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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엄마②] 약속 그리고 할머니

입력 : 2018-07-16 11:07:54 수정 : 2018-07-16 11: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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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에서는 『고마워요, 엄마』를 연재합니다.

버거운 삶의 무게를 견디며 자신보다는 자식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존재 ‘엄마’. ‘엄마’는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강인한 희생의 힘.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작은 일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웃어주는 ‘엄마’. 힘들고 지칠 때면 엄마는 곁으로 다가와 함께 합니다. 마음 한 켠에는 항상 “엄마, 고마워”,“엄마, 사랑해”라고 항상 가슴에 품고 있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지 못합니다.

“우리는 엄마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엄마’의 자식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목소리를 『고마워요, 엄마』에 담고자 합니다.

지난달 30일 오전 대전 보훈병원 체육관에서 신명국 선수가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이날 체육관에는 수많은 장애인 탁구 선수들이 실전과 같은 강도 높은 반복 훈련을 하고 있다.
할머니 품에서 자란 장애인 탁구선수 신명국 씨(33)는 어느새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했다. 엄마 같은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가슴 속 깊이 묻어뒀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1년 뒤 대회에서는 꼭 우승해서 하늘을 향해 감사하다고 외칠 거에요. 얼마 전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1년을 열심히 준비하려고 합니다. 할머니와 저와의 약속이에요.”

어떤 이에게는 늦게 일어날 일들이 혹은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나에게는 순간마다 다가왔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일들이 나에게 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축구를 했다. 엘리트 축구선수로 활동하면서 나의 엄마는 할머니였다. 열 손자 중 같은 집에서 생활했던 나를 특히나 예뻐하셨다. 사랑을 표현하지는 않으셨지만, 같이 있다는 존재만으로 힘이 됐다. 그 아프신 몸을 이끌고 계곡도 가주시고, 선수 생활을 하며 냈던 투정도 웃음으로 받아주셨다. 나는 계속 축구를 하고 싶었지만, 경제적 현실의 벽이 ‘축구’라는 나의 전부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군대를 다녀와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채소 가게 일을 시작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해서 내 이름을 건 채소 가게를 열었다. 가게가 자리 잡기 시작할 한 달 무렵, 외국인 근로자와의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었다. 당시 무보험이었던 외국인 근로자에게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몸보다 마음의 고통이 나를 힘들게 했다. 한없이 죄송한 마음은 할머니의 소리 없는 울음에 향했다. 힘든 나날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었다. 친구들의 조언으로 운동을 다시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지금은 장애인 탁구실업팀에서 라켓과 함께 땀을 흘리고 있다.

신 선수를 만나기 위해 대전을 처음 찾았다. 대전에서도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공간, 보훈병원 체육관에서 훈련 중인 선수를 만났다. 탁구는 공과의 호흡이 빠른 스포츠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선수는 오로지 공과 상대 선수에 집중했다. 고된 훈련 탓에 망가져 가는 의족이 선수에게 불편한 듯 보였다. 하지만 선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훈련에 매진하며 열정의 땀을 쏟아냈다.

잠시 훈련을 멈춘 시간. 선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선수 생활에 있어 가족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는 그는, 조심스럽게 할머니와의 지난 추억들을 꺼냈다. “제가 돌이 되기 전에 어머님과 이별했기 때문에, 할머니는 제게 어머니였어요. 제 인생의 어머니시죠.”
신명규 선수 집에서 걸려 있는 각종 대회 이름표. 신 선수는 장애인탁구선수로 선발된 후 짧은 기간 동안에 여러 대회 참가해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현재는 내년 국제대회를 목표로 훈련 중이다.

기쁜 순간은 언제나 할머니와 함께했다.

신 선수의 어린 시절 추억들은 할머니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전부다. “소풍을 떠나면 다른 아이들은 엄마랑 같이 가는데, 저는 늘 할머니랑 갔어요. 어렸을 때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소풍 가는 것이 마냥 좋았는데, 할머니께서는 당신과 함께 소풍 가는 손자에게 늘 미안해하셨죠. 그때부터 할머니께 기쁘고 좋은 소식을 늘 전하려고 했어요. 할머니가 저로 인해 미안함을 느끼시지 않게 하고 싶었거든요.”

사고 후 탁구라는 스포츠를 시작할 때, 할머님은 많이 여위셨었다. 할머님이 아프고 힘드셨기에 선수는 기쁜 순간을 더욱 함께 나누고자 했다. “할머니는 제가 축구 경기로 우승을 하면 무뚝뚝한 말투로 좋아하셨어요. 겉으로 웃음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알 수 있었어요. 분명 할머니는 저의 행복을 누구보다 기뻐하셨어요. 그래서 저를 위해, 그리고 할머니를 위해 탁구를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기뻐해 주시겠지 생각하면서 상을 타면 저 멀리 할머니가 계신 병원으로 찾아갔죠. 목에 걸린 메달을 손으로 꼭 쥐면서 말이에요.”
 
할머니의 응원과 선수의 피나는 노력 덕분일까. 2017년에 탁구 국가대표로 선발돼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올해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 최종선발 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선수의 엄청난 훈련량이 의족에 무리를 주었고, 다시 내년 대회를 준비하게 됐다. 잠깐의 침묵은 신 선수의 지난 아픔을 떠올리게 했다.
신명규 선수 집에 자리한 의족은 운동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 동고동락했다. 지금은 고된 훈련량을 감당하지 못해 방 한쪽에서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선수용 의족이 아닌 일반 의족을 제작돼 훈련량을 견디지 못해 쉽게 망가진다.

아픔의 순간에 할머니 뒷모습이 보였다.

체육관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선수의 집이 있다. 낮은 1층 계단을 오르니 선수의 여자친구와 큰 강아지가 기자를 반겼다. 소박한 집 벽 한 켠에 자리한 낡은 의족은 선수의 지난 여정을 표현하는 듯 했다. 신 선수는 다시 지난 이야기를 풀어놨다.

“제게 교통사고가 난 뒤 할머니는 오히려 저를 보지 않으셨어요. 손자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안쓰러웠을까요. 그래서 다치고 나서는 따로 나와 살면서 주말마다 찾아뵙고 밝은 모습을 보여드렸어요. 탁구라는 즐거움을 찾았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죠. 탁구를 하면서 그때 처음으로 할머니 뒷모습이 또렷이 보였어요”

내 잘못이 아닌데 왜 나와 우리 할머니가 마음고생을 해야 할까. 힘들었던 시간에 도움을 준 건 주위 사람들이다. 힘들었던 시간을 ‘적응’이라는 단어로 이겨내고, 외로울수록 밖에 나와 사람들을 더 만났다. 상황을 잊으려면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필요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1년 동안 사고 후유증을 이겨낼 때, 신 선수는 3개월 만에 이겨냈다.

“친구들은 저의 다리를 연연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왜 이렇게 늦게 오냐. 빨리 좀 오라고 장난스럽게 재촉했죠. 평소와 다름없던 친구들의 행동이 저의 빠른 회복에 도움을 줬어요. 무의식적으로 빨리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친구들한테 정말 고맙죠(웃음)”
신명규 선수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첩을 보여주었다. 신 선수는 한껏 상기된 표정과 목소리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지난 추억을 얘기해 주었다. 앨범 마지막까지 할머니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사진들로 가득했다. 성인일 때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 없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할머니 흔적이 느껴졌다.

탁구에 대한 열망은 선수를 더욱 성실하게 이끌었다. 1년 반 동안 묵묵히 탁구를 훈련하다가 대전 장애인탁구실업팀 감독님께 발탁됐다. 성실함과 인성, 그리고 재능을 바탕으로 선수를 뽑으셨던 감독님은 이렇게 회상한다. “명국이는 차로 5분 거리를 매일 걸어서 왔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걸어와서 훈련 30분 전까지 도착했어요. 비장애인에게 차로 5분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의족을 신고 하루도 빠짐없이 걸어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정말 성실하고 인성이 바른 선수죠.”

이러한 성실함은 어디에서 왔을까. 선수는 쑥스러워하며 할머니를 떠올린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약속’이라는 단어가 번뜩 떠올라요. 할머니께서는 사전에 연락하고 약속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일정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가게 되더라도, 전화로 미리 말씀드리면 모두 들어주셨죠.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약속의 소중함은 저의 가장 중요한 습관이 되었고, 저를 탁구 선수로까지 이끌었어요. 저의 성실함은 할머니로부터 온 것이에요.”

김경호 기자·김유리안나 인턴기자(경희대 아동가족학과 2학년)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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