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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소 1년10개월, 몸무게 20kg 빠졌다…그래도 한국 인권 믿는다”

입력 : 2018-07-17 06:00:00 수정 : 2018-07-16 21: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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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소에서 만난 난민들ⓐ] 가브리엘과 로먼
난민 심사를 기다리는 모든 이들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외국인보호소에 갇힌다. 출입국관리법상 불법 체류자의 도주 우려에 따라 외국인은 외국인보호소에서 일괄 ‘구금’해야 하기 때문이다. 난민지원단체 ‘아시아의 친구들’은 외국인보호소에 찾아가 보호외국인들을 면회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 이들이 지난해 외국인보호소에서 난민을 면회하며 들은 사연을 공유한다.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에 따르면 1994년 이후 지난 5월까지 우리나라의 난민신청자는 4만470명이다.

◆에티오피아 기자 가브리엘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 믿어”

“저는 에티오피아에서 온 기자 가브리엘(가명)입니다. 독재 국가인 에티오피아에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언론 역시 통제대상이었습니다. 저는 정부에 반대하는 기사를 쓰다 탄압을 받았고 결국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주했습니다. 하지만 남아공 역시 외국인에 대한 배척이 심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외국인 차별 반대운동과 인권운동을 펼쳤지만 역시 현지인들에게 차별을 받았고 결국 한국에서 난민신청을 하게 됐습니다.

서둘러 위협을 피해 한국에 와야 했기 때문에 남아공 여권을 위법으로 만들어 입국했고 그 결과 2016년 보호소에 가게 됐습니다. 보호소는 감옥 같았습니다. 평소 앓았던 근육통이 심해졌고 오한, 팔다리 통증에 손까지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의사에게 수면제를 받아 겨우 잠들었지만 새벽이면 통증에 깼고 다시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야 했습니다.

배정된 공익변호사의 도움으로 보호일시해제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밖에서 생활하며 난민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말 힘든 길을 걸어왔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는다면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 소망입니다.”
화성 외국인보호소 내부. 연합

◆방글라데시 야당 당원 로먼 “날 보호해줄 법 없나요?”

“방글라데시 출신 로먼(가명)이라고 합니다. 저는 본국에서 야당인 국민당 당원으로 학생 운동과 정치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현재 국민당은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정치적인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정치적 이유로 많은 당원과 활동가들은 죽거나 행방불명됐고 어떤 이는 장애를 갖게 됐습니다. 때론 감옥에 갇혀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저 역시 납치 협박과 폭행, 생명 위협 등을 받았고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결국 저는 국외로 피신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10년 다른 나라에 비해 비자가 빨리 나온다는 소릴 듣고 한국에 E3(비전문취업)비자를 통해 도착했습니다.

한국에 와 3년간 제조업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사장은 계약 연장과 체류기간을 연장해주겠다며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장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결국 저를 잘랐습니다. 저는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고 미등록 체류자가 됐습니다.

2015년 12월 난민 신청을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미등록 체류자라는 이유로 외국인보호소에 보내졌습니다. 보호소에 가자마자 난민신청을 했지만 거부됐습니다. 보호소에 갇혀있어 재판에 필요한 자료로 증거가 될 만한 서류를 방글라데시에 요청해 받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신청에선 공익변호사의 도움을 받았지만 직접 나가 제게 닥친 상황을 소명하지 못해 답답하고 불안했습니다. 30여 페이지가 넘는 소명자료를 직접 작성해 번역을 거쳐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하고 변호사도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2심도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의지와 희망으로 보호소에서 1년 10개월에 달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기간 몸무게는 20kg가 빠졌고 건강까지 심각하게 나빠졌죠.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며 단식까지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이주노동자일 때도 난민 소송과정에서도 잘못은 내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습니다. 저는 지난해 11월 방글라데시로 돌아갔습니다. 제게 한국은 방글라데시만큼 위험하고 위협적인 곳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리=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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