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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만 봐야 할 뉴스] “우린 매 맞는 경찰입니다” 공권력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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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17 06:00:00 수정 : 2018-07-16 17: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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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북’ 된 민중의 지팡이…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자괴감 / 하루 35명꼴 공무집행방해 입건 불구 / 구속비율 10%… 솜방망이 처벌 그쳐 / “법원 판단, 경찰들 체감과 동떨어져” / 출동할 때 권총·테이저건 구비하지만 / 사용하면 각종 보고서 ·감사에 시달려 / “권총은 쏘는 것 아닌 던지는 것” 자조
#1. “지난 5월말쯤이었요. 오전 1시쯤 보호조치 신고가 들어와 강동구 길동의 한 호프집 앞으로 출동했죠. 벤치 밑에서 잠들어 있는 40대 후반 남성을 발견해 깨우려고 흔들자 곧바로 주먹이 날아들면서 ‘이런 개XX야. 내 돈 갖고 내가 술 먹고 자는 데 왜 참견이야’라며 욕설을 퍼붓더군요. 노상에서 자면 휴대폰이나 지갑 등을 분실할 수 있고, 다칠 수도 있다고 설득했지만, 뺨까지 때리더군요. 그런데도 그 남성을 집까지 데려다줘야 했어요. 다시 지구대로 돌아오면서 ‘내가 이런 취급을 받으려고 일생을 경찰에 바쳤나. 언제까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할까’ 등의 자괴감이 들더군요. - 서울 A지구대 윤모(56) 경위

#2. “지난달 오전 2시쯤 강동구 천호동 로데오거리로 출동했어요. 노상에 20대 초반 남성 서너명이 만취해 있었고, 1명은 아예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죠. 신고 이유는 친구를 집에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죠. 신고자는 친구 주소를 상세히 읊으며 ‘잘 데려다 주쇼. 내가 잘 데려다 주는지 지켜볼 거요. 경찰 업무가 시민 데려다 주는 거 아뇨?’라고 비아냥대더군요. 만취 남성의 팔을 잡고 부축하자 ‘어어, 그렇게 세게 잡으면 내 친구 다쳐요’라며 또 다시 빈정댑디다. 제 업무긴 해도 아들뻘 되는 사람에게 이렇게 존중도 받지 못하면서까지 경찰 제복을 입어야 하나 참담하기 그지없었어요. - 서울 B지구대 윤모(54) 경위

“나는 매맞는 경찰입니다”

치안현장에서 시민 안전을 책임진 경찰의 안전이 흔들리고 있다. 술 취한 시민을 귀가시키다 폭행당하고 욕설이나 모욕적인 언행을 듣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심지어 흉기로 경찰을 위협하는 일도 꽤나 적지 않다. ‘매 맞는 경찰’ 얘기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지난 8일 경북 영양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고 김선현(51) 경감이 4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면서 경찰 내부 분노의 목소리는 더욱 드높은 상황이다. 경찰청 내부 인트라넷에서는 “다시는 이런 슬픈 일이 일어지 않도록 경찰관이 당당하게 법 집행을 할 수 있는 ‘김선현법’을 만들자”는 게시 글이 올라왔다. 삽시간에 조회 수가 수만 건을 기록할 정도로 경찰 내부에서는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전문가들은 경찰관과 시민 안전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선 공권력 강화를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근본적으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도 높다.

◆ 공상의 20~30%, 범인 습격 따른 것

15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공무집행 중 다친 전체 공상자 9189명 중 27.7%에 달하는 2545명이 범인 습격에 따른 것이다. 범인 피습으로 순직한 인원은 3명이다.
서울의 한 지구대 경찰관은 “사건 사고 현장에서 당하는 가벼운 부상은 공상 신청도 하지 않는다. 처리된 공상보다 실제로는 더 많은 경찰관이 신변 위협을 느끼고, 실제로 다치면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장에서는 경찰 공권력 위상이 바닥에 떨어진 것을 개탄하는 소리가 높다. 순경 시절 지구대에서 주취자를 상대하는 게 너무 괴로웠다는 홍모(33) 경장은 “요즘엔 경찰 제복을 입고 치안 현장에 나서면 오히려 더 무시받기 일쑤다. 욕설이나 조롱 섞인 모욕적인 언사는 물론 뺨 맞는 건 감내해야 할 정도로 공권력 무시 현상이 심각하다”면서 “미국에선 경찰을 상대로 주먹을 휘둘렀다간 총에 맞을 각오까지 해야 하지 않나. 그 정도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같은 인간으로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치안 현장 경찰관들의 하소연이 엄살은 아니다. 경찰관을 폭행하거나 경찰서 기물을 부수는 등의 공무집행방해사범은 연간 1만명 이상 입건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공무집행방해사범 검거인원은 1만2880명으로 2014년 1만5142명, 2015년 1만4556명, 2016년 1만5313명에 비해 다소 줄었다. 하지만 하루 약 35명이 공무집행방해로 입건되는 현실이다.

홍 경장은 “웬만한 주취폭행에는 공무집행방해를 걸지도 않는다. 집계된 것보다 실제로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량이나 흉기 등 위협이 될 만한 물건으로 경찰 등 공권력에 위해를 가하는 특수공무집행방해 행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13년 539명에서 2014년 737명으로 대폭 늘어난 뒤 2015년과 2016년엔 926명, 931명으로 1000명에 육박했다. 지난해엔 716명으로 줄면서 그나마 3년 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여전히 치안 현장에서는 경찰관들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
현장 경찰관들은 공권력 무시 행위가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솜방망이 처벌을 꼽는다. 공무집행방해사건으로 입건된 피의자가 구속되는 비율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흉기 등을 사용한 특수공무집행방해사건의 구속 비율은 20~30%로 올라가지만, 대부분 불구속 수사를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지난 1일 울산에서는 현행범 체포과정에서 경찰관이 떨어뜨린 테이저건을 집어 경찰관을 향해 쏜 20대 남성에게 법원이 고작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건 당시 발사된 테이저건 침은 다행히 경찰관 팔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경찰은 “경찰관을 폭행해도 대부분 집행유예 등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니 제복을 입은 공무원들을 너무 만만하게 본다. 공무집행방해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국민 법 감정은 물론 치안 현장에서 느끼는 경찰들의 위협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 “총은 쏘는 게 아니라 던져 맞추는 거죠”

지난 8일 영양 사건에서도 김 경위와 오모(53) 경위는 출동 당시 근무수칙에 따라 권총과 테이저건을 갖고 있긴 했다. 하지만 실제로 쓰지는 않았다. 경찰관 대부분은 그가 권총과 테이저건을 사용하지 않은 것을 이해한다는 반응이었다. 한 경찰관은 “현장에서는 ‘권총은 쏘라고 있는 게 아니라 던지라고 있는 것’이라는 자조섞인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면서 “총기는 물론이고 테이저건을 쐈다가는 상부 보고와 감사실 호출을 수도 없이 겪어야 한다. 그래서 위험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경찰관들이 총기나 테이저건 사용을 주저하게 된다”라고 토로했다.

최근 5년간 경찰의 총기 사용 횟수는 2013년 17회, 2014년 19회, 2015년 4회, 2016년 23회, 2017년 7회에 그쳤다. 총기를 사용하면 각종 경위서와 무기사용 신고서 등 여러 서류를 써서 상부에 보고해야 하고, 조금만 규정에 어긋났다가는 감사관실에 불려가기 일쑤다. 오발 사고라도 일으켰다간 수년간 민사소송에 시달려야 한다.

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치안정책연구소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7%는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더라도 엄격한 총기사용 규칙과 법원 판례, 내부 징계로 총기 사용을 꺼린다고 답한 바 있다.

긴박한 치안 현장과 동떨어진 총기 관련 법규와 규정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르면 경찰관은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경우, 중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항거·도주할 때, 영장집행에 항거·도주할 때, 무기·흉기 등을 지니고 3회 이상 물건을 버리라는 명령을 받고도 따르지 않을 때 등에만 무기를 쓸 수 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급박한 대치 상황에서 각종 규정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생명에 지장없는 부위를 골라 맞히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총기 사용 규정은 현장과는 동떨어져 있다. 아울러 총기 사용으로 법정에 서면 판검사가 ‘꼭 총을 쏴야했느냐’고 몰아세운다. 사실상 총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경찰관은 치안 현장에서의 공권력 강화를 위해 테이저건 사용 요건이라도 완화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영양 김 경위의 순직 이후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경찰의 테이저건 사용 요건을 완화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려졌다. 청원은 “현장의 경찰관들은 징계 때문에 테이저건도 제대로 못 쏘는 상황이다. 총도 아니고 비살상 제압용 테이저건 조차 사용하지 못 하는 상황에 현장 경찰관들은 오늘도 몸으로 칼을 맞고 몸으로 주취자를 제압하고 있다. 최소한 테이저건은 사용하게끔 조치를 취해달라”고 호소했다.
◆ “공권력 추락은 시민 피해로 부메랑”

전문가들은 지나친 공권력의 행사를 경계하면서도 합리적인 수준의 공권력은 시민이 국가에 위임한 정당한 권력행사라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공권력 위축에 따른 치안력 감소는 결국 선량한 시민들의 피해가 될 것임을 경고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공권력이 바닥에 떨어져 치안 현장이 어지러워지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면서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 존중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다만 그 부분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정당한 공권력에 대한 불법적 대응에 대해선 엄하게 처벌하는 등의 단기적 처방도 함께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웅혁 건국대(경찰학과) 교수는 “총기나 테이저건 등의 사용에 대해선 합리적 판단 아래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했을 경우 그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 지금처럼 ‘한 대 맞고 말지’ 식의 분위기가 경찰 사이에 팽배해졌을 때 공권력이 위축되고, 결국 선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경찰의 물리력 사용에 대한 사후 책임을 개인이 아닌 경찰 조직,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 책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정당한 공무 수행중 송사 휘말리면 국가가 나서 보호하고 힘이 돼줘야”

서울 은평경찰서 연신내지구대는 최근 경찰 안팎에서 훈훈한 ‘미담’의 주인공이 됐다. 지구대 소속 박모(34) 순경은 2016년 7월 조사실 안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취객을 제압하는 도중 목을 살짝 밀쳤다가 전치 5주 상해를 입힌 혐의로 형사고소를 당했다. 그는 법원에서 징역 6개월 선고유예 판결을 받아 처벌은 면했으나 합의금 및 치료비 명목으로 4000만원을 물어줘야 했다. 부하의 딱한 사정을 잘 아는 지구대장 이지은(40·사진) 경정은 경찰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려 모금운동을 제안했다. 순식간에 전국 경찰관 5700여명이 동참해 십시일반으로 1억4000만원을 모아 합의금을 거뜬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 경정은 왜 박 순경을 돕는 일에 발벗고 나섰을까. “열심히 하려던 부하가 형사처벌 위기에 거액의 합의금까지 혼자 떠안은 뒤 조직을 원망하는 듯한 마음이 살짝 엿보였습니다. 그래서 부하에게 ‘네 뒤에는 조직이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서울 연신내지구대장 이지은 경정
어찌 보면 상사와 부하, 동료들이 서로 도와 위기를 극복해낸 따뜻한 얘기 같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득이 송사에 휘말렸을 때 그 부담은 오롯이 경찰관 개인의 몫이 되고 마는 경찰조직의 서글픈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경정은 ‘치안관리를 하다보면 소송을 휘말릴 때가 많은 경찰을 정부가 나서 보호해줘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그는 “박 순경은 형사소송은 합의금 지금을 통해 선고유예 판결이 확정됐지만 민사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소송 제기 때만 해도 수천만원대였던 청구액은 올해 들어 ‘당시 넘어져 머리를 다친 이후 상태가 나빠져 평생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8억7000만원까지 대폭 올랐다. 박 순경은 여전히 법정에서 다투고 있다.

그나마 박 순경은 어진 상관 덕분에 형사합의금을 모금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소송에 휘말린 다른 경찰관 대부분은 사비를 들여 변호사를 선임하고 재판을 진행한다. 경찰관을 고소한 상대방은 집행유예 이상 형이 확정되면 공무원 신분을 잃는다는 점을 알고 합의금을 점점 세게 부르는 경향이 있다. 박 순경도 처음 합의금은 1000만원대였다가 5000만원대로 올랐다. “경찰 때문에 다쳤다”고 소송을 제기하면 부상이 경미해도 거액의 합의금을 뜯어낼 수 있다는 게 일부 악덕 민원인들 사이에 퍼지면서 ‘경찰 로또’란 말까지 생겼다.

이 경정은 “소송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일선 경찰들이 치안관리 상황에서 주저하고 위축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 민원인이 경찰이나 소방공무원 개인에 대해 국가배상 청구를 하는 것 자체가 법률상 금지돼 있다.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법제도가 보완된다면 공무원 개인에 악감정을 품고 괴롭히는 악성 민원인들로부터 경찰을 보호하고, 경찰은 소송 부담 없이 치안관리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공권력 확립이나 당당한 법집행을 말로만 외칠 게 아니라 입법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뒷받침해줬으면 합니다.”

남정훈·김청윤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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