대의 노인으로 봐도 무리가 없는 한 남성의 것이었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에서는 사망 시기가 620~659년으로 추정됐다. 신장은 161㎝에서 최대 170.1㎝로 보이는데, 훨씬 후대인 19세기 조선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161.1㎝인 것을 감안한다면 비교적 큰 키다.

연구소 분석 결과는 극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무왕에 대한 정보와 상당 부분 부합한다. 무왕의 재위 시기는 600∼641년. 10대 혹은 20대에 등극했다고 본다면 사망 당시는 50, 60대였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로서는 큰 키라는 점은 무왕에 대해 “풍채가 훌륭하다”고 묘사한 삼국사기의 내용과 통한다. 이런 결과는 2016년 대왕릉 출토 치아를 20∼40대 여성의 것이라고 한 국립전주박물관의 견해와 배치되는 것이다.

연구소는 “목관이 최고급 건축가구재인 금송으로 제작된 점도 확인했다”며 “왕이 아니고는 이 정도 능을 조성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소왕릉에 대한 조사를 내년 이후 진행하면 이번 연구 결과를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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