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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빠름과 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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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16 23:25:43 수정 : 2018-07-16 17: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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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적 시간 시스템’ 과연 효율적인가 / 경쟁과 상생 사이 시간 대한 성찰 필요
21세기 초반에 나온 ‘24시간 사회’(레온 크라이츠먼)는 “살 것도 많고 할 일도 많은데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일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하루 24시간을 전면적으로 활용하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밤낮의 자연적 구획과 노동시간의 획일적 편성이라는 제도적 규율을 넘어서자고 했다. “자신이 원하는 시기와 장소에서, 자신이 정한 가격과 질에 맞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탄력적인 시간 시스템을 운용하자”고 했다.

이 책에 따르면 종달새형과 올빼미형이 공존하는데 일률적인 노동시간을 강제하는 것은 문제다. 낮에만 환자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니 24시간 병원 문이 열려 있으면 좋다. 공장, 사무실, 교실 등 제한된 공간의 이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도 8시간 사회보다는 24시간 사회가 훨씬 경제적이다. 공간의 제약성을 시간의 탄력적 운용으로 넘어서면 효율적이다. 외환 딜러의 업무에서 분명하듯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화 시대에 24시간은 늘 활용해도 모자란다. 정보기술(IT)혁명에 힘입어 국지적 공간을 넘어 실시간 접속으로 원격 근무를 할 수도 있으며, 근무시간과 공간을 조절하면 도시의 고질적인 교통체증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개인들은 고정적 시간의 비탄력성을 극복해 탄력적으로 시간을 자기가 설계함으로써 시간으로 인한 강박적 스트레스를 줄일 수도 있다.

언뜻 보기에 개인의 선호를 반영하는 탄력적 시간 시스템으로 효율적인 측면도 많아 보였지만 그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회사도, 상점도, 교실도, 병원도 24시간 문 닫지 않고 돌아가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지속되는 것 아닌가. 결국 무한경쟁만이 더 가속화할 것 아닌가. 민족, 도시, 국가, 지역 단위에서 파워 엘리트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 사이의 간극을 더욱 심화하지 않을까. 경쟁 이데올로기와 세계화 추세를 최고의 선으로 추구하는 각국의 파워 엘리트 집단의 기득권 확장에만 기여하지 않을까. 24시간 사회가 오히려 ‘불안한 현대사회’를 가속화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우려에 플로리안 오피츠는 ‘슬로우’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속도와 경쟁을 부추기는 세상에서라면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선택과 집중, 스마트 기기와 멀어지기, 멀티태스킹 등 시테크 전략도 별 소용이 없다. 늘 빠른 자에 의해 느린 자가 도태되게 마련이니, 경쟁 일변도의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한다. 그러면서 부탄의 국민총행복론이나 조건 없는 기본소득 제공 등의 대안을 궁리한다. 이 책에서 다쇼 카르마 우라 부탄학연구소장의 견해가 인상적이다. 행복의 전제 조건으로 자기 능력을 제대로 펼칠 가능성의 마당을 들면서 자기 통제권을 강조한다. “행복으로 향하는 길은 자기 자신이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진정 중요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두 책의 저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경쟁과 상생, 효율과 삶의 질, 인공적 삶과 생태적 삶, 빠름과 느림 사이에서 고뇌한다. 양극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승화해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면 좋겠으나 그것이 쉽지 않다면 생철학적 비전에 따라 어떤 포기를 감당하는 선택이 불가피할 것 같다. 가령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덜 경쟁하는 느림의 행로를 걸을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아직은 어수선하다. 시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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