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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기 대학생서부터 동성제자를 사랑한 교사까지 감정 100% 쏟아내려 노력”

입력 : 2018-07-15 20:57:49 수정 : 2018-07-15 16: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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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주연 이지훈 “커튼콜 때 항상 눈가가 촉촉해요. 공연이 끝나도 먹먹함과 아픔에서 헤어나오는 데 한참 걸려요. 지인이 대기실에 와서 인사하다가 제 얼굴을 보고는 ‘아직도 못 헤어나왔네’라고 하더라고요.”

뮤지컬 배우 겸 가수 이지훈(39)은 요즘 이틀에 한 번꼴로 첫사랑에 빠진 대학생 인우가 된다. 17년 후 국어교사가 돼서도 이 아픈 사랑에 온 생이 흔들린다. 8월 26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그는 “무대에서 확 다 쏟고 나면 제 자신이 소진되는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겁고 힘들었어요. ‘매번 같은 공연을 반복하면서 이만큼 감정을 쏟아낼 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못하면 가짜 연기인 거고, 배우로서 제 값어치도 내려가니까요.”

동명 영화가 원작인 이 작품은 풋내기 대학생부터 17살 동성 제자를 사랑하게 된 국어교사까지 녹록지 않은 연기를 소화해야 한다.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컸던 이지훈은 기꺼이 이 역할을 받아들었다. 연습 초반에는 쉽지 않았다. 김민정 연출이 ‘왜 넌 (연애를) 다 알 것 같은 느낌이지’라고 농담할 정도로 ‘연애숙맥’ 인우가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동성도, 한 여자를 죽도록 사랑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공연 기간의 절반을 지난 지금 그는 “공연 때마다 감정을 100% 다 쓰려고 노력 중”이고 “눈물·콧물·땀, 모든 구멍에서 물이 나올 정도”로 이 작품에 푹 빠졌다.

18살에 가수로 데뷔한 그가 배우로 이만큼 성장한 결정적 계기는 2011년 이지나 연출과의 만남이었다. 2006년 ‘알타 보이즈’로 뮤지컬계에 발을 들인 그는 초반에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한계를 많이 느끼던 시기에 ‘에비타’로 이 연출과 만났다. 이 연출은 그를 “벼랑 끝까지 몰았다”고 한다.

“제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리셨어요. ‘세상에서 연기가 제일 쉬운데 너는 왜 안 되니, 넌 남자로서 섹시함이 없는 것 같아’ 이런 얘기를 듣기도 했죠. ‘그만두겠습니다’ 소리가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어요. 연출님은 사람에 대한 욕심이 있을 때 더 채찍질하면서 성장할 기회를 주는 것 같아요. 그걸 견디니 제가 소화하는 캐릭터도 넓어지고 발성·보컬 레슨도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한귀에 쏙 들어오는 매력적인 음악으로도 유명하다. 이지훈은 이에 대해 “듣기에는 굉장히 편한데, 사실 음표 자체가 상승·하락이 많아 관객에게 감정이 확실히 전달되는 반면, 부르기는 힘들다”며 “게다가 따뜻하게 감싸주는 감성으로 불러야 하는 넘버들이라 여태 해온 작품과 색이 다르고, 읊조리듯 대사하듯 섬세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정호 선임기자
이즈음 그도 30대 문턱에 들어섰다.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20대의 그는 항상 떠받들여지며 살았다. “쓴소리, 잔소리를 듣거나 못한다는 지적을 들은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30대가 되고 남의 책망을 들으면서야 ‘내가 어떻게 살았나. 왜 점점 발전하지 못하고 항상 안주하나. 노력하지 않았구나’ 생각하게 됐다. 그러자 절박함이 조금씩 생겨났고, 훌쩍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단단해졌던 계기”라며 “한 번 그러고 나니 누가 안 좋은 얘기를 해도 잘 견디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이후 그가 택한 작품들은 흥미롭다. ‘엘리자벳’ ‘킹키부츠’ ‘영웅’처럼 화려한 대극장 뮤지컬은 물론 ‘인터뷰’처럼 작은 작품도 마다하지 않았다. 출연료부터 차이나지 않는지 운을 떼자 그는 “돈은 전혀 상관없다”고 했다. 

“출연료가 중요한 시점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이 작품으로 내가 관객에게 어떻게 비칠까, 어떻게 발전할까’가 더 중요해요. 극장 크기는 중요치 않아요. 일하고 있을 때 제가 살아숨쉼을 느껴요. 어느 순간부터는 일이 있다는 자체에 감사하게 된달까요. 솔직히 얘기하면 항상 살얼음 판이에요. 나이도 있고, 잘하는 후배들도 계속 올라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표를 팔아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저를) 찾아주는 분들이 있기에 아직까지 일한다는 기본 생각을 갖다보니까, 어떤 역할이든 구애치 않는 것 같아요.

그는 앞으로도 “확 타올랐다 꺼지는 게 아니라 촛불처럼 오래 가고 싶다”고 했다. “이뤄도 봤고 잃어도 봤기에, 결국 계속 가고 있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 방향이 위·아래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든 기복을 겪으니, 느림과 빠름을 생각하지 않고 계속 정진하고 있으면 감사한 거죠. 지금 예능 방송 ‘꽃보다 할배’를 보면 한때 최고점을 찍으신 선생님들이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 할아버지가 되고 하면서 계속 하고 계시잖아요. 30, 40년 후, 저도 그런 대열에 낄 수 있으면 해요.”

“요즘 얼굴에서 조금씩 늘어나는 주름을 보며 인생에 대한 책임·무게를 생각하게 된다”는 그는 외모뿐 아니라 내면에도 변화가 느껴진다고 했다. “마지막에는 내가 책임질 울타리인 가정이 생겨야 모든 게 완성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번지점프…’처럼 운명적 사랑에 대한 환상도 놓지 않았다.

“어느 날 기차나 비행기를 탔는데 옆 자리에 그런 인연이 뾰로롱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누구나 그런 부푼 꿈을 갖지 않나요.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가….”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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